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yellow@kyunghyang.com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추모 등
오프라인에서 여러 운동 주도
남성중심주의 사회 비판하면서
페미니즘 관심 높여 ‘긍정 평가’
일반 남성서 고인·어린이까지
과한 비판…부적절 어휘 차용도
트랜스젠더 등 소수자 혐오 발언
“다른 약자 억압, 첫 의도와 충돌”
‘워마드’ 메인 화면에는 20세기 초 ‘여성에게 투표권을 달라’며 전투적으로 참정권 운동을 벌인 영국의 페미니스트 그룹 ‘서프러제트’ 사진과 함께 ‘그들(남성)의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지 말라’는 워마드의 구호와 심벌도 걸렸다. 워마드가 자신들의 시각과 언어를 구현하는 방식으로 선택한 온라인 전략 중 하나가 ‘미러링’이다. 2015년 말 여초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분리된 워마드는 메갈리아 사이트 폐쇄 후에도 메갈리아의 미러링을 적극 활용한다.
워마드의 미러링은 메갈리아보다 더 공격적이다. 최근에는 천주교 성체 훼손 사진으로 논란을 빚었다. 워마드 게시판엔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죽음을 조롱하는 글도 올랐다.
페미니즘 진영에서는 워마드에 대한 흥분과 우려가 교차한다. 남성중심주의 사회 비판에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미러링이 소수자를 향한 혐오로 이어지고, 페미니즘 운동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받는다.
■ “여성의 권리만 챙긴다”
미러링이란 ‘여성혐오’가 담긴 말·글·행동 등을 성별만 남성으로 대체해 되돌려주며 한국사회에 내재된 여성혐오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전략이다. 예컨대 ‘냄져들은 때려주지 않으면 기어오르니 삼일한(3일에 한 번씩 때림)만이 답이다’ 같은 말로 기존 남성의 언어(‘여자는 3일에 한 번씩 패야 맛이 좋아진다’)에서 성별만 바꾼 발화 방식을 택했다. ‘낙태녀’라는 단어를 대체하려고 무책임하게 성관계를 맺은 남성을 비난하는 ‘싸튀남·싸튀충’(성관계 후 도망가는 남성)도 미러링의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미러링은 여성주의 운동으로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8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글을 분석해 ‘메갈리안들의 여성 범주 기획과 연대’라는 논문을 발표한 김리나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연구원은 “메갈리아와 워마드 이용자들은 고요한 강에 돌을 던져 파동을 일으키듯이, 충격적이고 예측하기 어려운 방식을 통해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말걸기를 해왔다”고 말한다.
또 “메갈리아에서 워마드가 분기한 이후, 워마드에서는 오프라인에서의 여러 운동들이 기획·실천됐다. 메갈리아 활동이 온라인 중심이었던 것과 달리, 워마드는 여러 온라인 채널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오프라인 행동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2016년 5월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 여성에 대한 추모 아이디어는 워마드가 처음 내놓았고 다른 여초 사이트로 번졌다.
2016년 6월 한 남성 연예인이 성판매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행을 했다는 의혹이 일자 워마드에서는 ‘#나는 창녀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저소득층 청소녀가 생리대를 구입하지 못하고 신발 깔창을 생리대로 이용한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서울 지하철 안국역에서 생리대를 전시하는 시위도 벌였다. 그해 7월 게임회사 넥슨이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성우를 교체하자 페이스북 메갈리아 페이지와 워마드 회원 등은 넥슨 본사 앞에서 ‘넥슨 성우 교체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같은 해 11~12월 정부가 임신중절수술 처벌 강화계획을 발표하고 대한민국 출산지도를 공개하자 이들은 ‘낙태약물인 미프진을 합법화하고, 불법낙태 시 남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라’며 시위에 나섰다.
■ 미러링…‘소수자 혐오’ 벗어나지 못해
최근 워마드가 논란이 된 것은 어린이, 소수자, 고인에 대한 비난·조롱을 담은 미러링 때문이다.유튜브 방송을 통해 여성 혐오 콘텐츠를 접하고 또래 여학생을 괴롭히는 초등학교 남학생을 일컬어 ‘한남유충’(여성혐오를 하는 어린 한국 남자)이란 단어를 만들어 냈다. 남자 영아, 태아에게도 ‘유충’이란 단어를 사용한다. 이들은 ‘재기하다’(한강에 투신한 남성연대 고 성재기 대표를 비하하는 말. ‘투신하라’는 뜻으로 쓰임) 같은 부적절한 단어도 사용한다. 워마드는 이를 사회통념을 깨뜨리는 전복과 패러디 전략이라고 하지만, 극단적·폭력적 언어 구사는 페미니즘이나 미러링에 우호적인 이들에게도 거부감을 갖게 만들었다.
