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노믹스가 여전히 희망인 이유

안호기 경제에디터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1년간 경제정책 운용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하다. 야권과 보수 진영은 지난 1년 경제정책이 ‘실패’였다고 규정했다. 전 정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시민사회단체도 비판적으로 평가한다. 자신의 삶이 전보다 나아졌다고 여기는 시민도 많지 않다.

일부 지표만 본다면 썩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측면도 있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1%로 3년 만에 3%대에 복귀했다. 코스피지수와 코스닥지수가 최근 1년간 각각 7.7%, 32.4% 올랐으니 주식시장도 좋았다. 오르기만 하던 집값과 전셋값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지난달 수출이 18개월 만에 하락세를 기록했어도 수출 역시 양호한 편이다.

[편집국에서]제이노믹스가 여전히 희망인 이유

하지만 시민이 체감하는 경기는 지표와 거리가 있다. 업무지시 1호로 일자리위원회 설치를 주문하는 등 문재인 대통령이 강조했던 일자리 늘리기 정책은 오히려 뒷걸음질했다. 지난 3월 실업률 4.5%는 같은 달 기준으로는 2001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실업자수 125만7000명은 2000년 3월 이후 최대 규모였다. 연초까지 월평균 30만명 안팎 늘었던 취업자는 두 달 연속 10만여명 증가에 그쳤다. 청년실업률이 10%에 근접하는 등 새 일자리 찾기는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정부는 출범 후 ‘소득주도 성장’ ‘일자리 중심 경제’ ‘혁신 성장’ ‘공정 경제’ 등 네 바퀴를 축으로 경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경제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이른바 ‘제이노믹스’였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당시 “가계를 중심축으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복원해 저성장과 양극화를 동시에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경제관료 출신인 김 부총리 스스로도 생경했던지 “낯설더라도 용기를 내고 도전하자”고 했다.

과거 경제정책은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고, 가계는 허리띠를 졸라매 저축한 돈이 기업에 흘러가도록 유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제이노믹스는 분명 새로운 패러다임이었다. 대기업에 대한 혜택을 줄여 중소기업 지원을 늘리고, 가계는 소득분배를 강화해 소비를 활성화한다는 것이었다. 핵심은 저소득층 가계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진작시켜 성장을 꾀한다는 소득주도 성장이었다.

경제 약자 편에 서서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제이노믹스의 방향과 취지는 바람직하다. 정부는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고, 일자리 위원회를 꾸리고, 철폐해야 할 규제를 찾아나서고, 재벌 대기업 개혁에 박차를 가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최저임금 인상은 오히려 인건비 부담이 늘어난 자영업자의 경영난을 부추기고 고용을 감소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재정을 대거 투입했음에도 일자리는 사상 최악 수준으로 추락했다. 반도체 등 일부 산업에 치우친 성장은 새 동력 발굴이 절실하다. 그나마 공정 경제 분야는 대·중소기업 상생 등 공정거래 정책이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보수 야당이 엊그제 문재인 정부 출범 1주년을 앞두고 각각 토론회를 열었다. “문재인 정부는 서민과 근로자를 죽이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문제는 경제다. 일자리 없는 민생은 재앙이다”(자유한국당 정진석 의원) “민생의 아픔과 쓰라림을 느끼지 못하고 아우성과 하소연이 들리지 않나 보다”(박주선 바른미래당 공동대표) 등의 발언을 쏟아내며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질타했다.

그럼에도 문 대통령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성사 등 호재가 있기는 했다. 그것만으로는 대선 득표율 41.1%보다 두 배가량 높은 문 대통령의 지지율을 설명할 수 없다. 시민이 대통령과 정부에 믿음을 갖고 있으며, 앞으로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경제 패러다임을 바꾸면 다 같이 잘사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이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있다.

제이노믹스의 핵심인 소득주도 성장은 단순히 임금인상에 그치는 게 아니다. 시민 삶의 질을 높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대기업은 납품단가를 올리고, 사용자와 고임금 노동자는 임금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 많이 가졌던 계층이 이익을 나눠야 하는 것이다. 노동시간을 줄여 소비여건도 조성해야 한다. 이는 기득권의 양보와 배려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정부 홀로 할 수 없는 것이다.

대타협의 첫발은 정치권에서 떼야 한다. 3조9000억원 규모 추가경정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있다. 일자리 창출과 조선·자동차 구조조정으로 곤경에 처한 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추경이지만 발이 묶였다. 야당이 문재인 정부 1년 경제정책을 질타한 기사에 달린 한 댓글이 눈길을 끈다. ‘허구한 날 진상 떨며 영업방해하면서 망하기를 바라는 양아치 같은 짓은 그만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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