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해도 당당하고 명랑한 그녀, 자본주의 사회의 히피
수년 전 한 ‘집시 부부’를 만나 인터뷰한 적이 있다. 부부가 4년간 캠핑을 하며 세계 곳곳을 떠돌아다닌 시간을 기록한 <세계가 우리집이다>라는 책을 낸 직후였다. 그들은 영락없는 히피처럼 보였지만 뜻밖에 히피 문화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히피처럼 여행한 것은 단지 “그들이 하던 방식을 따르면 적은 돈으로도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영화 <소공녀>의 미소는 담배를 포기하지 않는 애연가다. 담뱃값이 오르자 그녀는 크게 고민한다.
나는 그때 지금과 같은 세계에서 히피라는 건 결국 다 거짓말이라고 생각했고, 더 나아가 그들에게 “고도로 자본주의화한 사회에서 진짜 히피라는 게 존재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이렇게 답했다.
“아마존에서 한동안 함께 생활했던 한 프랑스 여성은 서아프리카에서 브라질까지 돛단배를 히치하이킹해서 대서양을 건너왔다. 그 전엔 2년간 프랑스의 한 스콰트 하우스(빈집 점거 공동체)에서 살았다고 했다. 나중에 그녀의 아버지가 의사이며, 할아버지는 파리에서 아주 큰 화랑을 운영하고 있단 걸 알았다. 그녀가 여행하면서 그림을 그려 보내면, 어떤 그림도 높은 가격에 팔아준다고 했다. 그게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능한 히피인 것 같다.”
■ 자본주의가 낳은 히피
영화 <소공녀>의 첫 시퀀스는 이렇다. 전망 좋은 방, 집주인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는 담배를 피우며 스타벅스 커피를 손에 들고 음악을 듣고 있다. 주인공 미소(이솜)는 앞치마를 두르고 믿음직스러운 솜씨로 청소 중이다. 그녀는 가사도우미다. 일이 끝나고 일당 몇 만원을 손에 쥐고 돌아가려던 미소는 여자에게 묻는다. “쌀 좀 남는 거 있어? 집에 쌀이 떨어져서.” 다음 장면, 미소는 긴 머리를 휘날리며 한 손에 담배를 피우면서 길을 걷는다. 다른 한 손에 든 쌀 봉지에 구멍이 뚫린 줄도 모르고.
미소는 그런 사람이다. 쌀은 떨어져도 담배는 포기하지 않는 사람. 집주인은 집주인이고, 가사도우미는 가사도우미인 사람. 적어도 미소의 태도에 둘 사이의 위계는 설정되어 있지 않다. 미소라는 캐릭터를 구성하는 것은 경제력, 학력, 사는 집 같은 게 아니다. 그녀를 구성하는 것은 ‘에세’ 담배(나중에 500원 싼 ‘디스’로 바뀐다), 저녁 몰트바에서의 위스키, 지포 라이터, 보온병(나중에 재떨이로 밝혀진다) 같은 것이다.
허름한 단칸방에 살며 자신의 직업을 가사도우미라고 소개하는 그녀는 무슨 예술가도 아니며, 그 밖의 다른 것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작다. 담배, 위스키 한 잔, 그리고 웹툰 작가 지망생인 가난한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그녀는 최소한의 돈과 이 세 가지와 제 몸 누일 따스한 집 한 칸만 있으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부모도 없고 등록금이 없어 대학도 중퇴한 미소에겐 대체 그렇게 사는 일이 어렵다. 그녀는 담뱃값이 2000원 오르고 월세도 5만원이 오르자, 담배 대신 미련 없이 집을 포기하고 나온다. 그리고 어린 시절 함께 밴드를 했던 친구들 집을 하나씩 방문하며 지낸다.
미소의 결정은 표면상 ‘생계는 포기해도 취향은 버릴 수 없는’ 젊은 세대의 삶의 태도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데 가깝다. 영화는 줄곧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가난한 미소가 가진 ‘에지’ ‘스타일’ ‘유니끄함’ 같은 것을 강조한다. 그러나 단지 젊은 세대의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나 ‘욜로(You Only Live Once)’의 트렌드를 담은 새로운 여성 캐릭터라고만 치부하기에, 그녀의 결단에는 보다 고귀한 데가 있다.
가난한 연인 한솔(왼쪽)과 미소.
■ 미소서식지(microhabitat)
새치가 섞인 기다랗게 자란 머리, 추운 날씨에 본의 아니게 겹겹 ‘레이어드’한 옷차림, 각종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는 그녀는 히피 여행자처럼 보이지만, 실은 잘 꾸며 말해봐야 ‘간지 나는’ 노숙인 신세다.
