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학생운동 계보 통해 계엄 확대 정당화 수단 삼아
“전 장군, 국가 기로 판단…” 전두환의 적극적 개입 명시
<5공 전사> 부록 2편 661쪽에 실린 ‘성균관대 학원사태 주동자 계보’(위쪽). 사찰 대상자별로 ‘써클동원 지령 및 조종’ ‘문제학생조종’, ‘행동총책’ 등 역할을 꼼꼼하게 구분해 기록했다. 같은 책 658쪽의 ‘고려대 학원사태 주동자 계보’(아래)는 복학생(B) 그룹에 속한 사찰 대상자에 대해 ‘5월4일 19시 교문에서 궁정동 말둑이굿에서 심수봉 역활(역할의 오기)’이라고 시위 참여 경력을 써놓았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조국이 처한 국가적 위기의 실상을 인식하려들기보다는 자기들의 독선을 행동으로 표현하기에 급급”
“민주투사연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과시”
“기고만장과 안하무인격 태도”
병영집체계획제도 거부에 대해 “대학생으로서의 이해수준과 양식을 의심케 하는 자세”
“사회주의적 혁명 분위기 달성 징후”
“남북한 용공통일을 성취시키며 나아가서는 적화통일을 지향하는 방향”
<제5공화국 전사>는 1980년 5월 대학가 민주화운동을 폄훼하는 데 주력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등 ‘불순분자’의 배후조종, 학생들의 ‘독선과 횡포’에 따른 것으로 규정했다. “적화통일을 지향”하는 행위라고도 했다. 5·17 계엄 확대를 정당화하는 동시에, 전남지역 대학생들이 참여한 5·18민주화운동을 ‘반국가적’인 활동으로 낙인찍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5공 전사> 본문 4편의 ‘학생소요 사태’ 부분은 유신체제 종식 후 대학가의 학원 자율화 열기부터 다룬다. 신군부는 유신체제 종식 후 학생들의 학원 자율화 운동을 “조국이 처한 국가적 위기의 실상을 인식하려들기보다는 자기들의 독선을 행동으로 표현하기에 급급하였다”고 표현했다. 대학 1학년생들에게 10일간 군대 교육을 시키는 병영집체계획제도 거부에 대해선 “대학생으로서의 이해 수준과 양식을 의심케 하는 자세”라고 비난했다.
신군부가 특히 주목한 대상은 복학생들이다. 유신 긴급조치 해제와 복권조치로 학교에 돌아온 학생들을 ‘배후 선동세력’으로 지목했다. 당시 민주화운동에 나선 복학생들을 이 책은 “민주투사연하는 태도를 노골적으로 과시” “기고만장과 안하무인격 태도” 등 감정적 어조로 비난했다.
1980년 계엄사령부가 만든 ‘학원가의 불온유인물 분석’ 문서 등을 들어 학생민주화운동을 “남북한 용공통일을 성취시키며 나아가서는 적화통일을 지향하는 방향” “사회주의적 혁명 분위기 달성 징후”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또 다른 특징은 학생들의 성토 대상 중 전두환 전 대통령만은 직접 드러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위에 나선 학생들은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 겸 합수본부장과 신현확 총리의 실명을 거론하며 “물러가라”고 집중 성토했다. <5공 전사>는 이를 “○○○의 퇴진” “신현확 등 특정인의 퇴진” 등으로 간접 표현하고 있다. 5공화국 출범 이후 보안사 주도로 쓰인 만큼 전 전 대통령에게 부정적인 내용은 최소화하려고 한 것으로 해석된다.
다만 신군부는 이 책을 통해 5·17 계엄 확대 조치에 전 전 대통령이 초기부터 적극 개입했다는 점은 스스로 밝히고 있다.
1498쪽에 “전두환 장군은 (학원소요) 사태가 이렇게 발전하다가는 국가가 존망의 기로에 놓이게 되리라고 판단했다”며 이후 합수본부 중정부국장에게 정세분석팀을 구성토록 지시한 과정이 나와 있다. 중앙정보부, 보안사, 경찰에서 차출해 꾸린 이 정세분석팀에서 내놓은 결론이 바로 “계엄을 전국 비상계엄으로 확대 선포하고 소요의 근원은 물론 사회불안요소의 제거조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었다. 학생운동권 지도부를 대거 체포한 계엄 확대의 시발점에 전 전 대통령이 있었던 셈이다.
배명재·강현석·유정인·조형국
■ 자문위원단 (교수·가나다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노영기 (조선대 기초교육대학)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한정훈 (서울대 국제대학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