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례를 거스르고 긴급조치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해 ‘양승태 대법원’의 징계 검토 대상에 올랐던 김기영 서울동부지법 수석부장판사(50·사법연수원 22기)가 29일 더불어민주당 추천 몫으로 헌법재판관 후보자에 올랐다. 민주당은 자신의 인사 불이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국가권력 남용에 단호했던 점을 높게 평가했다.
민주당 진선미 원내수석부대표는 이날 국회 정론관 브리핑에서 “국민의 자유와 권리라는 헌법적 가치를 수호할 헌법재판관의 적격자”라며 김 수석부장판사를 민주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추천했다.
진 수석부대표는 “김 수석부장판사는 2015년 긴급조치 9호 피해자들의 국가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국가 패소 판결을 하는 등 국가권력 남용에 대해 엄격한 태도를 취하고 국민 권리를 보호하는 입장을 취했다”며 “2014년 여중생 성폭행 사건을 맡아 이른바 ‘그루밍 성범죄’(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자행하는 성범죄)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고 추천 이유를 밝혔다. 진 수석부대표는 “국민 공모를 통해 다수의 후보자를 접수했고, 김 수석부장판사는 그중 한 명”이라고 말했다.
김 수석부장판사는 충남 홍성 출신으로 1996년 임용돼 20여년간 법관으로 재직했다. 가장 논란이 됐던 판결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로 일하던 2015년 9월11일 긴급조치 국가배상 청구사건에서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거슬러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이었다. 그해 3월과 6월 양승태 대법원은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민사상 불법 행위는 아니다”라며 잇따라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터였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김 수석부장판사에 대한 징계를 검토했다. 2015년 9월22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대법원 판례를 정면으로 위반한 하급심 판결에 대한 대책’ 문건에는 “김 수석부장판사가 대법원 판례를 위반한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동으로서 직무윤리위반의 가능성이 있다”고 적혀 있다. 김 수석부장판사의 1심 판결은 상급심에서 다시 대법원 판례대로 뒤집혔다.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수사중인 검찰은 당시 법원행정처가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설치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이같은 대처를 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이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재판에서 눈치를 봤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김 수석부장판사는 지난달 검찰 조사에서 “(긴급조치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1심 법원 판결을 작성하기로 하면서 고등부장판사 승진을 포기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대법원 분위기상 인사 불이익을 각오해야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국회는 다음달 19일 퇴임하는 김이수·안창호·강일원 헌법재판관의 후임으로 국회 몫인 3명의 재판관을 추천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원내교섭단체인 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바른미래당이 1명씩 추천키로 합의한 상태에서 민주당이 이날 가장 먼저 김 수석부장판사를 추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