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다. 여학생들만 내려오라는 연락을 받고 과학실에 모여 앉았는데 그날따라 암막커튼이 주는 어둑어둑한 분위기가 낯설게 느껴졌다. 그날은 학교에서 월경에 대해 공식적으로 배운 유일한 날이었다. 내용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은 이 학교 학생들이 얼마나 뒤처리를 잘하고 있는지 검사하러 화장실에 가볼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고 나는 그동안 우리가 잘해왔는지 아닌지 염려하느라 나머지 얘기를 다 놓치고 말았다. 월경을 공식적으로 처음 마주했던 그날 내게 남은 것은 ‘여자끼리의 비밀’, 그리고 ‘감쪽같은 뒤처리’의 중요성이었다.
1975년 방송윤리위원회는 개정된 규정에 따라 방송금지 처분을 받은 광고를 분석해서 발표했는데 그중 ‘시청취자에게 혐오감이나 악감정을 줄 우려가 있는 것’ 항목을 위반한 저질광고의 예로 ‘여성생리대에서 방수가 완벽한’을 들었다. 생리대 이야기를 공공연히 하는 것에 대한 저항은 꽤 거세서 생리대 광고가 15년 만에 TV에 다시 등장했을 때도 온 가족이 보는 매체에 생리대를 보여주는 것이 맞느냐, 아이들과 함께 보는데 낯뜨거워 어쩌란 말이냐는 문제제기가 계속되었다. 그렇게 월경은 대놓고 말하기는 좀 그런, 잘못은 아니지만 당당해서는 안되는, 중요하지만 숨겨야 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한쪽에선 초경을 신호로 ‘진짜 여자’가 되었다거나 ‘어른’이 되었다고 축하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입은 다물고 몸은 감추어 없던 일처럼 꾸며야 세련된 것처럼 여긴다. 월경이 그저 내 몸에서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면 좀 다르게 받아들일 수는 없을까.
꽤 여러 해 전 친구의 추천으로 면월경대 한 꾸러미를 구입했다. 그리고 나는 일회용품 없는 첫 월경을 보낸 뒤 생애 처음으로 주부습진을 얻었다. 새로 구매한 물건에 대한 과한 집착이 원인이었다. 잘 쓰고 싶고 오래 쓰고 싶으니 혹여 얼룩이라도 생길까 매번 그 자리에서 바로 빨았고 생전 안 하던 손빨래를 비누를 구석구석 발라 하루에도 몇 번씩 했으니 피부가 견디지 못한 것이었다. 나중에야 얼룩 따위는 가볍게 무시할 수 있게 되었고 물에 담가놓았다가 한 번에 빨거나 정 색이 변했다 싶으면 과탄산소다를 이용해 새것처럼 만드는 요령도 알게 되었다.나의 경우 심한 월경통이나 피부 트러블 같은 건강문제를 겪고 있지 않았기에 면월경대는 그저 소소한 실천 같은 느낌이었는데 막상 사용하다보니 생각하지도 못했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월경을 훨씬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일회용품을 사용하던 시절에는 그저 휙 버리면 끝이었다. 바지에 묻지 않고 주머니에 새 물건만 있다면 그다음은 더 신경 쓸 이유도 없었다. 떼어내 버리고 새 물건을 꺼내 쓰는 패턴에 아무 고민도 없었고 딱히 누군가와 나눌 이야깃거리도 없었다. 그런데 면월경대는 좀 달랐다. 물에 담가둔 월경대를 발로 밟아 빨거나 얼룩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너덜거리는 단추를 다시 손보거나 닳아서 너덜해진 월경대를 정리하는 의식을 통해 월경을 내 삶 안으로 훅 가져올 수 있었다. 일회용품에 비하면 좀 번거로워도 마음이 가까워졌으니 몸을 놀리는 수고로움이 기꺼이 받아들일 만하게 여겨졌다. 불편함을 받아들이니 자꾸 들여다봐야 했고 그러다보니 내가 갖고 있던 막연한 거부감이 줄어들었다.
학교나 미디어에서 월경을 부끄러운 것으로 묘사하거나 임신에 실패한 난자의 뒤안길쯤으로 설명하는 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이 현상을 편하게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 월경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건강하고 당당한 월경은 과연 무엇일지 여성들은 지금도 질문과 답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다. 돌아오는 28일 월경의날을 맞아 주말 동안 월경페스티벌을 비롯해 많은 행사들이 열린다. 어떤 고민과 지혜가 오고 갈지 기대를 품고 다른 이들을 만나러 일찌감치 거리로 나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