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위의 ‘음식 포르노’

고영 음식문헌연구자
[직설]지면 위의 ‘음식 포르노’

몸과 마음이 두루 잘 통하는 연인의 정사보다 맛있는 음식 한 입이 낫다는 소리가 들리는 세상이다. 마크 쿨란스키의 작업을 참고하니 이런 표현과 상상력은 이미 기원전 5세기 이래 이어진 모양이다. 네 생각에는 어떠냐, 주위에 물으면 둘 중 하나가 망설임 없이 ‘맞다!’를 외치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 보니 조선 문인 허균(許筠·1569~1618)이 남긴 문자먹방 <도문대작(屠門大嚼)> 서문의 첫 문장이 이렇다. “식욕과 색욕은 본성이다(食色性也).”

졸리면 자면 그만이다. 그런데 식(食)과 성(性)은 ‘그만’에 이르기까지가 복잡하다. 과정은 구경거리(스펙터클)가 될 만한 자질로 충만하다. 남에게 민망한 구석 들키지 않는 한 내 취향으로 소품(팬시)을 지을 만한 요소로 가득하다. 이 가운데 ‘눈과 귀로만 먹는 음식’은 남녀노소 모두에게 열려 있다. 계급도 계층도 없다. 포르노는 몰래 보지만 음식 포르노는 벌건 대낮에 지하철을 타고 갈 길 가면서도 볼 수 있다. 온 가족이 화면 앞에 앉아, 그 연출에 대한 비평과 완성도에 관한 품평을 나누면서도 볼 수도 있다. 그 앞에서 침을 흘리기란 부끄러운 노릇이 아니다. 가장 만만한 오락이다. 그러니 헌 매체, 새 미디어 할 것 없이 여기에 환장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온갖 매체에서, SNS에서 먹는 이야기가 폭발한다. 푸드 포르노에 잘만 기대면 명사, 준연예인 행세도 가능하다. 사진과 영상을 곁들이고 꾸준하기만 하면, 누구든 먹는 이야기 하나로 로마의 황제나 허균 같은 문인쯤은 쉬이 압도할 만한다. 그렇다고 신문마저 여기 압도된다면 무척 섭섭할 듯하다. 아니 이미 압도되었나, 아닌 게 아니라 불안이 솟는 요즘이다.

언론마다 여행과 주말과 토요일을 앞세운 특별판, 또 지역 골목길을 고리로 한 특집을 내면서 음식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이때 차지한 면이 크면 연예인화한 요리사와 사진을 찍고, 굳이 비싸서 이국적인(‘비싸고’가 아니다) 맛집을 나열한다. 차지한 면이 작으면 작은 대로 기자가 힙스터로 분해 숨어 있는 ‘힙’한 곳을 시시콜콜 소개한다.

거기 자리한 정보도 이 세상에 필요하다. 신문이 기획할 만하다. 그런데 그게 다가 될 듯한 징후가 보이기에 불안하다. 푸드 포르노가 그저 반짝거리고 무해한 귀여움 쪽으로만 움직이지도 않는다. 막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북아프리카 사람 입에 겉절이를 욱여넣으며 ‘두유노김치’ 장면을 연출하는 한국적인 음식 폭력이 보다 증폭되곤 한다. 비싼 음식이 곧 좋은 음식으로 포장되는 동안 일상 식생활의 감각은 자꾸 지워진다. 한 끼를 먹기 위한 보통 사람의 분투를 허름하고 초라하다고 여기는 심성이 조장된다. 어쩌면 이야말로 푸드 포르노의 벌거벗은 속성이자 방향일 테다. 그러니 더욱, 신문-기자-칼럼니스트는 음식을 감각하고 음식 이야기를 쓸 때, 그저 푸드 포르노를 중개-중계하는 데 그치지 않겠다는 상당한 각오를 해야 할 줄로 안다. 음식 이야기만 해서는 음식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점을 먼저 생각해야 할 줄로 안다.

푸드 포르노와 일상의 음식 사이에서 엇갈리는 보통 사람들의 감각은 복잡하다. 벌거벗은 먹방 앞에서 군침도 흘리지만, 그렇다고 내가 신뢰할 만한 음식 담론을 아예 포기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신문은, 기자는, 진짜 칼럼니스트는 푸드 포르노 너머에서 보다 정직하고 분별 있는 말과 상상력을 짓고 있으리란 기대를 품고 전통적인 신문의 기사 링크에 커서를 가져다 댄다. 그러다 누구나 하는 푸드 포르노가 오른 지면을 확인한 순간, 실망해 기어코 댓글을 단다. “입소문 홍보 결국 사기,” “애드버토리얼, 바이럴이 뭐냐면 결국 댓글알바.”

먹방, 먹는 이야기가 웃자라면서 나타난 직업군이 있다. 지난 시대의 파워 블로거, 요즘의 자칭 푸드 칼럼니스트 말이다. 이들은 푸드 포르노 속에 애드버토리얼, 바이럴 등을 심으며 담론의 장을 외로 꼬아버린 점까지 있다. 그러므로 더욱 엄중하다. 푸드 포르노 흉내뿐이었다가는 신문이 찌라시가 되는 수 있고, 기자가 기레기가 되는 수가 있다. 오늘 음식 꼭지를 기획 중인 신문과 기자에게 당부한다. 그래도 신문을 믿는 독자가 있다. 신문이라서 신뢰를 보내는 독자가 있다. 정말 쓰고 싶지 않은 말, 찌라시며 기레기 같은 말을, 더구나 음식 꼭지 앞에서는 쓰지 않게 해주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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