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대 가격의 진실
유한킴벌리 시장점유율 47% 독과점 구조 속 가격 인상 주도
공정위, 1년반 조사에도 “시장지배 가격남용 아니다” 면죄부
“법 개정하고 시장 진입장벽 허물어 경쟁…가격 안정시켜야”
생리대는 여성들에게는 생필품이지만 독과점 업체들의 가격 인상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 서울시내 한 대형 할인마트의 생리대 판매코너에 제품이 진열되어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일 공정거래위원회는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가격 인상을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가격남용으로 볼 수 없다고 결론내렸다. 가격남용이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가격을 부당하게 변경하는 행위를 뜻한다.
공정위는 2010년 대비 2017년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공급가격 인상률(19.7%)이 재료비 상승률(12%), 제조원가 상승률(25.8%)에 비해 현저히 크지 않다고 판단했다. 또 유한킴벌리는 주로 신제품과 리뉴얼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는데, 공정거래법상 신제품과 리뉴얼 제품 가격 인상은 가격남용을 적용할 수 없어 조사에 한계가 있다고도 했다.
27일 공정위에 따르면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특별위원회는 생필품에 가까운 생리대 등은 일반 사치재보다 느슨한 기준으로 가격남용을 제재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경쟁법 전문가는 “경쟁시장을 가정해 산출한 가격과 독과점 시장인 현재 가격을 비교해 가격남용을 입증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국내 일회용 생리대 시장은 독과점 시장이다. 지난해 1월 기준으로 유한킴벌리와 LG유니참, 깨끗한나라의 시장점유율을 합치면 75%가 넘는다. 이 중 유한킴벌리는 같은 기간 시장점유율 46.6%로 생리대 시장의 지배적 사업자다. 2016년 유한킴벌리 전체 매출액 1조4999억원에서 생리대는 16%를 차지했다. 유한킴벌리의 생리대 부문 영업이익률만 떼놓고 보면 제조업 평균인 6%보다 2.5배 이상 높은 15%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한킴벌리의 15%가 넘는 영업이익률은 생리대 시장에서 독과점적 지위를 이용해 자주 가격을 올렸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유한킴벌리도 자사 생리대 가격이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은 인정했다. 최규복 유한킴벌리 사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국 생리대 평균 가격은 높은 편”이라며 “다만 동급의 다른 업체 제품과 비교하면 비싸지 않다”고 말했다.
유한킴벌리의 가격 인상 방법은 교묘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유한킴벌리는 2010년 1월에서 2017년 8월 사이 총 140회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이 중 기존 제품 가격 인상은 38회였고 평균 인상률은 3.9%였다. 신제품·리뉴얼 제품의 가격 인상 횟수는 102회에 평균 인상률은 8.4%였다. 이 중 5번은 20% 이상 가격을 올렸다. 신제품·리뉴얼 제품 출시로 가격 인상을 주도한 것이다.
이는 공정거래법의 제재를 벗어나는 전형적인 가격 인상 방법이다. 공정거래법은 가격남용에 상품의 가격을 부당하게 결정·유지 또는 변경하는 행위를 포괄하지만, 시행령은 기존 제품의 가격 변경 행위만 제한하고 있다. 생리대 제조업체들이 리뉴얼·신제품을 출시하는 식으로 가격을 편법 인상하면 정부가 막을 수단이 없다는 얘기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감에서 “유한킴벌리가 신제품·리뉴얼 제품을 출시하면 동시에 기존 제품을 매장에서 빼는 방법으로 가격 인상 효과를 극대화한다”고 비판했다.
지금까지 독과점 사업자가 가격을 급격히 올리는 행위는 수차례 공정위 조사 대상에 올랐다. 국산·수입 자동차, 껌, 아이스크림, 식용유 등이다. 최근에는 카카오택시가 가격을 5000원 올린 프리미엄 서비스를 개시하려 해 논란이 됐다. 하지만 1990년 이후 공정위가 가격남용으로 제재한 사례는 단 두 번에 불과하다. 1992년 제과회사 3개사, 2001년 BC카드와 12개 시중은행을 제재한 것이 전부다.
유럽연합(EU)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드물게 가격남용에 관한 근거 규정을 두고 독과점 사업자의 가격남용 행위에 개입하고 있다. 이탈리아 경쟁당국은 2016년 10월 제약회사 아스펜이 항암제 가격을 1500% 인상한 것을 제재했다. 다만 미국은 가격남용을 직접 규제한 사례가 없고 일본은 가격남용을 규제하는 법적 근거가 있지만 집행한 적은 없다.
