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록 실린 26개 대학 계보도
사실상 ‘학원 사찰 기록물’
출신·교우관계·시위 전력에
A·B·C급 나눠 세세히 분류
전두환 정권의 비밀문서 <제5공화국 전사>에는 당시 전국 26개 대학의 학생운동 계보도 37개와 교수·학생 등 458명의 이름이 적혀있다. 일종의 학원 사찰 기록이다. 출신 지역과 고교, 선후배 관계, 시위 참여 경력에 더해 학생들을 ‘A·B·C’급으로 나누거나 ‘행동총책’처럼 역할을 구분하는 등 깨알같이 적었다. 체포를 위한 준비문건이자, 신군부가 5월18일 광주민주화운동 이전부터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조작에 착수했음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이기도 하다.
학원사찰 계보도는 2차례에 걸쳐 만들어졌다. 1980년 5월6일자 ‘대학생 학원사태 주동자 배후 체계도’와 15일자 ‘각 대학 학원사태 주동자 계보’다. 당시 대학가를 사찰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대학교당 적게는 3명부터 52명까지 이름을 적은 계보도를 그렸다.
‘대학생 학원사태 주동자 배후 체계도’엔 강원대·건국대·경희대·고려대·동국대·서강대·서울대(2개)·성균관대·세종대·연세대·외대·전남대·조선대·한신대·한양대 등 15개 대학이 담겼다. 대학별 계보도의 형태는 유사하다. 복학생과 복직교수, 총학생회장단을 주요 주동자 집단으로 두고 학내 서클 등 모임별 인물까지 기록했다.
문건 절반 이상 ‘배후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골격 그대로
전남대 계보 12명 중 7명 체포
신군부 예비검속 근거로 작용
절반 이상의 문건이 학원사태의 배후로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이름을 적었다. 이와 함께 ‘DJ 지지 교수’로 묶인 이들이나 복학생들도 주동자나 배후에 자주 등장한다. 가령 ‘5·6 연대계엄해제요구 등 사태 배후 체계도’는 ‘배후(김대중)/ KT 지지 교수’들이 총학생회장에게, 복직교수들이 복학생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학생운동의 배후가 된 것처럼 체계도를 그렸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 긴급조치로 끌려갔던 교수와 학생들이 돌아오자, 신군부가 이들을 민주화운동의 주요 거점으로 보고 예비검속을 통한 체포에 들어갔다.
DJ와 복직교수, 복학생을 중심으로 신군부가 짠 시나리오는 이후 내란음모 조작사건의 골격으로 그대로 유지됐다. <5공 전사>는 이 계보도를 토대로 “5월6일 현재 정보기관에 의해 파악된 전국 15개 대학의 시위 주동자들의 조직체계도를 보면 김대중과 학생시위와의 관계가 얼마나 밀접되어 있는가를 알 수 있다”고 결론짓고 있다. 부록 682쪽에는 DJ부터 시작해 86명의 이름이 담긴 ‘전남대학 복적생 주축 내란획책 체계도’도 함께 실었다.
사찰 대상자들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학과와 학년, 출신 지역과 고교를 기록했다. 서울대 계보도의 ‘총대의원의장 (경북, 심인고) 유시민 (경제3)’ 같은 식이다. 이에 더해 이름과 함께 ‘74년 유신 반대 데모 가담’ ‘75·4·3 사태(구속)’ 등 시위 전력을 표기한 것도 다수다. ‘5·15 영등포로타리(로터리) 집결시위 예정’ 등 학교별 시위 계획을 입수해 적기도 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이었던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의 이름 아래에는 ‘50만원 수수설’이라는 표기를 해뒀다. 당시 신군부는 학생들이 자금 또는 김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시위에 나선것으로 사건을 조작했다. 심 의원실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장례금 20만원을 받아 학생회에 전달한 사실은 있으나, 이와 관련한 허위자백을 한 바 없고 시위자금과 무관한 것으로 인정되어 기소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5월15일자로 만든 ‘각 대학 학원사태 주동자 계보’ 중 일부에는 사찰 대상자들의 급수를 나눠 표기한 것도 눈에 띈다. 6일자 문건 중 10개 대학에 더해 명지대·숙명여대·이화여대·중앙대·홍익대 등 11개 대학을 추가했다. 고려대의 경우 복학생 그룹을 셋으로 나눠 ‘복학생(A)’ ‘복학생(B)’ ‘복학생(C)’ 등으로 표기했다. 유신 반대 운동으로 복역, 제적당한 뒤 복학한 설훈 현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복학생(A)’에 적혔다. ‘설훈(사2), 5·2시위 최초 주동, 시위 선두, 정문 경비’로 돼 있다. 이화여대 계보도에는 복학생과 교수, 총학생회장단과 함께 ‘기타 A급’란을 별도로 둬 ‘전여옥(사3)’ 등 8명을 실었다.
성균관대 계보도의 경우 사찰 대상들의 이름 아래 ‘문제학생 조종’ ‘써클(서클) 동원 지령 및 조종’ ‘행동총책’ 등 역할을 표기했다. 2016년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망한 백남기 농민은 중앙대 계보도에 ‘제적생/ 백남기(행4)’로 등장한다.
1980년 5·17 계엄 확대와 함께 신군부는 정치인과 민주화 인사 및 대학생들을 대거 체포했다. 신군부가 작성한 학원사찰 문건들에 오른 이들을 우선 검거 대상으로 삼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경향신문 취재 결과 광주에서만 ‘전남대 및 조선대’ 계보도에 이름이 적힌 대학생 12명 중 정동년씨 등 7명이 당시 예비검속에 따라 체포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예비검속에서 체포된 인원은 전국적으로 2699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