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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보수·진보 가를 수 없는 판사 모임, 문제는 ‘끼리끼리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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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보수·진보 가를 수 없는 판사 모임, 문제는 ‘끼리끼리 문화’

입력 2018.09.09 20:31

수정 2018.09.09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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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범준 기자

그들의 모임, 안과 밖

[대한민국 판사는 누구인가](5)보수·진보 가를 수 없는 판사 모임, 문제는 ‘끼리끼리 문화’

판사들은 좁은 인간관계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발이 넓다거나 아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2000년대 초반 대법관 후보로 꼽히다 임명되지 못하고 변호사로 나선 법원장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된다.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열린 개업식에 연예인을 비롯한 유명 인사들이 등장했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저런 성품 때문에 대법관이 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 지인이 많은 만큼 법관으로서 성실하지 못했으리라는 얘기다. 판사들은 “밖에서는 판사들 시야가 좁다느니 어쩌니 해도 시간을 들여 기록을 읽은 판사가 좋은 판결을 쓴다. 또 판사가 사람들을 많이 만나야만 시야가 넓어지는지도 의문”이라고 말한다.

법원 밖까지 알려진 연구회
인권법·우리법·민판연 3곳

일부, 보수·진보 구분하지만
겹치기 가입에 상호 ‘보완적’

이런 판사들에게도 ‘모임’이 있다. 판례 연구와 학술 활동을 위한 모임이다. 법원 밖까지 이름이 알려진 곳은 국제인권법연구회(이하 인권법), 우리법연구회(이하 우리법), 민사판례연구회(이하 민판연) 정도다. 이들 단체는 회원 구성과 활동 내용이 각각이다. 인권법과 우리법은 판사들 모임이다. 민판연은 판사 외 변호사와 교수들까지 참여한다. 인권법은 대법원이 인정하는 공식 학술모임이지만 우리법은 비공식 모임이다. 일부에서는 막연하게 민판연은 보수적인 단체로, 우리법과 인권법은 진보적인 모임으로 본다. 그렇게 명쾌하게 구분하기에는 이들의 구성이나 활동 연혁이 꽤 복잡하다.

지난해 창립 40주년을 맞은 민판연은 1977년 곽윤직 서울대 법과대학 민법 교수가 제자들을 중심으로 만들었다. 신입 회원은 법조계 엘리트들을 중심으로 비공개로 모집해왔다. 서울대 법대 졸업, 남성, 서울중앙지법 초임을 충족하는 판사 위주로 받았다. 2000년대 후반 우리법이 보수진영의 표적이 되면서 민판연이야말로 ‘법조계의 진성 카르텔’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후 신입 회원 자격을 비서울대·여성으로, 최근에는 검사로 넓혔다. 최고위 법조계 인사가 이 모임 회원이거나 출신이다. 전직 대법원장으로는 양승태와 이용훈, 대법관으로는 박병대, 민일영, 양창수, 박재윤, 손지열이 회원이다. 헌법재판관으로는 목영준, 이공현이 참여했다. 민판연 회원 상당수가 개업하면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입사한다. 판사와 함께 변호사까지 참여하는 조직이다. 해마다 논문집을 발행해 올해 제40집을 냈다. 현재 회원 수는 236명이다.

올해 30주년을 맞는 우리법은 1988년 2차 사법파동을 주도한 판사들이 만든 모임이다. 2차 사법파동은 1988년 노태우 정부가 전두환 시절 인물인 김용철 대법원장을 유임시키려 하자 판사 355명이 연판장에 서명하며 반대한 일이다. 우리법 지지를 받은 이용훈 대법원장이 2005년 취임하면서 우리법이 법원 핵심이 됐다. 이 대법원장 시절의 김종훈 대법원장 비서실장과 이광범 사법정책실장 등이 창립 멤버다.

우리법 멤버들이 법원의 주요 직책을 맡자 보수진영에서 ‘법원 내 하나회’라고 주장했다. 130명에 이르던 회원이 줄줄이 탈퇴해 2010년 60명이 됐다. 이후엔 실질적으로 가입과 탈퇴가 없으며 법관을 사직한 숫자만큼 감소했다. 김명수 대법원장, 유남석 헌재소장 후보자,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의원, 강금실 변호사 등이 회원이었다. 이광범 변호사가 대표인 LKB라는 로펌에 우리법 출신이 많다. 지난해 논문집 제7집을 냈는데 7년 만이었다.

