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3년 썼더니 잔고장이 자주 나 새 휴대전화를 알아보고 있다. 요즘 나오는 휴대전화 기능 중 가장 놀라운 것은 카메라였다. 한 업체의 휴대전화는 피사체의 배경을 푸른 하늘에서 보랏빛으로 바꿀 수 있다는 CF까지 내보냈다. 이런 궁금증이 든다. 사진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 즉, 사건의 증명이다. 한데, 찍는 사람 마음대로 피사체에 변화를 줄 수 있고, 배경마저 바꾼다면 그걸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이미 사진은 ‘원판’을 보여주지 않은 지 오래됐다. ‘뽀샵’(포토샵)이라는 말이 전문적 프로그램 용어가 아니라 흔히 사용하는 말이 됐다. 명도나 채도의 조정 문제가 아니라 색감도 보정(아니 수정)할 수 있다. 광고는 심지어 모델의 다리까지 늘이기도 한단다.
보이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라고 간파한 것은 장 보드리야르다. 그는 이미지가 실재를 압도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비잔틴 시대의 성화상이 신을 대신하면서 신성을 약화시켰듯이, 이미지가 실재에 앞선다고 했다. 이것이 시뮬라크르이다. 시뮬라크르는 존재하지 않지만 실재보다 더 실제적인 대상이다. 이를 파생실재라고 했다.
‘오늘날의 시뮬라시옹은 원본도 사실성도 없는 실재, 즉 파생실재를 모델들을 가지고 산출하는 작업이다. 영토는 더 이상 지도를 선행하거나, 지도가 소멸된 이후까지 존속하지 않는다. 이제는 지도가 영토에 선행하고-시뮬라크르들의 자전(自轉)-심지어 영토를 만들어낸다.’(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학자들은 시뮬라크르의 세계를 하이퍼리얼리티라고 표현한다. 하이퍼리얼리티는 그림자가 실체보다 더 진짜 같은 세계다. 이미 우리는 가상세계가 생활 속에 들어온 시대에 살고 있다. 얼마 전 가상화폐 광풍이 요동쳤다. 가상현실(VR)도 대중화되고 있다.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현실과 겹치는 시대다.
아마 우리는 사실을 개의치 않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 세계는 지식보다 정보를 중시한다. 지식이란 하루아침에 채울 수 없다. 벽돌을 하나하나 쌓듯이 공부의 과정이 필요하다. 반면 정보는 찰나적이다. 주식시장에서 남보다 빨리 얻은 정보는 돈이 되지만, 늦은 정보는 무용지물이다. 정보는 지식보다 환금성이 있다.
이 세계는 로고스가 취약해진 세계이다. 로고스는 이성(理性)이며 법칙이다. 법이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흔들림 없어야 한다. 절대적이어야 한다. 고대와 중세에는 종교가 로고스였다. 고대인은 신의 말씀을 불변의 법칙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고스를 변함없는 대지, 땅에 비유했다. 근대에 와서 로고스의 자리를 과학과 법이 차지했다. 반면 정보화시대에는 정보가 물처럼 흐른다. 유동적이다. 해서 지그문트 바우만은 로고스가 약화된 이 시대를 액체근대, 유동하는 근대라고 했다.
로고스가 약화된 시대에 상대적으로 커지고 있는 것은 파토스다. 파토스는 감성이며, 열정이다. 로고스가 여러 사람의 눈에 바라보이는 객관에 의지한다면, 파토스는 자신의 감정에 의지한다. 파토스는 상황적이다. 자본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파토스의 시대를 이해하고 있었다. 이미 노동현장에서는 노동자의 감정을 상품화하고 있고, 마케팅에 감성을 넣었다.
진실이란 보는 데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흙탕물도 가라앉아야 밑바닥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순간순간 빠른 판단을 내려야 하는 정보화 시대에 사람들은 감에 의지하기 십상이다. 하여 감정, 파토스에 기대게 된다.
문제는 세상은 더 복잡해졌다는 것이다. 산업과 문화와 정보의 다변화가 직조해나가는 세상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단순명쾌하게 진짜와 가짜,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는다. 또 사건은 과거처럼 한 장소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작게는 지역, 넓게는 지구적 구조 속에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한데 사회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동정과 지지, 분노와 혐오의 감정이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꺼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사안에 따라 사람들은 한쪽으로 달려가 시소의 끝자락에 선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람을 설득할 때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가 필요하다고 했다. 에토스는 바람직하거나 신뢰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일정한 행동양식에 비유할 수 있다. 이 세 가지는 상반된 개념이 아니다. 로고스는 파토스를 필요로 하고 파토스는 로고스를 바탕으로 발산돼야 한다. 로고스와 파토스는 에토스에 기대야 한다.
이 시대에 필요한 에토스는 무엇인가. 나는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는 인내심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안개가 걷히기까지 기다려야 수평선을 볼 수 있듯이, 세상사도 시간이 흐른 뒤에 이해가 될 때가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