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추진단 안 만들어”…“행정처 각 실·국과 준비” 사법농단 당사자에 맡겨
‘수장 견제’ 사법행정회의 권한 부여도 행정처의 몫
“외부인사 의견 반영해야”
김명수 대법원장이 27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27회 법의 지배를 위한 변호사대회’ 행사장에 입장하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김명수 대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중심에 있는 법원행정처를 개혁하기 위한 입법 작업을 법원행정처 자체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혀 ‘셀프개혁’을 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사법개혁이 화두였던 2005년 참여정부 때 법조계·학계·시민단체 등이 골고루 참여하는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가 설치됐던 것과 대조적이다.
27일 경향신문이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확보한 대법원 답변서에 따르면, ‘사법개혁 입법과 관련해 추진단을 만들 계획이 있느냐’는 질의에 대법원은 “대법원 내에 사법개혁 입법안 마련 추진 단위를 별도로 구성할 계획은 가지고 있지 않고 논의를 한 바도 없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이 답변서에서 또 “법원행정처 처장과 차장 주재하에 행정처 각 실국이 협력해 개혁입법 등을 준비하고 있다”며 “각 실국의 추진 상황을 취합·조정하고 국회 등과 창구 역할을 하는 부서는 기획조정실”이라고 설명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법원행정처가 스스로 개혁입법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셀프개혁’을 하겠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3월 법원행정처 개혁안을 놓고 법조계 안팎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외부위원이 참여하는 자문기구인 사법발전위원회를 꾸렸다. 사법발전위는 지난 7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이를 대체할 새로운 기구인 ‘사법행정회의’를 신설해 대법원장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켜야 한다는 건의문을 의결해 제출했다. 그러나 건의문은 구체적이지 않은 데다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결국 각론을 논의하는 입법 과정에서 핵심 사항들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사법발전위는 대법원장의 권한을 사법행정회의에 얼마나 분산시킬 것인지에 대해 하나의 일치된 의견을 내놓지 못했다. ‘총괄기구’로 해야 한다는 다수의견과 심의·의결기구로 역할을 한정해야 한다는 소수의견을 복수로 제출했다. 두 의견 중 어떤 의견을 채택할지는 법원행정처가 결정하게 돼 있다. 만약 소수의견을 채택할 경우 대법원장은 판사 연수·전보 인사 등에 대해 기존처럼 제왕적인 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사법행정회의에 참여하는 법관과 외부인사 비율을 어떻게 할 것인지 등 인적 구성에 대한 사항들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법원행정처 개혁이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입법 과정에도 다양한 법조계 안팎의 목소리가 반영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법개혁이 화두였던 2005년 참여정부 때는 대법원 산하의 사법개혁위원회가 건의문을 만들었고, 구체적인 입법과정을 추진하기 위해 대통령 산하에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별도로 설치됐다. 사개추위에는 대법원은 물론 법무부·교육부 등 정부기관과 검찰·변호사업계·학계·시민단체 등이 골고루 참여했다. 공판중심주의에 대해 검찰이 반발하는 등 갈등도 있었지만 격론 끝에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 국민참여재판 등 굵직한 제도들이 도입됐다. 당시 사개추위 간사가 김선수 현 대법관이다.
박주민 의원은 “법원개혁의 핵심은 법원행정처 개혁인데, 그것을 법원행정처에 맡기는 것은 대단히 부적절하다”며 “외부인사로 구성된 추진단을 통해 대대적인 법원개혁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