생리대 시장의 무분별한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해서는 기업의 생리대 시장 진입장벽을 해소해 경쟁을 촉진해야 한다는 견해도 있다. 가격은 비싸지만 품질 논란이 끊이지 않는 한국 생리대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신규 사업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정위에 따르면 독일은 유통업체의 자체 브랜드(PB) 생리대 시장이 커져 생리대가 저렴하고 제품군도 다양해졌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시장지배적 사업자 행위 규제 기준을 현재 가격남용 등 5개에서 10~20개로 촘촘히 늘리면 가격 규제가 수월하지만, 경쟁당국이 가격 결정 규제를 하면 제품 혁신 저하 등 부작용이 있을 수 있어 조심스럽다”며 “가장 좋은 것은 정부의 인위적 가격 규제보다 경쟁 촉진을 통한 가격 안정”이라고 말했다.
김원진 기자 onejin@kyunghyang.com
발암물질 검출 파동 이후
‘안전’에 관심 높아졌지만
업체 관련 마케팅만 늘 뿐
가격통제 정책 사실상 없어
“식약처 화학·독성자료 규제
안전 기준부터 제시해야”
유기농 순면, 몸에 좋은 한약재, 천연 펄프, 허브향, 핀란드 친환경 마크 인증, 초박형….
27일 세종의 한 대형마트에서 박민정씨(31)는 ‘유기농 순면’을 골랐다. 박씨는 “취업해 돈을 벌게 된 이후 가급적 유기농 순면 생리대를 사용한다. 가려움이나 따끔거림은 확실히 개선된 듯하다”고 전했다. 90일 만에 분해돼 환경에도 덜 해롭다는 수입 생리대를 사고 싶지만 가격 때문에 여의치 않다. 반면 차상위 계층에 해당하는 고교생 김은정양(17·가명)은 지역 복지관에서 기증된 생리대를 사용한다. 시중에 1+1 묶음 상품으로 팔리는 제품들을 자주 본다. 김씨는 “제 돈으로 사는 것보다 낫기는 하지만 몸에 쓰는 것인데 속상하기도 하다”고 전했다.
생리대 소비도 양극화돼 있다. 저소득층 여성의 현실을 알린 ‘깔창 생리대’와 논란이 진행 중인 ‘생리대 발암물질 검출’ 파동을 거치면서 생리대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 생리대 제조사들은 앞다퉈 프리미엄 라인을 출시했고 올 10월부터는 법 개정으로 생리대 성분 표시제가 실시된다. 그러나 ‘프리미엄 생리대’는 저소득층에게는 그림의 떡이고 중산층에게도 부담이다.
여성은 생리대에 돈을 얼마나 쓸까. 여성은 10대부터 50대까지 약 500회 월경을 한다. 회당 기간은 5~7일이다. 생리대는 3~4시간마다 갈아주는 것이 권장된다. 한 달에 30~42개를 쓰는 셈이다. 온라인몰에서 5팩씩 구매할 경우 시중에 많이 팔리는 제품인 유한킴벌리 ‘좋은느낌 울트라날개 중형(18개입)’ 가격은 개당 104원이다. 이 제품을 사용할 경우 월 3000~4000원을 생리대에 쓸 것 같지만 지출 비용은 그보다 더 많다. 생리혈은 통상 이틀은 양이 많고 이틀은 적다. 이 때문에 ‘대형’도 필요하며, 밤에는 ‘오버나이트’를 사용한다. 생리가 끝나도 2~3일간은 잔분비물이 많이 나오므로 ‘팬티라이너’라 불리는 미니생리대를 사야 한다. 4종이 모두 필요하다보니 비용도 더 들고 대량구매도 쉽지 않다. 최근 출시된 프리미엄 제품들은 1개당 500~800원선으로 비용은 월 3만~4만원대까지 오른다.
편견도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과거에는 강한 향을 첨가한 ‘냄새 걱정 없는 생리대’가 프리미엄이었다. 실리콘·천연고무 재질로 만들어져 10년은 쓸 수 있는 생리컵은 ‘처녀막을 손상시킬 수 있다’는 거부감이 장벽이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사무처장은 “처녀막에 대한 환상이나 월경은 최대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여성의 건강을 해치고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고 말했다.
생필품임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가격안정 정책은 사실상 없다. 여성단체의 지속적인 요구로 2004년 생리대에 붙는 부가가치세가 면제된 것이 전부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개별 공산품에 대한 가격 개입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농산물은 생필품이라는 이유로 수매나 학교급식 등을 통해 가격에 개입한다. 생리대는 왜 안되냐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이안소영 사무처장은 “현재는 돈이 있어야만 프리미엄 생리대를 사용할 수 있다”며 “식약처는 생리대에 들어가는 화학물질의 독성 성분을 제대로 규제해 안전한 생리대에 대한 기준부터 제시하고 장기적으로 학교부터 시작해 공공생리대를 보급하는 방안을 구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