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양승태 대법원 문건들 ‘박근혜 하청’ 의심 이유
“테러방지법 투트랙 접근하고 중요도 나눠 일부 양보 전략” 청와대·여당에 조언 모양새
영장주의 예외·불시 검문 등 위헌적 요소까지 포함시켜
‘양승태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만든 테러방지법 입법 전략 문건, ‘박근혜 가면’ 법리 검토 문건은 앞서 공개된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회의원 상대 제소’ 문건과 함께 양승태 전 대법원장(70) 재임 시절 사법부가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의 교감 속에 재판 ‘사전’ 거래를 한 것으로 의심되는 자료다.
옛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업무와 무관한 테러방지법 입법 세부 전략을 세우면서 피의자가 재판에 넘겨지기도 전에 마크 리퍼트 전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을 ‘백주테러’라고 결론내렸다. 사회적으로 잘 알려지지도 않았던 ‘박근혜 전 대통령 가면’에 대해서는 제작·유통업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는지를 적극 검토했다.
검찰은 사법행정과는 무관한 해당 문건 작성을 누가 지시했는지,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문건 작성을 지시했거나 보고·전달받았는지 수사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최근 해당 문서를 작성하는 데 사법정책실이 관여한 정황을 확인했지만 검찰의 사법정책실 자료 임의제출 요청을 거부하고 있다.
5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와 특수3부는 대법원 협조를 받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컴퓨터를 분석하면서 행정처 기조실과 사법정책실이 작성한 ‘외로운 늑대에 의한 테러방지법안’(2015년 3월), ‘박근혜 가면 민형사 책임 검토’(2015년 6월) 문건을 확인했다.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이 청와대와 여당에 테러방지법 입법 전략과 세부지침을 ‘조언’해준 게 아닌지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리퍼트 전 대사는 2015년 3월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조찬 강연회 준비를 하다가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씨로부터 공격받아 중상을 입었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은 리퍼트 전 대사 피습사건을 계기로 테러방지법 입법을 공론화했다. 테러방지법은 더불어민주당 등 당시 야당의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 끝에 이듬해 3월2일 통과됐다. 김씨는 살인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돼 2016년 9월28일 징역 12년형이 확정됐다.
법원행정처의 테러방지법 입법 전략 문건은 김씨의 행위를 ‘외로운 늑대에 의한 백주테러’라고 규정했다. 외로운 늑대란 전문 테러단체 조직원이 아닌 자생적 테러리스트를 뜻하는 말이다. 검경은 리퍼트 전 대사 피습 후 약 한 달간 수사인력 100여명을 동원해 김씨의 배후를 추적했지만 단독범행으로 결론내리고 4월1일 김씨를 재판에 넘겼다. 사법부가 수사기관의 수사가 끝나기도 전에 김씨 범행을 단독테러로 결론내린 것이다.
법원행정처는 “(국내) 대테러 업무가 국정원·경찰·검찰·군 등으로 분산돼 있고 테러 사전예방에 대한 조치 권한이 미비해 즉각 보완이 필요하다”면서 “입법 없이 실시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테러방지법 입법을 촉구하고 전략을 마련하는 투트랙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현행 법률인 경찰관직무집행법, 통신비밀보호법을 적극 해석하고 집행해 해결”하고 “테러 방지 업무를 총괄할 수 있도록 (테러방지법) 입법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위헌적 요소라고 볼 수 있는 “영장주의 예외·증거능력 부여 완화·불시 검문 가능” 등을 포함해야 한다는 내용도 적었다. 특히 “입법 과정에서 기본권 침해 등을 이유로 시민단체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있다”면서 “입법 필요성을 중요도에 따라 A, B, C 등급으로 나누고 중요성이 떨어지는 조항은 협상과정에서 양보하되 반드시 필요한 조항을 포함시키는 입법 전략 추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검찰은 ‘박근혜 가면’ 문건도 청와대 등의 지시가 없었다면 법원행정처가 작성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근혜 가면 민형사 책임 검토’ 문건은 박 전 대통령이 복면 시위를 비판하고 새누리당이 ‘복면금지법’을 발의한 2015년 11월보다 5개월 앞서 만들어졌다. “온라인에서 박근혜 가면이 판매되고 있어서 민사 및 형사를 포함한 법적 책임 검토가 필요하다”며 작성됐다. 당시 검경은 물론 일선 법원도 관련 사건을 접수하지 않았다.
법원행정처는 “민사적으로는 초상권·퍼블리시티권 등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나 석명권 침해로 인한 불법 행위 책임이 성립 가능”하다면서도 “초상권자인 박근혜 전 대통령 본인이 아닌 제3자나 소속 기관 등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인정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형사적으로는 “현행법상 근거와 규정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상 경고하는 것만으로도 소기의 금지 효과를 거둘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사실상 박 전 대통령 ‘개인’ 문제였던 박근혜 가면에 대해 청와대도 아닌 사법부가 제작·유통업자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지 따진 것이다.
검찰은 해당 문건들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도 법원 ‘외부 반출용’이 아닌지 의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이 임종헌 전 차장 등의 컴퓨터에서 확인한 두 문건은 앞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이 공개한 ‘통진당 지역구 지방의회의원 상대 제소’ 문건처럼 작성자 이름과 소속 부서가 표시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행정처가 작성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문서 형식을 달리했을 가능성이 있다. 최근 법원은 해당 문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검찰의 수사협조 요청은 계속 거부하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기획조정실 외 사법정책실 등의 문건을 임의제출할 수 없다고 검찰에 통보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