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연방대법원이 4일(현지시간)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동성 커플에 웨딩 케이크 제작을 거부한 제과점 주인 잭 필립스에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로이터연합뉴스.
동성 커플에 웨딩 케이크 제작을 거부한 제과점 주인의 종교적 신념은 헌법상 ‘표현의 자유’의 보호를 받을까.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은 ‘그렇다’였다. 다만 제작 거부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행위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했다.
미 연방대법원은 4일(현지시간) 동성 커플의 웨딩 케이크 제작을 거부한 제과점 주인 잭 필립스(사진)가 차별금지법을 위반했다는 콜로라도 주법원의 원심과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피고인 필립스에게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콜로라도주 시민권위원회가 차별금지법 위반 여부를 가리는 과정에서 필립스의 종교적 신념에 “용인할 수 없는 적대감”을 보였다는 이유다.
사건은 2012년 7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찰리 크레이그와 데이비스 멀린스는 매사추세츠주에서 결혼식을 올린 뒤 고향 콜로라도로 돌아와 필립스의 가게에서 웨딩 케이크를 주문했다. 필립스는 “동성 결혼이 자신의 기독교적 신념에 어긋난다”며 케이크 제작을 거부했다. 크레이그 커플은 콜로라도주 시민권위원회에 필립스를 제소했고, 위원회는 “종교적 자유가 동성 부부의 차별받지 않을 권리보다 우선할 수 없다”며 크레이그 커플의 손을 들어줬다. 콜로라도 주법원의 판단도 이와 같았다.
대법원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판결문을 작성한 앤서니 케네디 대법관은 “동성 결혼에 대한 종교적·철학적 반대를 표하는 것은 하나의 의견이자 표현의 한 형태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했다. 콜로라도 시민권위원회의 한 위원은 “다른 사람을 해치는 종교를 믿는다”며 필립스를 비난했다. 홀로코스트나 노예제에 빗댄 위원도 있었다. 대법관 9명 중 7명은 이를 “법률은 종교에 중립적 방식으로 적용돼야 한다”는 수정헌법 1조 위반이라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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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동성 부부에게 케이크 판매를 거부한 것이 차별금지법 위반인지는 판단하지 않았다. 케네디 대법관은 성적 지향에 따라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며 성소수자의 권리를 인정하는 발언을 했다. “동성 결혼에 반대하는 모든 업자들이 종교적·철학적 이유로 재화나 서비스의 동등한 제공을 거부할 권리를 허용한 것은 아니다”며 이번 판결이 다른 재판으로 확대 적용될 수 없다고도 했다. 뉴욕타임스 등 외신들이 “대법원이 좁은 결정(narrow decision)을 내렸다”고 표현한 것도 이때문이다.
대법원은 향후 유사 재판에서 관련 논의를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동성 결혼식에 꽃을 판매하지 않은 플로리스트에 대한 항소심도 현재 진행중이다. 종교적 표현의 자유(수정헌법 1조)와 성적지향에 상관없이 평등한 대우를 받을 권리(수정헌법 14조)가 충돌할 때 어느 것이 우선하는지에 대한 논쟁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