워마드에선 트랜스젠더, 게이, 장애인 남성, 난민 남성 등 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혐오발언도 자주 보인다. 워마드가 메갈리아에서 분리됐던 것도 워마드 계열 이용자들이 게이 커뮤니티의 여성혐오 문제를 지적하며 이들을 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할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워마드는 남성 성기 제거 수술을 하지 않은 MTF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게이, 장애인 남성들에 의해 벌어지는 여성 대상 범죄가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덮인다며 이런 문제를 미러링으로 가시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윤김지영 건국대 교수는 “분명히 적확한 비판의 지점들이 있는데 소수자 등에 대한 편견을 일반화해서 통념을 재생산하는 것은 혐오가 맞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남성 사회학자는 메갈리아의 미러링이 논쟁이 됐을 때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워마드의 미러링 전략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약자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선택한 미러링이 또 다른 약자에 대한 혐오와 억압으로 진행된다면 애초 미러링 의도와 충돌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여성들이 몰리다보니 저렇게까지 하는구나라는 생각도 있지만, 여성주의와 전혀 상관없이 혐오 자체를 놀이로 생각해서 가학적인 즐거움을 느끼려는 이들이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또 작전세력이 있어서 여성운동을 좌절시키고 비난받도록 유도하는 것은 아닐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고 했다. 그는 “여성주의 역사에서 사회적 소수자를 자기와 다르다는 이유로 배제·혐오하는 일을 벌인 적은 없다”고 했다.
이들은 극단적 수위의 미러링이 여성혐오에서 비롯된 점도 지적했다. 허 조사관은 “한국사회가 여성들에 대한 수많은 인권 침해에 진작 귀 기울여 왔다면 여기까지 이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 사회가 그에 대한 책임은 빼고 워마드의 방식만 비난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윤김 교수는 “사회 어느 누구도 여성혐오를 제지하지 않고 방관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여성혐오 콘텐츠를 소비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가 응축돼 워마드의 형태로 나타났다”면서 “남초 사이트의 여성혐오 등 워마드가 미러링한 여성혐오의 원본이 사라지지 않는 한 워마드의 미러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워마드를 주도하는 이들은 한때 ‘촛불소녀’로 불렸던 20대, 30대 여성들이다. ‘촛불소녀’는 2002년 경기 양주에서 미군 장갑차에 압사한 미선·효순양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처음 등장했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반대 촛불집회,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반대 집회 등에도 등장했다. 진보진영은 ‘소녀’라는 말로 ‘순수함’을 부각시키려 하고, 보수진영은 주체성을 의심하며 ‘배후세력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1990년대 중반 태어난 여성들은 사회문제에 적극 참여했다. 여성이란 이유로 성차별, 성범죄 등의 피해를 겪으면서 ‘메갈’ ‘웜’으로 진화했다.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오늘의 유머(오유)’ 등 온라인 남초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시작된 여성혐오와 마주하면서 디시인사이드 ‘메르스 갤러리’ 등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다. SNS에서 피해 경험 등을 공유하며 목소리를 키웠다.
2016년 1월 메갈리아의 ‘성소수자 혐오 금지’ 공지에 반발한 일부 회원들이 ‘워마드’를 개설했다. 워마드 회원들은 미러링과 함께 소라넷 폐지·몰카 반대, 낙태죄 폐지 같은 오프라인 운동을 병행했다. 이후 워마드는 여러 커뮤니티를 전전하다가 2017년 2월 워마드 사이트를 개설했다.
워마드가 ‘문제적 사이트’로 등장한 것은 2016년 6월이다. 당시 워마드 카페에 남성 직장 상사의 커피에 부동액을 탔다는 글이 올라와 경찰이 워마드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이듬해 2월 워마드에 ‘남탕 몰카’라는 글이 올라와 경찰 수사가 진행됐다. 남초 커뮤니티의 ‘여탕몰카’ ‘여성강간모의’ 게시글에 대한 미러링 전략으로 작성한 허위 게시글이다. 실제 벌어진 일이 아니었지만 글 자체가 온라인에서 큰 파장·논란을 일으켰다. 워마드의 이런 미러링 방식은 최근 고인 조롱, 성체 훼손 게시글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