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본가궁중족발’ 윤경자 사장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서울 낮 최고기온이 38.3도에 달한 지난 6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는 땡볕 아래 검은색 우산을 펼쳐든 여성이 1인 시위 중이었다. 남편과 함께 서울 종로구 서촌 ‘본가궁중족발’을 운영하던 윤경자 사장이었다. 윤 사장의 얼굴 위로 땀이 방울져 흘러내렸다. 팻말에는 ‘서촌이 뜨니 욕심이 납니까. 보증금과 월세가 자그마치 4배가 올랐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궁중족발은 가족의 생존권이자 삶의 터전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서촌 맛집으로 자리잡았던 윤 사장의 족발 가게는 새 건물주가 찾아오면서 지게차에 허물어졌다. 새 건물주는 보증금과 월 임대료로 1억원에 1200만원을 요구했다. 갈등이 깊어지면서 윤 사장의 남편 김모 사장이 건물주를 둔기로 폭행해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윤 사장은 매일 청와대와 국회 앞에서 1인 시위 중이다. 법원은 윤 사장의 요청을 받아들여 9월에 국민참여재판을 열기로 결정했다.
■왜 족발 식당을 열었나
처음에는 1997년에 배화여고 인근에서 화장품 대리점을 했다. IMF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많은 거래처가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도망쳤다.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음식 장사였다. 1998년부터 2년 동안 분식점을 했는데 일을 열심히 해도 돈을 벌지 못했다. 2000년에는 실내포장마차로 바꿔서 매일 새벽 4시까지 일하며 돈을 모았다. 대출까지 끼고 2009년 족발가게를 열게 됐다. 원래 슈퍼마켓이었던 자리라 시설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서 전기, 가스, 수도를 새로 만들고 인테리어까지 1억원 넘게 들었다. 족발은 한 자리에서 오래 장사해야 단골 손님이 붙으면서 수익이 나는 업종이다. 5년쯤 지나니까 얼굴이 눈에 익은 손님들이 생겼는데 동네에 ‘서촌’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제가 장사하던 골목에는 정육점, 세탁소, 철물점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런 가게들이 언제부터인가 수제맥주집 등으로 바뀌었다. 우리 부부의 족발집도 예쁜 골목 분위기에 맞춰 리모델링을 해야겠다 싶어서 2014년 3500만원을 들였다. 2016년 1월 새 건물주가 나타났다.
■건물주의 강제집행 과정은 어땠나
강제집행은 지난해 10월10일부터 올해 6월4일까지 모두 12차례가 있었다. 2차 집행이 지난해 11월9일 오후 4시쯤이었다. 식당 문을 열고 족발을 준비해 영업 시작하려던 시간이었는데 건물주와 함께 철거용역 직원 20여명이 들어왔다. 그들은 용역임을 표시하는 복장도 하지 않았다. 갑작스런 집행에 저와 직원이 차례로 밖으로 내쫓겼다. 남편은 주방에서 작업대를 붙잡고 끝까지 저항했는데 끌려나가면서 왼손 손가락 4개가 부분 절단됐다. 1개월 입원하고 1개월은 통원치료했다.
■보증금과 임대료가 얼마나 올랐나
원래 건물주가 2014년 리모델링 하고 나서 2016년 5월까지 계약을 2년 연장했다. 당시 보증금 3000만원에 월 임대료가 297만원이었다. 2016년 1월 세입자들이 가게를 연 지 5년이 넘었다는 걸 알고 새 건물주가 건물을 산 것이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계약갱신요구 기간은 5년이기 때문에 5년이 넘으면 건물주가 마음대로 쫓아낼 수 있다. 건물주가 “다 알고 샀다”라며 “이전 건물주와 계약한 기간인 5월까지만 장사하고 나가라”라고 했다. 건물주는 계속 장사하려면 보증금 1억에 월 임대료 1200만원을 내라고 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상 기존 건물주는 임대료 인상률 상한선 연 5%를 지켜야 하는데 새 건물주에는 적용되지 않아 자기 마음대로 임대료를 올릴 수 있다. 우리 부부는 새 건물주가 계약을 승계했다고 주장했지만 계약갱신요구 기간이 지났기 때문에 법원은 건물주의 손을 들어줬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임차인이 아니라 돈 많은 건물주를 도와주는 법이다. 평등한 법이 아니고 편파적인 법이다.
지난 3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본가궁중족발’ 윤경자 사장이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법 이름에 ‘보호’라는 말을 쓴다면 정말 보호하겠다는 취지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법을 만드는 사람은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 중에선 돈 없는 사람이 드물고 건물주가 많을 것이다. 법을 만들 때 본인에게 유리하게 만들지 불리하게 만들진 않을 것이다. 개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닐까. 개정안은 기존 법이 불합리하고 불평등하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인데 누군가 희생되고 범법자가 돼야만 바뀌는 것일까.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평생 장사할 일이 있을까. 퇴직하더라도 연금으로 살 수 있잖나. 잠 못 자고 몸이 부서져라 일하면서 장사할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래서 등한시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상가임대차보호법은 모든 세입자의 심각한 문제다. 심지어 개정안을 반대하는 자유한국당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여의도 당사를 떠났잖나. 남의 일이 아니다.
■임대료는 건물주의 권리 아닌가
건물주가 보증금과 임대료를 1억원에 1200만원으로 올린 것은 제가 가게를 팔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돈 주기 싫으면 권리금 받고 나가면 된다고 하지만 그만한 임대료를 낼 사람을 어디서 데려올 수 있나. 한 장소에서 5년 넘게 장사했으면 그만큼 많이 벌지 않았냐는 말도 들었다. ‘서촌’이라는 이름이 붙기 전 동네 사정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말 못한다. 건물주가 노력해서 ‘서촌’에 사람이 몰린 것이 아니다. 서촌을 만든 것은 꾸준하게 장사하면서 먹거리와 구경거리를 만든 상인들이다. 건물주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건물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이익을 얻는다. 상권을 만드는 데는 하나도 도움을 주지 않고서 이제 서촌을 만든 상인들을 쫓아내려 한다. 사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 하에서는 장사가 잘 되든 안 되든 시작한 지 3~4년이 지났으면 가게를 팔고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
■왜 1인 시위를 하나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9시 청와대 앞, 오전 11시30분 국회 앞에서 각 1시간 동안 1인 시위를 한다. 2달 정도 됐다. 현실적으로 상가임대차보호법이 개정되더라도 저한테는 아무 혜택이 없다. 법이 소급적용될 것도 아니고 건물주가 이제 와서 합의해줄 것도 아니다. 얻을 것은 없지만 딱 한 가지. 우리 부부의 삶은 별 달라질 것이 없지만 우리와 사정이 비슷한 사람들의 삶은 달라질 것이 확실하다. 제2의 궁중족발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다. 건물주와 분쟁하는 상인들이 서촌뿐 아니라 엄청나게 많다. 도와주시는 시민들이 많은데 거의 가족이 됐다. 음악가는 공연을 하고, 시인은 시 낭송을 하고, 영화감독은 다큐멘터리 상영회를 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렇게 궁중족발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200여명쯤 된다. 건물주가 이들을 고소·고발하기까지 했는데도 오히려 ‘사장님, 힘내시라’고 하니 제가 정말 미안하고 감사하다.
■왜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나
남편은 얼굴에 자기 감정이 잘 나타나지 않고 말수도 없는 묵묵한 사람이다. 검찰은 남편이 둔기를 휘둘렀다는 것만으로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다. 남편이 사람을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건물주에게 7개월 넘게 전화와 문자로 폭언을 들은 데 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이 부분을 호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