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혜화역 “편파수사” 규탄
지난 7일 서울 혜화역 앞에서 열린 ‘제3차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집회’에 참석한 김모씨(22)는 집회가 끝난 후 지하철을 타기 전 공중화장실에 들렀다. 집회 참가 의상인 붉은색 옷을 벗고 평상복으로 갈아입기 위해서였다. 혜화역 근처 공중화장실에는 김씨처럼 옷을 갈아입고 있는 다른 여성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김씨는 옷을 갈아입는 이유에 대해 “집회에 참석한 것이 부끄럽거나 떳떳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위험하니까 그런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2차 집회 직후 옷을 갈아입지 않은 채 홀로 지하철을 탔다가 낯선 남성에게 “죽이고 싶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지난 5월 한 20대 남성은 혜화역 집회 참가자들에게 염산 테러를 하겠다고 온라인에 글을 올렸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커피전문점에서 일하던 한 여성은 이 집회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해고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혜화역 집회에 참가하는 여성들의 규모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더욱 커지고 있다. 3차 집회에 참석한 인원은 주최 측 추산 6만여명(경찰 추산 1만9000여명). ‘여성’이라는 단일 의제로 열린 국내 집회 규모를 또다시 경신했다. 앞서 지난 5월19일 열린 1차 집회에는 1만2000명, 지난달 9일 2차 집회에는 3만명이 모였다. 주최 측은 “한국 여성 집회 역사상 유례없는 인원이 모여 규탄했는데도 실질적으로 제도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들을 계속 거리에 나오게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좌절감이다. 취업준비생 김모씨(27)는 “혜화역 시위가 과격하다는 말이 많지만 현실은 여성들에게 더 가혹하다”고 했다.
이날 한 집회 참가자가 들고 있던 손팻말(사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여성들이여! 멧돼지 취급을 두려워 말고 맘껏 소리쳐라. 진정 두려운 건 몰카, 강간이다.”
전문가들은 여성들의 분노에 대한 사회의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현재 구조적 성불평등을 변혁시키기 위해 사회적 분노를 표출하고 있는 것”이라며 “이를 단순히 남성에 대한 혐오·원한에 의한 사적인 ‘한풀이’ 수준으로 보는 것은 문제”라고 말했다. 김영순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는 “지금 여성들은 도덕적·윤리적 말하기로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타파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여성 집회가 계속되자 관련 부처 장관들은 잇따라 입장 표명을 하고 나섰다.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은 집회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혜화역 현장에 다녀왔다고 밝히며 “여러분들이 혜화역에서 외친 생생한 목소리를 절대 잊지 않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더욱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도 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에 저 자신도 포함된다”며 “경찰은 조직의 명운을 걸고 몰카 단속과 유통망 색출에 전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