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00쪽 전문 첫 공개 ‘의미’
12·12군사쿠데타 1주일 뒤인 1979년12월18일 쿠데타를 기획했던 보안사령부 간부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부터 최례섭 기획조정처장, 우국일 참모장, 전두환 사령관, 변규수 육본보안부대장, 남웅종 대공처장(이상 사령관 제외 준장). 뒷줄 왼쪽부터 허삼수 인사처장, 이차군 군수처장, 한사람 건너 권정달 정보처장, 정도영 보안처장, 한사람 건너 김병두 국방부보안부대장, 허화평 비서실장, 백재구 교육대장, 이상연 감찰실장(이상 대령). 경향신문 자료사진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제5공화국은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최근 논란의 근원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언급한 내용들 때문이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는 그의 회고록에서 권력 찬탈이나 광주 학살에 대한 미안함이나 후회의 모습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점과 관련이 있다. 그가 이런 태도를 취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 시절의 실상을 속시원하게 밝혀줄 자료나 연구가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경향신문의 노력에 의해 <5공 전사>가 공개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5공 전사(前史)>는 그 이름 그대로 제5공화국 출범 이전까지의 정치적 상황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다. <5공 전사>는 ‘현대한국사연구회’라는 임의단체 이름으로 1982년 5월에 편찬되었다. 이 책은 해방 이후 한국 정치사에서부터 기술하고 있지만 본격적으로는 유신 이후, 특히 10·26 사태 이후의 상황 전개에 대해 상세히 다루고 있다. 이 책은 그후 제5공화국 체제가 마무리되는 1981년 3월 국회의원 선거 직후의 상황까지를 포함하고 있다. 이 책의 편찬자들은 “평소 한국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국내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 분야의 중견학자 8명”이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누가 참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5공 전사>는 그 당시 상황의 매우 상세한 기록을 담고 있다. 실제로 이 책의 편찬자들은 “시대적 범위 내의 역사적 흐름을 보다 포괄적이고 객관적으로 정리하기 위해 그간의 신문, 잡지는 물론 각 관련 기관의 제 문서들을 총망라 모집하고, 중요한 사건 및 사태에 직접 또는 간접으로 관련된 인물 300여명의 증언을 청취하였다”고 서문에서 밝히고 있다. 이 책에는 10·26 당시 현장 상황도, 12·12 사태 당시 현장 상황도는 물론 ‘각 대학 학원 사태 주동자 계보’, 광주민주화운동 진압을 위해 육군본부에서 하달한 ‘상무충정작전’에 대한 수기 서류 등 보안사 같은 당시의 실세 군 정보기관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 적지 않게 포함되어 있다. 더욱이 관련자 300여명의 증언을 청취했다는 것은 이 책의 편찬작업이 5공화국 주도 세력의 전폭적 지원하에 이뤄졌음을 알게 한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5공의 정권 실세들은 왜 이런 기록을 남기고자 했고,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 책의 편찬자들은 “1945년 해방 이후 오늘날 80년대 초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민족사적 시련과 격동을 겪어왔음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역사적 중요사가 빠짐없이 기록된 자료들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중략)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본 연구회는 한국현대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의 하나를 이룬 10·26 사건을 비롯하여 제5공화국 출범까지의 격동기에 일어난 정치, 경제, 사회적 중요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정리, 기록하여 우리 현대사에 잃어버린 부분이 없도록 하려 이 책을 편찬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 서문을 읽으면서 1388년 요동 정벌을 위해 파병된 군대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쿠데타를 일으켜 고려를 몰락시킨 사건이 떠올랐다. 쿠데타를 주도한 이성계는 군의 실권자 최영을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시켰다. 그 후 창왕, 공양왕 등 명목상의 왕을 잠시 세웠다가 1392년 마침내 자신이 최고 권력에 오르게 된다. 