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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번영의 시대, 언론의 사명

입력 2018.04.29 21:05

수정 2018.04.29 2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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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 남북정상회담에서 양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서막을 열었다. 양 정상이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나드는 장면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안겼다. 같은 언어를 쓰기 때문에 가능했던 도보다리 산책과 ‘벤치회담’은 분단 이후 남과 북의 분열과 적대의 역사가 어떤 의미였을까를 새삼 돌아보게 했다. 언론은 당일 회담의 주요 내용은 물론 양 정상의 일거수일투족까지 정상회담의 모든 순간을 실시간으로 전달했고, 회담 내용 분석과 전문가 의견을 앞다퉈 내보냈다. 시민들 역시 다양한 채널을 통해 자신이 받은 감동을 교류하고, 유머를 동반한 다양한 감정 표현물들을 생산했다. 대동강 맥주와 옥류관 냉면에 대한 기대를 보이는 메시지가 각종 온라인 공간에서 인기를 얻었다. 많은 시민들이 평화를 향한 기대와 역사적 순간을 함께 나누고 즐겼다.

[미디어 세상]평화번영의 시대, 언론의 사명

앞으로 달라질 남북관계에 대한 희망과 기대는 우리 사회 변화의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기대는 분단체제로 인해 가려지고 정당화되어 온 문제들에 대한 접근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분단체제는 무엇보다 전쟁의 공포를 동원하여, 사회의 안정을 추구해야 한다는 미명하에, 인권 문제 등 사람들의 실제적 삶을 개선하는 일을 우선시하기 어렵게 만들어왔다.

분단체제가 만들어낸 사회적, 개인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고 있다. 군부 독재 시절 내내 평범한 사람들이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는 일이 빈번했지만 이런 문제를 언론이 보도하고 의제화할 수 있었던 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가능했다.

한편 보수 정치세력은 정권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전쟁의 공포를 무기처럼 활용해 왔으며, 보수언론들이 여기에 힘을 실어왔다. 북한의 존재가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되거나, 사회의 대립을 조장하기 위해 분단 상황을 사용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이 과정에서 사회적 소수자 혐오와 배제를 위해 북한과 이념 문제를 악용한 경우마저도 있었다. 동성애자가 좌빨(좌파 빨갱이)이어서 한국 사회의 체제 전복을 목표로 하는 존재이므로 절대 인정해서는 안된다는 폭력적 표현을 공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공적 석상에서 서슴지 않고 내뱉는 사건이 2015년에 일어난 것이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면 동성애가 합법화되어서 군 전투력이 손실된다는 비논리적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개인의 사상을 검증해야 한다는 논리는 최근 일부 게임업계에서 여성 인력을 배제하는 수단으로도 쓰인다.

분단체제는 폭력적 군대 문화의 개선이나 병영 조건 개선 등 실질적으로 필요한 조치들이 행해지기 어렵게 만드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저출산 문제에 대한 시각에서도 북핵에 따른 한반도 전쟁 위기를 눈앞에 둔 상황에서 출산율이 낮아 앞으로 군 병력이 충원되지 않을 것이니 국가 위기가 초래된다는 식의 논리도 등장했다. 이 때문에 출산하지 않는 여성을 문제있는 자로 인식하는 담론이 형성되고, 어린이·청소년을 미래의 국가 안보 자원으로 동원하고 호명하는 방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분단체제 틀 내에서 쉽게 다루지 못했던 북한 이탈 주민의 인권 특히 여성 인권과 관련된 문제가 부상하고, 무엇보다 북한 이탈 주민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에 가득한 시선이 달라져야 하는 등의 과제가 산적해 있었지만, 이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지 못했다.

분단체제를 공고하게 해왔던 상호 적대의 안개가 걷히고, 남과 북의 평화 발전을 위한 단초가 마련된 지금, 언론이 감당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 어느 때보다 막중한 상황이다. 앞으로 전개될 평화 번영의 시대와 관련하여 사실에 기반을 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와 필요한 일, 그리고 일의 순서를 논의할 사회적 공론의 장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벌써부터 일부 언론의 보도 태도는 우려를 자아내게 한다. 일부 보수언론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말이 구체적이지 않으면서 북한에의 인도적 지원만을 약속했다는, 과거부터 반복되어 왔던 ‘북한에 대한 퍼주기’ 프레임을 여전히 활용하고 있다. 물론 남북 문제는 늘 신중해야 하고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정부의 외교적 노력이 중요해지는 등 앞으로 남은 일이 더 많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진영 논리에 따른 구태의연한 보도 태도는 안보를 무기로 사용하려는 낡은 틀을 반복하면서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시대적 분위기를 이끄는 역할을 하지 못한다.

언론은 좀 더 신중하고 냉철하게 남과 북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를 고민하고, 앞으로 남은 과제와 그것을 수행하기 위한 대안들을 모색하는 공론장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와 더불어 분단체제 때문에 가능했던, 이제는 사라져야 할 문제들을 찾아내고 우리 사회의 진보를 앞당길 수 있는 제안들을 적극적으로 의제화해야 한다. 분단체제하에서 당연하게 여겨졌던 사회적 소수자와 인권에 대한 억압과 폭력들이 전면적으로 드러나도록 해야 하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제안들을 제시하고, 그 효용성과 타당성에 대해 정부와 국회 그리고 시민들이 논의할 수 있는 의제를 설정해 내는 것, 그것이 언론 본연의 힘이자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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