사법농단 관련자·조사자들
다수가 ‘우리법’, 감싸기 결정
조직 논리로 중요 사안 왜곡

일부에서는 두 조직의 성격을 단순하게 파악해 민판연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세력으로, 우리법을 김명수 대법원장의 지지기반으로 오해한다. 그래서 사법농단을 민판연 세력이 저지르고 우리법이 단죄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두 조직은 두 대법원장 시절에 걸쳐 서로를 돕고 보완하는 관계일 뿐 적대적이지 않다. 두 조직에 동시에 가입한 수많은 판사의 존재가 이런 사실을 방증한다. 지난해까지 우리법 회장이던 장철익 서울고법 판사가 민판연 회원이고, 사법행정권 남용의 실행자로 수만개 파일을 삭제한 혐의를 받는 김민수 판사도 두 모임의 핵심 회원이다. 그래서 “대법원과 법원행정처는 민판연과 우리법의 연합정권이었다”는 말도 있지만 두 곳은 당초 배타적이지 않아 연합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두 단체에 대한 판사들의 설명은 이렇다. “민판연이야 스스로 똑똑하다는 거 인증하는 단체 아니겠냐. 잘나가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밀어주고 끌어주기야 하겠지만 그 이상 특별한 결속력이 있는 곳은 아니다. 잘난 사람들이 서로를 이용하는 관계라고 보는 게 차라리 맞다. 하지만 우리법은 어려운 시절을 함께 버티고 견뎌온 사람들이다. 서로에 대한 연민과 믿음 같은 게 강하다. 서로를 형님, 동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별히 연구를 하는 모임도 아니고 일종의 친목단체다.” 우리법 회원들이 특정한 시기에 사법부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지만 소수에 그친다. 반면 민판연 회원들은 오랜 세월 폭넓게 사법기관의 핵심을 장악해왔고, 지금도 여전히 요직을 차지한다.

최근 우리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법원에서 다시 나온다. 우리법이 조직 논리를 바탕으로 사법부의 중요한 문제들을 왜곡하고 적절한 해결을 가로막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지난 5월 사법행정권 남용 특별조사단은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의견을 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당한 판단이었다. 이와 관련해 사법행정권 남용 실행자 상당수가 우리법 회원이고 이들을 조사한 조사단에 우리법 회원이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 밖에도 “2009년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개입이 드러나자 법원 안팎에서 사퇴 요구가 거셌는데 당시에도 우리법 회원들이 무마하고 가라앉혔다. 신 대법관이 사퇴하면 그를 제청한 이용훈 대법원장도 타격을 입는다는 게 이유였다. 조직을 우선으로 사고하는 사람들”이라는 게 법조계 평가다.

우리법 출신들이 조직을 위주로 생각하면서 불법의 경계를 넘나든 것은 사법농단 사건이 처음이 아니라는 얘기도 있다. 법원 관계자들은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 우리법 출신 법원 고위직이 일선 재판부에 전화를 종종 걸었는데 사건을 보면 우리법 출신(의 이익)이 관련된 사건이었다”면서 “담당 판사가 뜨악한 반응을 보이다 끊으니 나중에 이 판사를 두고 전화 받는 태도가 불친절하다고 비난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최근 사법농단 관련자이자 우리법 회원인 서울중앙지법 판사가 직위를 이용해 수사검사를 비난하다 논란이 됐을 때도 우리법 회원들이 나서 상황을 수습하려 했다”면서 “우리법 사람들은 조직과 자신을 과도하게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법은 우리법 후신이라는 주장이 있다. 우리법이 여전히 있는 상황에서 후신이란 말은 어색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후신 격’이라는 말로 바뀌었다. 하지만 이 역시 두 단체의 성격을 잘못 파악한 것이다. 법원 입장에서 보면 사조직들에 불과한 민판연이나 우리법과 달리 인권법은 법원이 지원하는 공식 연구모임이다. 회원이 500명을 넘는 대규모 단체다. 성향을 거론하기가 어렵다. 2011년 설립 당시 회원모집 안내문에는 “국제인권법 연구를 통해 인권법에 관한 법관들의 전문성을 제고하고 실무능력을 향상시키며, 궁극적으로는 재판을 통한 인권 증진과 보호에 기여할 것을 목표로 한다”고 돼 있다. 이 단체 초대 회장인 김명수 대법원장이나 당시 임시간사 중 이옥형 판사(현 변호사)가 우리법 출신이지만 민판연 출신 회원도 그 못지않게 많다.

인권법을 우리법 후신이라 여전히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인권법을 주도하는 세력이 우리법 출신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핵심이라 불리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를 들어보면 두 단체가 그렇게 가깝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인권법에 참여해온 사람들 가운데 우리법 출신의 행태에 부정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해 법관을 사직한 김형연 청와대 법무비서관이나 헌법재판관 후보자인 김기영 서울동부지법 수석부장판사도 그런 경우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우리법이 법원 안팎에 세력을 형성해 인사에 영향을 미치려 하고 사법농단에도 우리법이 다수 관여했다는 이유 때문에 아쉬움을 나타낸다고 한다. “두 사람을 비롯해 적잖은 판사들이 우리법과 민판연에 똑같이 비판적이다. 소수의 사조직 구성원들이 사법부 내부에 정의가 아닌 의리라는 왜곡된 가치관을 구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판사들은 설명한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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