덮어두다간 큰일이 온다
![[노승영의 내 인생의 책]⑤원은 닫혀야 한다 - 배리 카머너](https://img.khan.co.kr/news/2018/11/01/l_2018110201000102400012521.jpg)
“내가 깨끗해질수록 세상이 더러워진다.” 내가 번역한 책의 번역자 소개란에는 이 문구가 항상 들어간다. 씻는 게 귀찮아서 핑곗거리를 대는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그보단 좀 더 심오한 고민의 결과물이다(물론 비누와 샴푸를 쓰지 않는 건 사실이지만). 이 문구를 좌우명으로 삼게 된 계기는 대학생 때 읽은 책 한 권이었다.
늦은 오후, 서점 안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제본된 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제목만 보고 나도 모르게 집어든 책, 바로 배리 카머너의 <원은 닫혀야 한다>였다. 발행일이 1980년 1월10일이니 그때 이미 절판된 지 오래되었을 것이다.
원제 ‘닫히는 원(The Closing Circle)’은 생태계의 순환을 뜻한다. 인간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이 순환의 고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배출하는 오염 물질의 상당수는 자연의 처리 과정을 거쳐 분해·재활용되지 않고 마냥 쌓인다.
19세기 이전까지 유럽의 도시는 분뇨와 온갖 쓰레기로 몸살을 앓았다. 아무 데서나 대소변을 보는가 하면 요강을 창밖 길거리에 그냥 비우는 바람에 악취가 진동했다. 그러다 하수도가 정비되면서 길거리가 깨끗해졌는데, 문제는 하수 처리 방식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더러운 하수가 그대로 강과 바다에 흘러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1858년에는 템스강의 악취가 어찌나 심했던지 하원의 회기가 취소되었다고 한다.(책에 나오는 일화는 아니다.)
그러니 눈으로 보기에 깨끗하다고 해서 정말로 깨끗한 것은 아니다. 끊긴 고리의 끝을 어디엔가 숨겨놓고 안 보이게 덮어두기만 하다가는 언젠가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인류가 살아남으려면 생태계의 거대한 원을 다시 닫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