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찬탈했지만 왕(王)씨가 아닌 이(李)씨가 왕이 된다는 것은 당시에도 백성들로서는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권력 찬탈이 이뤄지고 거의 60년의 세월이 흐른 1447년, 조선의 건국이 불가피했고 정당했다는 것을 강조하는 ‘용비어천가’가 일반 백성이 읽을 수 있는 한글로 간행되었다. ‘용비어천가’ 내용은 우리가 아는 대로, 하늘의 뜻에 의해 조선이 건국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용비어천가’ 간행은 이른바 ‘역성혁명’에 대한 정치적 정통성의 취약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5공 전사> 프로젝트 역시 ‘용비어천가’와 마찬가지의 목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정승화 계엄사령관을 체포하고 군권을 장악한 것, 최규하 대통령을 무기력한 명목상의 국가원수로 남겨 두어 잠시 구체제를 유지한 것, 그 후 전두환이 직접 권력을 장악한 것 모두 600년 전에 일어났던 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한 권력 찬탈에 대한 정치적 정통성의 취약함 또한 비슷하다. 더욱이 그때와 달리 오늘날 권력 창출은 국민의 동의하에 이뤄져야 한다는 점에서 전두환과 신군부의 권력 찬탈은 어떤 형태로든 정당화될 수 없었다. 이들도 그런 점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5공 전사>는 바로 제5공화국 탄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다. ‘용비어천가’에서처럼, 5공 탄생이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5공 전사>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10·26 사태 이후 국가 지도력의 공백과 급진적인 자유화 물결에 편승한 각종 소요로 사회가 혼란하여 국가 자체가 위태로워지자 계엄 상황하에서 12·12 사건을 슬기롭게 극복한 주역들이 자연히 사회 안정과 혁신의 중심 세력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이처럼 이 책은 5공 출범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신군부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공 전사>는 이 시기 주요 정치행위자들의 생각과 의도를 읽어낼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 대한 정보뿐만 아니라 글의 행간에서 당시 발생한 사건에 대한 ‘진실’을 찾아낼 수 있다. <전두환 회고록> 등 최근에 행해지고 있는 사실 왜곡에 대한 반증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은 당시 신군부가 박정희 서거 이후의 정국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는지 알게 해주며, 정치권력의 공백 속에서 총칼로 권력을 쟁취하려는 신군부의 욕망을 민낯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현재 학술적으로 공백이 큰 시기가 유신 후반부터 제5공화국 출범까지의 기간이다. 개인적으로는 최근 ‘역사비평’을 통해 이 시기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연구를 진행하면서 선행 연구와 자료 부족으로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 부마항쟁이나 광주민주화운동 같은 저항의 역사에 대해선 적지 않은 학술적 논의가 이뤄져 왔지만 유신 후반 박정희 통치 체제의 특성, 10·26 사건 이후의 정치 상황 전개, ‘서울의 봄’의 몰락 과정, 5공 출범과 관련된 권력층 내부의 움직임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보다 자료 부족 때문이다. 이 시기와 관련해 가장 중요한 증인인 최규하 전 대통령은 단 한 줄의 글도, 단 한마디의 말도 남기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또 다른 중요한 증인이라고 할 수 있는 김재규는 전두환에 의해 서둘러 사형에 처해졌다. 지금 찾아볼 수 있는 관련 자료는 전두환 이외에도 정승화 계엄사령관, 신현확 부총리, 김종필 공화당 총재, 윌리엄 글라이스틴 미국 대사, 존 위컴 주한미군사령관, 장태완 수도경비사령관 등의 회고록과 5·18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록 등 일부에 국한되어 있다. 이 시기에 대한 미국 외교문서 역시 아직 해제되지 않은 것이 많다. 제5공화국이 몰락하고 민주화가 이뤄진 지 30년 이상 지난 최근까지 <5공 전사> 같은 자료가 왜 공개되지 않고 있었는지 궁금증이 든다. 누가 어떤 이유로 여전히 이 자료를 비호하고 있었을까. 그것은 군 민주화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가 될 것 같다.
<5공 전사>의 공개로 인해 이제 이 시기에 대한 연구가 한 단계 더 진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자료의 편찬자들은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마무리하고 있다. “이렇듯 편찬자들은 주어진 시대적 범위 내에서 여러 가지 역사 현상에 대한 진실을 후세에 전하려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역시 부족한 인간의 작품인지라 본의 아니게 오류나 미흡한 부분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부분은 후세 사가들의 평가와 광정(匡正)을 기대하고, 우리는 단지 최선을 다해 그간의 역사적 공백을 메우는 노력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이들이 지적한 대로, 이 책에 서술된 내용 가운데 이 시기에 관한 ‘오류나 미흡한 부분’은 실제로 적지 않다. <5공 전사>의 공개와 그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왜곡된 시대적 사실을 바로잡아 고쳐 나가기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