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차명계좌 1500개인데 왜 27개에만 과징금 부과할까

임지선 기자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사진)의 차명계좌는 약 1500개인데 왜 이 중 27개에만 과징금을 부과할까. 세금은 부과한다는데 왜 대다수 계좌에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을까. 이 회장의 차명계좌를 둘러싼 과징금과 과세에 관한 궁금증을 정리했다.

[팩트체크] 이건희 차명계좌 1500개인데 왜 27개에만 과징금 부과할까

-전체 차명계좌 가운데 몇개 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하나.

“지금까지 알려진 바로 이 회장의 차명계좌는 약 1500개다. 12일 법제처가 ‘과징금을 부과해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계좌는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긴급명령 이전에 개설된 계좌이다. 이 회장의 차명계좌 가운데 실명제 이전에 만들어진 계좌는 박찬대 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에게서 받은 자료를 보면, 총 27개이다. 이번에 법제처가 과징금을 부과하라고 유권해석을 내린 대상은 실명제 이전에 만들어진 27개에 불과하다. 법제처는 ‘금융실명제 이전(93년 8월)에 개설된 계좌가 금융실명법 시행(93년 12월) 이후 차명계좌의 자금 출연자가 따로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 자금 출연자는 차명계좌는 실명으로 전환하고 과징금을 징수해야 한다’고 했다.”

-과징금 액수는 얼마나 될까.

“과징금을 부과하려면 1993년 8월 12일 당일 차명계좌에 얼마가 들어 있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법적으로 당시 계좌 잔액의 50%를 부과하도록 되어 있다. 문제는 25년전 일이라는 점이다. 금융회사들은 당시 기록을 거의 갖고 있지 않다. 2008년 삼성 특검에서 밝혀진 잔액에서 연이율을 역산해가며 추정하는 방법이 있을 수 있지만 정확하지 않다는 맹점이 있다. 향후 금융당국의 논의를 지켜봐야 하는 부분이다. 과징금 부과 시효가 10년이라 두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다.”

-27개에 불과하다고 해도 금융위원회가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았던 것은 문제 아닌가.

“금융실명제 이전에 개설된 계좌에 과징금을 지금까지 부과하지 않은 부분은 금융위가 안이하게 판단한 점이 있다. 그간 금융위원회는 93년 8월 이전에 차명으로 개설됐지만 이후 실명으로 전환했다면 ‘실지명의’ 계좌라고 판단했다. 93년 이전에 만들어진 이 회장의 차명 계좌 20개는 실명으로 개설됐거나 가명으로 개설된 후 실명전환 의무기간(93년 8월 12일~10월 12일)에 이미 실명전환 완료됐다. 돈 주인이 따로 있는 차명계좌라도 본인이 직접 신분증 가지고 와서 실명 계좌로 바꿨다면 과징금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본 것이다. 이렇게 판단한 이유는 현행법상 차명계좌가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차명계좌 만드는 행위 자체가 불법은 아닌가.

“현재 금융실명제법 상 차명계좌 개설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금융실명법 3조에 ‘금융회사는 거래자의 실지명의(실명)로 금융거래를 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이 문장상으로는 돈 주인이 누구인지 관계없이 주민등록증을 갖고와 본인이 계좌를 만들었다면 실명 확인을 거쳤다고 보는 것이다. 은행 등 금융회사가 거래자가 돈 주인인지 아닌지 가릴 방법이 없다. 실제로 주변에 동창회 모임 계좌, 부모가 만든 자녀의 계좌 등 우리 주변에 차명계좌는 널려 있다. 실명법에 ‘거래자’가 돈 주인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통장 개설자를 의미하는지 애매하기 때문에 이같은 논란이 빚어지는 것이다.”

-1993년 8월 금융실명제 시행 이후에 개설된 차명계좌에는 과징금을 부과할 수 없나.

“이 사안을 이해하려면 우선 금융실명제가 어떻게 시행됐는지 알아야 한다. 금융실명제는 김영삼 정부에서 1993년 8월 12일 오후 8시부터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전면적으로 실시한다고 발표됐다. 이후 두달 안에 실명 계좌로 전환해야 했다. 두달 안에 전환하지 않으면 징벌적 차원에서 과징금을 물리고 이자와 배당소득에 차등과세(90%) 하겠다고 했다.

긴급명령으로 시행된 금융실명제가 법안으로 완성된 건 1997년 12월이다. 이 법에는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기관에서 비실명 계좌임이 드러나면 차등과세해야 한다는 내용만 있다. 금융실명제 법안에는 93년 실명제 시행 이후에 개설된 차명계좌에 과징금을 부과하라는 조항 자체가 없다. 금융실명제법 부칙 6조 1항에는 과징금 징수 대상을 ‘1993년 8월 12일 금융실명제 시행 전에 계좌가 개설된 금융자산’으로 못박고 있다.”

-그렇다면 과세는 추진하고 있나.

“국세청과 금융위가 협의해서 추진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08년 조준웅 삼성 특검이 밝힌 이 회장의 차명계좌 잔액은 2007년 12월 말 기준으로 4조5373억원이었다. 최근 경찰은 4600억원의 차명재산이 더 있다고 밝혀냈다. 정확히는 이자·배당 소득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봐야겠지만 최소 1000억원 이상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보통 이자·배당 소득 과세는 금융회사 계좌에 잔액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금융회사가 원천징수하는데 이번 경우는 이 회장측에서 이미 잔액을 찾아간 상태라 난감하다. 금융회사가 먼저 해당 세금을 내고 이 회장측에 요청하기가 쉽지 않다. 금융당국은 현재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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