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시성>은 당 태종 이세민의 20만 대군에 5000여명의 군사로 맞서 싸운 안시성 성주 양만춘(조인성)을 주인공으로 하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다. NEW 제공
당나라 20만 대군에 맞선
성주 양만춘의 고군분투
화려한 볼거리로 승부
■ 섬세함의 ‘명당’
두 명의 왕이 나온다는 땅
둘러싼 궁중 배경 암투 그려
입체적인 명품 연기 돋보여
추석 연휴를 앞둔 오는 19일 영화 <안시성>과 <명당>이 개봉한다. 각 고구려·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역사물로, 약간의 역사적 정보가 있다면 두 영화 모두 결말은 알려진 것과 다름없다. 그럼에도 두 영화는 배우들의 열연과 차별화를 시도한 연출로 극장을 찾기에 충분한 영화적 재미를 준다. <안시성>이 거대한 스케일과 화려한 영상으로 영화만이 구사할 수 있는 장점을 극대화했다면, <명당>은 인물 간의 갈등 대립 구조가 촘촘한 연극적인 재미를 살린 영화다.
■ 할리우드 못지않은 블록버스터
<안시성>은 당태종 이세민(박성웅)의 20만 대군에 맞선 고구려 변방 안시성 성주 양만춘(조인성)과 그의 부하 5000여명의 고군분투를 그린 액션 블록버스터로, 총제작비가 220억원에 달한다. 두 편 합쳐 40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신과 함께> 한 편의 제작비를 웃도는 수준이다. 이를 증명하듯 영화는 화려한 전쟁 장면으로 시작한다. 요동 주필산 벌판에서 벌어지는 당과 고구려 군의 맞대결은 스펙터클한 화면과 박진감 넘치는 소리로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영화 초반부는 성주 양만춘의 인간적인 면모를 부각시키는 데 집중한다. <안시성>은 이 같은 양만춘의 모습을 단순한 제3자가 아닌 양만춘을 살해하기 위해 안시성에 잠입한 사물(남주혁)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극 초반 영화적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한 장치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긴장감을 딱히 높이지는 않아 다소 아쉽다.
불가능한 전투를 승리로 이끈 영웅의 이야기는 카타르시스나 감동을 선사한다는 점에서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소재다. 그러나 자칫 감동을 주려는 요소가 과하면 역효과만 불러온다. <안시성>은 감동 요소를 적절하게 유지한다. “나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안시성 사람들, 저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자” 등 영화에 몰입하지 않으면 민망함이 배가될 대사가 있지만 과하지는 않다. 전쟁 중이 아니면 무게를 잡지 않는 양만춘의 모습에서 기존 장수들에게서 보기 힘들었던 담백함, ‘쿨함’이 배어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연뿐 아니라 조연들도 기름기를 뺀 연기를 선보인다. 다만 박성웅의 중국어 연기는 아쉽다. 발음에 너무 집중하려다보니 감정 전달은 놓친 느낌이다.
영화 <300>이나 외국 블록버스터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화면도 인상적이다. 백미는 두번째 야간 공성전이다. 할리우드 등에서 쓰이는 최신 장비로 촬영된 장면에서 인물들의 ‘멋짐’이 폭발한다.

<명당>은 조선 후기 ‘두 명의 왕이 나온다’는 천하명당을 둘러싸고 당대 최고 권력가와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이 대립하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인물·연기가 돋보이는 사극
<명당>은 두 명의 왕이 나올 천하명당 ‘2대 천자 지지’를 차지해 대대손손 나라를 좌지우지하려는 장동 김씨 일가와 이를 막으려는 ‘천재 지관’ 박재상(조승우), 몰락한 왕손 흥선(지성)의 대립을 그린 영화다. 선대의 묏자리를 잘 둬야 일이 잘 풀린다는 풍수지리, 땅을 소재로 한 영화지만 결론적으로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에 관한 영화다. “2대 천자 지지를 차지하면 왕이 될 수 있다”는 지관 정만인(박충선)의 제안에 당대 최고 권력가 김좌근(백윤식)은 “지금도 왕보다 더 센 권력을 갖고 있는데, 굳이 불편하게 왜 왕이 돼야 하느냐”고 말한다. 그러나 후에 다른 일가가 왕이 되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정만인의 말에 김좌근은 생각을 바꾼다.
<명당>의 가장 큰 매력은 입체적인 인물 설정이다. 가장 입체적인 인물은 흥선이다. 영화는 ‘쇄국정책’ 등 카리스마 있는 인물로 알려진 흥선이 왕권을 차지한 뒤 왜 그토록 권위에 집착했는지를 보여준다. 흥선 자신은 비록 땅에 던진 음식을 주워 먹는 수모도 견뎌내지만, 자식만은 그런 수모를 겪지 않게 하겠다는 흥선의 다짐은 자식을 위해 뭐든 희생하는 한국 사회 많은 부모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매력적인 인물 설정은 배우들의 열연으로 빛을 발한다.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이도록 영화는 많은 컷을 인물의 얼굴로 채우는 클로즈업에 할애한다. 또 인물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을 전달하기 위해 ‘줌 아웃 트랙 인(인물의 크기는 유지되지만 배경의 크기는 바뀌는 촬영기법)’ 등으로 담는다.
조선 후기를 그리고 있지만, 사실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 보는 재미를 더한다. 특히 부동산이 가장 큰 화두인 지금, 흥미롭게 읽히는 대사와 장면이 다분하다. 풍수란 것이 꼭 묏자리나 땅만이 아니라 가구 배치 등도 해당한다는 내용을 담은 것도 인상적이다. 풍수지리를 연구하는 지관은 허황된 미신을 믿는 이가 아니라 일종의 도시·인테리어 디자이너일 수도 있다고 영화는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