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명박 전 대통령(MB)은 2008년 1월29일 한국지엠(당시 GM대우) 부평공장을 찾았다. 선거에서 이긴 뒤 처음 찾은 산업 현장이었다. MB는 한국지엠을 투자유치와 노사화합의 성공적 사례로 치켜세웠다. IMF 외환위기 여파로 법정관리에 있던 대우자동차를 되살린 주인공이 GM이었다. GM은 그때까지 청라주행시험장을 건설하는 등 3조5000억원을 투자했다. 한국지엠은 2007년 최대 판매 실적을 올렸고 3년 연속 흑자를 냈다. 회사 사정이 나아지자 2001년 정리해고했던 1700여명의 노동자 중 희망자 1600여명을 2006년 복직시키기도 했다. 당시에도 GM은 신차 개발과 생산, 각종 설비 보강 등에 3조원을 투자할 예정이었다.
![[박재현의 ‘한 발 멀리서’]GM, FTA, MB…외면했던 것들의 이면](https://img.khan.co.kr/news/2018/02/27/l_2018022801003362300278221.jpg)
#2. 2011년 10월14일 미국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함께 디트로이트의 GM 공장을 방문했다. 이틀 전 미 의회가 비준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효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 양국은 한·미 FTA의 대표적 윈-윈 산업으로 자동차를 꼽았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GM이 2008년 금융위기 후 공적자금을 받고 재기하는 데 한국지엠의 역할이 컸다는 점을 지적하며 미국이 체결한 다른 FTA보다 미국 경제를 부양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금융위기 당시 GM은 회생을 위한 프로젝트로 소형차를 생산하기로 했지만 경험이 부족해 기술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때 GM의 소형차 모델을 개발해 생산한 곳이 한국지엠 부평공장이었다.
미국과의 협력을 통해 한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될 것이라던 GM과 FTA가 지금은 경제위기의 진원지가 되고 있다. 청천벽력도 이만한 게 없을 성싶다.
GM은 설 연휴를 앞두고 느닷없이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했다. 2013년 GM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 철수에 따른 수출 감소로 한국지엠에 대한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면서 정부와 산업은행, 정치권을 찾아다니며 증자 참여와 대출 및 세제 감면 등 1조원 규모의 지원을 요청했다. 지원을 받지 못하면 한국에서 철수할 것이라는 입장도 공공연하게 흘렸다. 협력업체 포함 30만개 일자리를 ‘인질’ 삼아 한국 정부에 경영실패의 부담을 나눠 지자는 얘기다. 말이 요청이지 ‘협박’에 가깝다. 정부 지원으로 연명하는 거번먼트 모터스(Government motors)라고 비아냥을 받고 있지만 칼자루는 GM이 쥔 모양새다.
FTA는 어떠한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 중 한·미 FTA를 ‘끔찍한 협정’으로 몰아세웠다. 특히 트럼프는 FTA를 ‘미국 우선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무기로 삼고 있다. 미국은 최근 개정협상의 안건으로 디지털교역과 약가제도, 화학물질등록평가법(화평법) 등 다양한 의제를 꺼내들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1년3개월 전 미국 반도체기업 퀄컴에 부과한 1조원대 과징금 역시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위기가 닥쳤을 때 GM은 우리 경제에 사막의 오아시스였고, 성장을 향해 질주할 때 FTA는 무한한 기회의 바다라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희미한 옛 그림자’가 돼버렸다. 그런데 그 이유가 GM 본사나 미국 정부의 표변 때문이라고만 할 수 있을까. 혹여 GM과 FTA 중심에 자리 잡은 자본의 속성, 즉 상황에 따라 이익을 극대화하고 손해를 최소화하려는 냉혹성을 애써 외면하다 된서리를 맞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림자는 못 보고 빛만 보고 달려온 결과일 수 있다. 실제로 FTA 협상이 타결됐을 때 성장지상주의와 시장만능주의가 사회 곳곳에 확산될 것이란 우려는 ‘소수 의견’으로 치부됐다. 불평등은 성장 과정에서 어쩔 수 없는 것, 소수이거나 약한 것들은 성장의 장애물로 취급받았다. 외환위기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 이식된 신자유주의는 연대와 공공성, 정의를 성장을 달성한 뒤에나 필요한 ‘사치재’로 만들어버렸다.
돈과 성장만이 지상의 과제처럼 살아왔던 결과이기도 하다. 그 정점에 있던 것이 MB의 당선이었다.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저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2007년 8월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였던 MB는 서울 도곡동 땅 실소유주 의혹 및 BBK 사기사건 연루 의혹에 이렇게 말했다. BBK를 설립했다고 발언하는 동영상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탄탄했다. 기업가 출신이 대통령이 되면 경제는 잘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합리적 의심을 덮었다. 대통령 선거가 성인군자를 뽑는 것은 아니라며 경제성장률 7%, 국민소득 4만달러라는 ‘7·4·7 공약’을 앞세운 거짓말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렇게 당선된 MB가 처음 찾은 곳이 GM이었고, 미국까지 날아가 FTA를 칭송했다. 그 결과로 기록한 MB 재임 기간 경제성장률은 2.9%였다. 노무현 정부의 4.3%에 훨씬 못 미쳤고, 강바닥에 수조원의 세금이 파묻혔다. 지금 그 거짓말의 실체와 자본의 냉혹한 논리를 체험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