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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 이후, 언론 보도의 윤리

입력 2018.07.22 20:44

올해 초부터 미투 운동에 대한 언론 보도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이러한 사안을 보도할 때 필요한 윤리적 기준은 무엇이고 어떤 보도 태도가 필요한지에 대해 다양한 담론의 장이 열렸다. 이 때문인지, 미투 운동 이전과 이후의 성폭력 범죄 보도 양상을 비교해보면 다루는 주제나 보도 방식에서 일부 달라진 점도 엿보였다. 성폭력 범죄 보도의 윤리적 기준에 대한 고민이 언론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의 보도 방식을 보면, 이는 섣부른 기대였던 것 같다. 성폭력 범죄 ‘재판’ 보도는 성폭력 범죄 보도 범주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생각한 것일까. 안희정 전 지사의 재판 보도는 언론 보도로 인한 2차 피해가 무엇인지, 언론이 어떤 보도 태도를 취해서는 안되는지를 보여주는 교본과 같다.

[미디어 세상]미투 이후, 언론 보도의 윤리

성폭력 범죄에서 사회적 편견에 기반을 둔 피해자상을 재생산하는 문제는 언론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성폭력 범죄에서 피해자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피해자가 정말로 ‘피해자’인가를 검증하겠다는 주변의 인식과 태도이다. 사람들은 이를 피해자의 성격이나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순수한 피해자인가 아닌가를 피해자의 평소 행실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인식 그 자체가 성에 대한 가부장제적 이중 관념이 응축된 것이다. 2018년 3월 유엔 여성차별철폐위원회(Committee on the Elimination of Discrimination Against Women, CEDAW)는 형사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성폭력 범죄 피해자가 비난의 대상이 되는 2차 피해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사법 절차에서 피해자의 성적 이력이나 행실 등을 증거로 활용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는 권고를 한 바 있다. 안희정 전 지사 사건의 경우 성적 이력은 아니지만, 재판 상황에서 피고인 측 증인의 주관적 표현인 ‘교태’ ‘귀여워 보이려’ ‘홍조’ 등의 용어를 그대로 보도하여 이를 보고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피해자의 행실을 추론하게 하면서 피해자를 비난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한국 사회 통념에서 ‘순수한 피해자’는 항거할 수 없는 무력한 피해자, 상처를 입고 영속적인 피해 속에 살아가야 하는 자 등 특정한 이미지와 결부되어 있다. 따라서 피해자의 평소 행동이나 성격을 재판의 논점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순수한 피해자상에 맞지 않는다는 사회적 편견을 동원하려는 전략인 것이다. 이 지점에서, 문제는 언론이 어떤 보도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이다. 이번 재판을 보도하는 언론의 인식은, 재판을 보도하긴 해야 하는데 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해자 증언의 비공개 결정이 내려졌으니 이는 보도할 수는 없고, 공개된 안희정 전 지사 측 증언을 그대로 옮기는 것은 사실에 입각한 보도이므로 문제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재판은 검찰 측에서 피해자 보호를 위해 재판 전 과정의 비공개를 요청했으나 재판부가 피해자 증언만 비공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애초부터 대립되는 양측의 입장을 균형있게 보도한다는 형식적인 객관 보도조차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언론은 저널리즘 윤리에 기반을 둔 판단을 해야만 했다. ‘언론이 일방적 주장을 확인된 사실인 것처럼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 ‘수사기관으로부터 얻은 공식적 정보라 해도 보도가 필요한 내용인지를 판단해야 한다’는 ‘성폭력 사건 보도 가이드라인’의 내용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언론의 더 큰 문제는 제목을 뽑는 방식에 있다. 포털을 통한 뉴스 소비 비중이 높은 언론 생태계에서, 언론사들이 수익과 직결되는 이용자들의 뉴스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 선정적 뉴스 제목을 다는 것은 여러 차례 문제점으로 제기된 바다. 한편, 뉴스 기사를 꼼꼼하게 읽기보다는 포털 메인에 노출되는 뉴스 제목을 통해서 뉴스를 파악하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어서 뉴스 제목이 사건의 의미를 틀짓기하는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새 국면’과 같은 표현을 사용하거나, 재판부에서도 자제를 요청한 피고 측 증인의 자극적, 선정적 표현을 여과없이 제목에 넣고 본문의 리드(lead)로 제시하는 보도는 2차 피해를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가부장제적 ‘순수한 피해자상’에 어긋나는 피해자로 틀짓기하는 선정적 제목은 댓글을 통한 2차 피해로도 이어진다.

일부 언론은 해당 기사의 말미에 “피해자 측이 이 증언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 전성협 측에서 이런 반론을 냈다”는 내용을 추가함으로써 형식적으로 중립적 위치를 내세우고 있다. 기본적으로 가부장제적 성 관념에 기초해 보도하면서, 피해자와 약자의 목소리를 형식적으로 추가해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고자 한 것이다. 성폭력 범죄 보도와 관련해 이러한 형식적 객관주의가 어떤 문제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는 미투 보도 국면에서부터 이미 여러 차례 이야기해왔다. 언론이 성폭력 피해자의 2차 피해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순수한 피해자상’을 공고하게 하는 식으로 성평등 사회에 직접적인 걸림돌로 작동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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