미소는 히피처럼 보일 뿐 근본적으로 히피일 수 없다. 그녀는 세상의 ‘스탠다드’에 자신을 집어넣으려는 이들에게 “나는 집이 없는 게 아니라 여행 중인 거야”,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라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내 인생의 목표가 빚 없이 사는 거야”라고 말하는 온건한 사회구성원이다. 그녀는 사회 밖으로 뛰쳐나갈 생각이 없다. 그녀는 물질문명 자체에 항거하는 사람이 전혀 아니며, 반체제적 탈사회적 행동을 하지도, 개방적인 성관계를 갖지도(물론 “헤픈 게 뭐 어때서요”라고 말하는 여성이기는 하다), 자연을 찬미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녀가 가진 선택지는 미세하디 미세하다.
미소의 행동이 대담한 결정이며 희귀한 용기인 것은 이 ‘미세하디 미세한’ 크기에 있다. 자본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떻게든 자신의 작은 서식지를 만들고자 하는 그녀의 분투는 눈물겹다. 영화의 영제 ‘microhabitat’는 미소서식지, 미소생물이 서식하는 특유의 다양한 환경 조건을 갖춘 장소라는 뜻이다. 작디작은 선택지 안에서, 작디작은 서식지를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선택을 감행한 행위. 4500원짜리 담배와 1만4000원짜리 위스키 한 잔을 위해 집을 포기한다는 상징적인 몸짓. 그것은 돈 없는 사람은 거지이고 집 없는 사람은 노숙인일 뿐인 이 사회에 작은 균열을 만든다.
무엇보다 그녀가 “유니끄”한 것은 가난하지만 결코 취향을 잃지 않는 인간이라서만은 아니다. 현실에서 그녀의 행동은 줄곧 곤경에 처한다. 돈이 없어 친구 집을 전전하는 주제에 “나 술 담배 사랑하잖아”라는 말은 “그 사랑 참 염치없다”는 비난을 받기 일쑤이고, ‘민폐 캐릭터’로 눈살을 찌푸리게도 한다. 그러나 그녀는 친구 집에 잠시 머무르는 것을 민폐라고 생각지 않는 사람이다. 그것은 그녀가 뻔뻔해서가 아니라, 그녀 자신이 집에 오는 친구에게 언제든 방을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돈이 많은 사람에게나 적은 사람에게나, 지위가 높든 낮든 한결같은 태도를 가진 의연한 인간이다. 우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고 밥을 지어주고, 내가 머문 주변을 닦고 가꾸고 돌보는 일에 익숙한 한 마리의 작고 어여쁜 생물이다.
미소는 현실에 치인 친구들과 ‘스탠다드’의 방해공작에도, 유일한 안식처인 남자친구가 집 구할 돈을 모으기 위해 웹툰을 포기하고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고 계속해서 끝으로 밀려나면서도, 자신의 삶의 태도를 결연히 유지한다. 그것은 그녀 자신에겐 그저 자신의 삶을 묵묵히 밀고 나가는 것이었을지 모르나, 내겐 이 땅에 어떻게든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려는 한 마리 생물의 작지만 급진적인 투쟁처럼 보였다. 세상이 바뀌는 것은 거대한 장면전환이 아니라, 작디작은 균열이 쌓인 결과일 것이다.
한솔은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면서 미소에게 묻는다. “어디로 갈 거야 이제?” 마지막, 카메라는 어두운 도시 천변을 비춘다. 그 가운데 작은 텐트에 따스한 불빛이 들어와 있다. 그곳이 미소가 지금 다다른 당분간의 서식지다. 그러나 현실에서 천변에 텐트를 치고 생활하는 여성이 안전하고 행복할 수 있을까? 한솔이 아무 사고 없이 2년 안에 약속대로 5000만원을 모아올 수 있을까? 그 2년 동안 미소는 내면의 무언가 부서지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까? 여전히 담배와 위스키를 즐기면서?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 다음에는? 세상은 그들이 바라는 대로 작고 무사한 삶을 내놓을까?
아마 잔혹한 세계는 앞으로도 그녀에게 친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얗게 센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담배를 피워대고 위스키 한 잔을 포기하지 않는 그녀의 태도는 눈물 나는 구석이 있다. 별나고도 자연스러운 그녀의 모습은, 놀랍게도 지금 어떤 이들의 삶의 방식에 실제적인 용기를 준다. 그것은 ‘우리는 젊고 멋이 있으니까, 그래도 괜찮아’라는 기만적 위로라서가 아니다. 자기 삶의 가치는 자신이 정한다는 것.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든, 그게 자본이나 사회가 아니라 자신이 정한 길이라는 것.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은 이 삭막하고 폭력적인 세계에서, 그것을 어떻게든 긍정하려 하고 있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