가상화폐 투기 광풍이 무덤에 있는 희대의 금융사기꾼 찰스 폰지까지 불러냈다.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해 말 기자간담회에서 가상화폐 거래를 ‘폰지 사기극’으로 규정했다.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도 “가상화폐는 금융상품도, 법정화폐도 아니다. 희소성에 의해 가격이 출렁이는 ‘가상 골동품’으로 부르는 게 맞다”고 했다. 가상화폐에 대한 금융당국의 입장은 명료하다. 가상화폐는 폰지가 금융사기에 활용한 국제우편 쿠폰과 다를 바 없고, 거래 방식도 다단계 금융사기 수법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태생인 폰지는 21살 때인 1903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보스턴에 도착했을 땐 주머니에 2달러50센트밖에 없었다.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던 폰지는 국제우표 쿠폰(IRC)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우편요금이 싼 나라의 국제우표 쿠폰을 구입해 우편요금이 비싼 나라의 우표로 바꾸면 차익을 얻을 수 있다며 투자자를 모집했다. 90일 내에 투자금의 두 배를 되돌려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수많은 투자자들이 ‘미끼’를 물었다. 폰지는 7개월 만에 800만달러를 모았다. 하지만 국제우편 쿠폰의 발행량이 제한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했다. 투자자에게 약속한 수익률을 보장하기 위해 다른 투자자를 끌어들이며 ‘돌려막기’를 거듭하던 폰지는 결국 파산을 선언하고 구속됐다. 투자자들은 자신이 구입한 국제우편 쿠폰을 사줄 ‘더 큰 바보’를 기다리는 ‘바보’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가상화폐와 국제우편 쿠폰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나카모토 사토시라는 가명을 쓴 비트코인 개발자가 2009년 인터넷에 올린 논문에는 중앙은행이 독점하는 화폐 발행 체제에 대한 반감이 드러나 있다. “중앙은행은 법정화폐의 가치를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란 믿음을 저버리고 금융위기를 초래했다.” 비트코인은 임의로 조작하거나 통제할 수 없도록 설계된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한다. 10분에 한번씩 바뀌는 64자리 숫자·알파벳 조합을 맞추면 보상으로 주어지는 채굴 방식, 2100만비트코인으로 제한된 채굴량, 경쟁자가 많아지면 채굴 확률이 낮아지는 시스템 등은 혁신적이다. 통화정책이나 규제로부터 자유롭고, 인터넷만 있으면 익명으로 사고팔 수 있다. 상거래 결제도 가능하다. 4차혁명 시대의 대안화폐로 떠오를 만했다.
가상화폐는 적정 가치를 추산할 수 없어 가격변동성이 크다는 치명적인 약점을 지니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은 1년 새 13배 넘게 올랐다. 이더리움은 95배나 폭등했다. 적어도 20세기 이후 가상화폐만큼 가격이 급등한 금융자산은 없다. 가상화폐의 높은 가격변동성은 오늘 사면 내일 올라야 성이 차는 한국인의 조급증과 맞물리면서 투기 광풍을 몰고 왔다. 거래시장 규모 세계 3위, 국제시세보다 20%가량 비싼 가격, 56조원에 이른 월간 거래액 등은 300만명의 ‘가상화폐 좀비’들이 일궈낸 놀라운 기록들이다.
“한국은 가상화폐 시장의 ‘그라운드 제로’”(블룸버그), “한국만큼 가상화폐 열기가 뜨거운 곳은 없다”(뉴욕타임스)는 낯 뜨거운 지적이 나올 만했다. “3주 만에 1000만원을 벌었다” “회사 동료가 1억원을 번 뒤 사표를 썼다”는 투자성공담은 직장인은 물론 대학생과 주부, 70대 노인들의 ‘묻지마 투기심리’를 흔들어 놨다. 하지만 가상화폐는 죄가 없다. 이더리움·리플·퀀텀 등 1300여종으로 늘어난 가상화폐를 투기 대상으로 삼은 투자자들의 속물적 탐욕에 원죄가 있다.
가상화폐의 미래는 확실치 않다. 쓸모없는 ‘디지털 휴지’가 될 수도 있고, 글로벌 결제통화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가상화폐의 통용 가능성과 본질 가치에 대한 진지한 논의는 사라지고, 투기 광풍만 남았다. 달을 보라고 가리키니 손가락만 쳐다보는 격이다. 미성년자 거래금지에 이어 거래실명제를 도입한 정부는 투기 광풍이 진정되지 않으면 특별법을 제정해 거래소 폐쇄까지 단행할 태세다. 그리되면 전 세계 비트코인의 40%를 갖고 있는 1000여명의 ‘고래(whale)’들은 “한국 정부가 블록체인 기술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아우성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는 고래들의 ‘사술(邪術)’일 따름이다. 가상화폐 거래가 활성화된다고 해서 블록체인 기술 개발업체로 돈이 들어가지는 않는다. 연간 1조원이 넘는 수수료 수익을 올리는 거래소의 배만 불려줄 뿐이다.
주식시장에서 ‘큰손’을 이기는 ‘개미’는 없다. 가상화폐 거래시장도 마찬가지다. 개미 투자자들은 고래들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그러니 가상화폐 투자를 놓고 대박의 꿈과 쪽박의 두려움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할 필요가 없다. 폰지가 살아 있었다면 이런 조언을 했을 법하다. “‘더 큰 바보’가 되길 원하는 당신을 위한 가상화폐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