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변산> 메가박스중앙(주)플러스엠 제공
<변산>의 주인공은 서울 홍대 주변에서 래퍼를 꿈꾸는 청년이다. 이 시대 청춘의 자화상을 담았나 싶지만, 그가 가족과 친구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상황은 2018년의 것이라기보단 1980~1990년대의 정서를 닮았다. 잊었던 고향과 가족의 추억이 떠오르지만, 너무 예스러운 이야기와 연출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학수(박정민)는 서울에서 래퍼를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한다.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6년 연속 참가했지만, 매번 초기 라운드에서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계속되는 실패에 지쳐갈 때쯤 고향에서 그를 찾는 전화 한 통이 울린다.
고향 변산은 그에게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가족은 나 몰라라 했던 아버지, 고생만 하다 돌아가신 어머니, 실패한 첫사랑이 있는 땅이기 때문이다.
동창 선미(김고은)는 그런 그를 ‘아버지가 죽을병에 걸렸다’는 말로 불러들인다. 어쩔 수 없이 내려온 고향에서 학수는 잊고 싶던 기억들과 마주한다. 어린 시절 그가 괴롭히던 친구 용대(고준)는 지역 깡패가 돼서 학수를 부하처럼 부리기 시작한다. 첫사랑 미경(신현빈)은 여러 남자를 오가며 다시 학수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변산 좁잖여”라는 말로 시도 때도 없이 인생에 참견하는 선미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착하고 정다운 인물들을 따라가다 보면 종종 웃음이 터진다. 특히 웃음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는 김고은의 연기가 일품이다. 영화를 위해 8㎏을 증량했다는 그는 친근한 모습으로 능청스러운 연기를 펼친다. 과하게 얼굴을 망가뜨리거나 넘어지는 슬랩스틱코미디는 아니지만, 김고은이 던지는 몇 마디에 관객의 어깨가 들썩인다. 그의 재발견이란 생각이 들 정도다.
배우 박정민의 성실함은 이번 영화에서도 돋보인다. 출연하는 영화들마다 캐릭터에 녹아들기 위해 노력했던 배우는 이번에도 자신이 부른 랩 가사의 상당 부분을 직접 썼다. 래퍼 얀키와 함께 약 1년을 공들인 그의 랩이 영화 속에서 빛을 발한다.
고준, 신현빈 등 조연들의 연기도 좋다. 이준익 감독은 영화를 통해 “슬픔과 웃음, 그 사이의 재미와 긴장”을 그리고 싶다고 했다. 감독의 뜻이 이뤄졌다면 배우들 덕이라 할 만하다.
영화는 소소한 순간에서 삶의 빛나는 순간을 담아내려고 한다. 변하지 않은 고향의 노을은 서울의 과도한 경쟁과 대비되며 그 가치를 인정받으려 한다. 투닥거리면서도 서로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는 친구, 가족도 마찬가지다.
다만, 이 모든 것이 지나치게 예스럽고 단순화돼 있다는 느낌이 든다. 학수와 용대가 싸우고 그 주변으로 동창들이 하나둘씩 모여들 때는 2000년대 초반 영화 <신라의 달밤>이 떠오른다. 영화의 결말로 갈수록 인물들은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기 시작하는데, 이들이 ‘왜’, ‘어떻게’ 화해하는지 설명이 부족하다. 컴퓨터그래픽(CG) 없이 담아냈다는 변산의 노을, 그 아름다움만으로 덮고 끝내기에 실제 삶은 너무나 복잡하지 않을까. 15세 관람가. 다음달 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