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

조영관 | 변호사·이주민센터 친구 사무국장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선생님들과 인권교육을 하면서 ‘우리는 언제 인간이 존엄하다고 느끼는가?’라는 질문에 관해 토론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몸이 불편한 장애인을 위한 복지시설, 나이가 많은 어르신을 위한 요양보호시설, 노숙인의 자활을 지원하는 사회복지시설과 같은 사회복지 시스템을 만들고 운영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는 식상한 결론을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선생님들은 교과서 같은 결론을 넘어 오랫동안 서로 갑론을박 토론을 이어갔다. 현장에서는 국회, 정부, 언론 등 우리 사회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치는 기관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결정이 많아지고 있는 점을 가장 많이 우려했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두텁게 보장되기 위해서는 몇몇 사회복지시설이 마련하고 있는 기초적인 수준을 넘어서, 그 사회가 구성원인 인간을 무시하지 않고 있음을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 더욱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독일의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인간이 사회에서 어떤 다른 목적을 위한 도구로 이용당하지 않고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선]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

철학적이고 추상적인 개념을 멀리하는 법에서도 인간의 존엄성은 강조된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1948년에 제정되어, 다양한 인권 문제의 세계적 기준이 되는 ‘세계인권선언’은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dignity)하며, 평등하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우리 사회의 최상위 규범인 대한민국 헌법에도 ‘존엄’이라는 단어가 총 3번 등장한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제10조)는 선언을 시작으로, 일하는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제32조 제3항)하도록 하고,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되어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제36조 제1항)는 조항에서 마지막으로 등장한다. 생존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인 요소인 ‘생산의 현장인 일터’와 ‘재생산의 공간인 공동체’의 기준이 ‘인간의 존엄성’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우리 헌법의 성찰은 소중하다. 그런데도 최근 이런 헌법의 지혜가 무색해지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5월25일 새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의결했고, 바로 오늘(28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매월 1회 이상 지급하는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 중 일부를 최저임금에 포함하도록 하고, 이를 위한 취업규칙 변경을 사업주가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국회는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사업주의 부담을 줄이고,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가 저임금 노동자에게 집중될 수 있도록 하는 개정안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노동계는 이번 개정안이 최저임금 인상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개악(改惡)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실제 민주노총에서 연봉 2500만원 미만 저임금 노동자 602명을 대상으로 이번 개정안을 적용하여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내년 최저임금이 지금보다 15% 인상되더라도 저임금 노동자 10명 중 1명에게는 최저임금 효과가 전혀 발생하지 않고, 평균적으로 약 20%의 임금인상 삭감 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러한 절차를 노동자와 상호 합의가 아닌 사업주의 일방적인 ‘의견청취’만으로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지위에 있고 사업주와 힘의 불균형도 클 수밖에 없어, 최저임금 효과가 절실한 곳에서 각종 꼼수가 등장할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지난 대선 후보의 공통 공약이었던 최저임금의 실질적 인상은 취약계층 노동자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약속이었다. 일하는 인간의 존엄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 더 이상 후퇴하지 않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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