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건물주 ‘궁중족발’의 눈물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직설]법 위에 건물주 ‘궁중족발’의 눈물

“서윤씨보다 그분들이 더 돈 많지 않을까요?”

서촌의 ‘궁중족발’ 이야기를 지인에게 털어놓았다가 들은 말이다.

궁중족발은 대폭 인상된 보증금과 월세로 세입자가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을 위기에 처한 현장이다. 건물주가 바뀌면서 보증금 3000만원, 월세 300만원이 보증금 1억원에 월세 1200만원으로 올랐다. 나는 이것을 “권리금 챙길 생각일랑 하지 말고 조속히 이곳에서 꺼져라. 나는 당신들 권리금 몫까지 빨아들여 건물을 매매해 더 큰 부자가 되겠다”는 건물주의 메시지로 해석했다.

궁중족발의 사장 부부는 부동산 중개업자로부터 “권리금을 1억5000만원에서 1억8000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며 다음 세입자에게 가게를 넘기고 나가라는 제안을 받아도, 그저 고향인 동네에서 오래도록 장사하며 살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으로 물리쳤다고 한다. 그러나 한국의 법체계는 이들의 소박한 바람을 보호해주지 않았다. 월세 인상 상한 비율을 5년 동안만 보장하고, 그나마도 환산 보증금이 매우 적은 액수여야 하는 것이 그동안의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이었다.

동네의 문화를 만들고 건물의 가치를 높인 주체가 누구인가? 그 동네에서 먹고 자고 장사하는 사람들이고, 그중 다수는 세입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물주는 세입자를 마치 쇼핑하듯 고르며 ‘소비’하고, 있던 곳에 머무르며 삶을 지탱하고자 하는 세입자들을 거칠게 쓸어버린다. 그나마 ‘영민한’ 세입자는 권리금이라도 얻어 나갈 수 있기에, 오래도록 한 곳에서 한 종목으로 장사하는 우직함보다 뜨는 동네를 알아보고 단기적인 장사 아이템과 포토제닉한 인테리어를 기획하는 감각을 높게 평가하는 인식은 확산된다.

이런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동네’라든지 ‘역사’라든지 ‘공생’ 같은 인문학적 가치를 좇은 결과가 무엇인지는 궁중족발이 보여준다. 궁중족발은 같은 곳에서 7년 동안 장사했다는 이유로 ‘합법적인’ 폭력의 대상이 됐다. 그것도 모자라 불법 심야 강제집행까지 거행됐고, 궁중족발 사장은 네 손가락이 절단됐다.

이것이 건강한 사회일까? 궁중족발은 한국 사회에 문제제기한다. 그리고 건물주에게 요구한다. 돈만 보고 폭력으로 내쫓지 말고, 사람 대 사람으로 대화를 하자고. 가능하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보자고. 이에 대해 공감하는 헌신적인 문화예술인, 종교인, 활동가들은 돌아가며 궁중족발에 머무른다.

나는 아주 드물게 행사에 얼굴을 비출 뿐이고, 이에 대해 일종의 부채감을 느낀다. 대신 친지들을 만날 때마다 궁중족발의 안타까운 사연을 알리는 일이라도 하려 하는데, 대다수는 궁중족발의 사연에 공감을 표하고 함께 분노하지만 아주 가끔씩 그들이 너보다 가진 게 더 많을 수도 있는데, 네가 왜 그렇게 그들 걱정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난다.

어쩌면 타인의 일에 너무 이입하여 감정소모하지 않기를 바라는, 나를 위하는 마음에서 한 말일지도 모른다. 안 그래도 일상에서의 스트레스 지수가 너무 높은 한국에서, 억울하고 불행한 이야기에 일일이 마음 쓰는 것은 분명 피로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 많은 타인의 고통을 이해할 때, 더 많은 사회적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지점이 만들어진다.

나는 한국 사회에 개선돼야 할 구조적 문제가 많다고 인지하기에 소망한다. 내 현실의 조건은 잠시 머릿속에서 지우고, 온전히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상황을 보며 함께 분노할 수 있기를. 우리는 그것을 공감능력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일단 궁중족발 건에는 일반 시민들보다 건물주님의 공감능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건물주님께 호소한다.

건물주님은 수십 채의 건물을 사고파신 이력의 분이라 들었어요. 그동안 많이 버셨는데, 그렇게 꼭 다 가져가야만 속이 후련하십니까? 그리고 건물 소유권이 다른 모든 권리 위에 있다는 것은 구시대적 사고방식이에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게 법이고, 상가임대차보호법 역시 보호기간을 10년 이상으로 장기화하고 환산보증금의 상한선을 높이거나 아예 폐지되는 방향에 대해 논의되고 있지요. 현행법을 근거로 본인의 신념이 옳다는 확신을 강화하지 마시고, 부디 함께 잘사는 세상으로 나아가는 데 동참해주시길 바라요!

<최서윤 <불만의 품격>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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