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작가가 <회색인간>이라는 문제적인 소설집을 출간한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원래는 ‘복날은간다’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게시판에 단편소설을 쓰던 작가였다. 1년 반 동안 무려 300편 넘게 썼다. 그의 독자이자 팬이었던 나는 출판사에 그를 소개했고, 요청을 받아 단행본의 기획에도 참여했다. 그래서 요즘에도 나에게 “김동식 작가 강의 요청 좀 드리려고 하는데, 매니저 맞으시죠?” 하는 연락이 종종 온다. 나름대로 즐거운 오해다. 그는 요즘 중·고등학교에서 초대를 많이 받고 있다. 그의 책을 읽은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토론을 하고 “다음 책은 어디 있나요?” 하고 교사와 부모에게 묻는다고 한다.
![[직설]당신도 꿈이 없으신가요?](https://img.khan.co.kr/news/2018/10/03/l_2018100401000356400029541.jpg)
얼마 전 만난 김동식 작가에게 학교에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니까, 그는 교사들에게 다음과 같은 요청을 자주 받는다고 했다. “우리 학교 학생들은 꿈이 참 없는데요, 학생들이 꿈을 가질 수 있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라는. 글쓰기를 배운 적이 없는 한 사람이, 그저 댓글을 받는 게 좋다는 이유로 소설을 썼고, 그것이 책으로 출간되어 ‘오늘의 작가상’ 최종심에 오를 만큼 2018년 상반기 내내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지금도 3일에 한 편씩 신작을 쓰면서 전업작가로 살아가고 있다. 그는 어쩌면 모두의 꿈에 가장 근접한 인물이겠다. 그런데 나는 그 질문에 답한 김동식 작가를, 어느 중학생이 올린 인스타그램 동영상에서 본 일이 있다. 영상 속의 그는 학생들을 향해 “꿈이 없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라고 말한다. 잠시 조용해졌던 강당은, 곧 모든 중학생들의 박수와 환호성으로 가득 찬다.
나는 사실 “꿈이 없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라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꿈은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이라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훈육받아 왔고, 누군가 꿈을 물었을 때 멋진 대답을 하지 못하면 죄인이 된 심정이 되고 말았다. 없다고는 차마 대답하지 못하고 무어라도 준비해야 했다. 스무 살 무렵에는 어느 친구가 “꿈이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난 없지만 언젠간 생길 거라고 믿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그때 그가 괜찮은 걸까 걱정이 되었는데, 그가 정말 용기 있고 멋있는 사람임을 많은 시간이 흐르고서야 알았다. 정작 용기가 없는 사람은 나였다.
물론 꿈을 갖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김동식 작가 역시 꿈을 가지는 건 중요하다고 이어 말한다. 그러나 그에 더해, “제가 뭐라고 타인의 꿈에 개입하겠어요, 그건 강요해서는 안되는 거예요. 그런데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포기하지는 마세요. 저는 여러분이 나중이 아니라 지금 즐거우면 좋겠어요”라고 덧붙인다. 나는 같이 간 강연에서 이렇게 답하는 것을 정말로 들었는데, 이 답에 그를 바라보던 교사들이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는 것을 보았다.
꿈, 열정, 노력. 이러한 단어들은 주로 기성세대로부터 청년세대에게 전달된다. 이제 서른이 넘은 나는 이제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돌려줄 나이가 된 것 같다. 그러나 그러는 대신 그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이 조금은 자신을 덜 아파할 수 있게 이 사회의 문화나 제도를 바꾸는 데 한 줄을 보태고 싶다. 사실 꿈을 가져야 하고 열정이나 노력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들 중, 실제로 어린 시절부터 진정한 꿈이 있었고 그것을 이룬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거의 없다고 믿는다. 대신 꿈을 이룬 사람일수록 타인의 꿈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를 응원하며 지켜보는 일이 더 많다. 내 주변의 존경할 만한 이들이 대개 그렇다.
다섯 살이 된 나의 아이는 벌써부터 온갖 체험을 나간다. 입학을 앞두고 주변의 유치원에서 보내온 커리큘럼을 보면, 숲 체험·농장 체험·소방관 체험 등 그 종류도 무척 다양하다. 초등학생이나 중·고등학생들도 직업체험 수행평가를 위해 여러 직업군을 찾아 인터뷰나 일일 아르바이트를 한다. 카페를 겸하는 모 문화공간의 대표는 초·중등 학생들이 직업체험을 위해 찾아오는 일이 너무 많아졌다고, 와서 커피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거나 사진을 찍거나 하는데 사실 조금은 번거롭다고 나에게 말하기도 했다. 우리는 어쩌면 아이들에게 너무 일찍 미래를 상상하고 거기에 힘을 쏟기를 강요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꿈이 없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라는 김동식 작가의 말에 쏟아져 나온 환호성은, 그들이 얼마나 꿈에 짓눌려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나는 나의 아이들이 미래를 체험할 시간에 차라리 현재에 충실할 수 있으면 한다.
현재를 포기하고 미래에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은 없는 법이다. 현재에 행복할 수 있는 한 인간은 언제든 행복할 수 있고, 미래에만 행복할 수 있는 인간은 미래에도 행복해질 수 없다. 서른이 넘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는 모 작가처럼, 모두가 현재에 충실하며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