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간 나는 비양심적?” 양심적 병역거부 무죄 판결에 대한 3가지 오해

이혜리 기자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한 청와대 국민청원이 2일 오후 300건을 넘어섰다. 대체로 이번 판결 때문에 군 복무를 마친 남성들이 억울하게 됐다고 호소하는 글이다. 이 같은 주장에는 대법원 판결 취지를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부분이 많다. 경향신문은 이번 대법원 판결과 1·2심 법원에서 나온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여러 무죄 판결문과 문헌을 참고해 사실과 오해를 확인했다.

■“군대 간 나는 그럼 비양심적이냐?”

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군대 간 나는 그럼 비양심적이냐?”, “군대에 간 젊은 청춘들은 비양심적이라는 건가”라는 주장이 많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양심의 의미와 헌법 제19조에서 규정한 ‘양심의 자유’에서의 양심의 뜻을 혼동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양심이란 “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정의돼 있다. “나는 양심적”이라고 할 때의 그 ‘양심’이다. 여기서 양심적이라는 말은 ‘선량하다’, ‘착하다’, ‘올바르다’는 뜻으로 쓰인다.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관련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헌법에서 말하는 뜻은 조금 다르다. 헌법재판소는 2002년 양심에 관해 “헌법 제19조에서 보호하는 양심은 ‘착한 마음’ 또는 ‘올바른 생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른 것에 대한 판단을 추구하는 가치적·도덕적 마음가짐을 뜻한다”고 규정했다. 대법원은 이번 선고에서 “양심은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것”이라고 했다. 단순히 선량하다거나 올바르다는 의미가 아니다. 헌법의 양심은 예를 들어 ‘집총’이 자신의 인격과 존재를 무너뜨리는 행동이 될 것이라는 절박한 내면의 소리다. 개인의 소신에 함부로 국가가 간섭하거나 제한해서는 안 된다는 이번 판결도 이같은 양심에 대한 정의에서 도출됐다.

■“나도 양심적 납세거부 하련다?”

일각에선 국방의 의무에 납세의 의무를 빗대 “나도 양심적 납세거부를 하겠다”며 판결을 비판한다. 김소영·이기택 대법관도 반대의견에서 “병역거부를 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치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가 있다면, 자신의 다른 행위 예컨대 국가에 세금을 납부하는 행위가 이에 기여하는 경우에는 그것도 거부하는 게 마땅하다”고 했다. 국가에 낸 세금이 국방비로도 쓰인다는 점에서 진정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라면 세금까지 거부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이런 주장에서 비롯된다.

역사적으로 양심상 결정이 확고하게 법의 보호를 받는 것은 병역거부가 거의 유일하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역사가 깊고 죽음까지 불사하는 절박함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지난 8월30일 열린 공개변론에서 이창화 변호사는 “최초의 양심적 병역거부는 로마시대 때부터 시작됐고, 2차 세계대전 때 미국에서 1만2000명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여호와의 증인 신도들이 일제의 징병을 거부하자 33명이 수감되고 5명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기구들은 납세거부에 대해서는 이같은 양심의 절박성, 밀접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국내 문헌에 따르면 1990년 네덜란드 시민이 자신의 세금이 군대경비지출, 핵무기 조달과 보유에 관련이 있어 납세거부를 한 사건에서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자유권규약 제18조(양심 및 종교의 자유)의 보호범위 밖에 있다고 결정한 적이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없으면 국방력 상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하면 국방력이 상실돼 국가안전보장에 위기를 초래한다는 주장도 반대론자들 주장의 핵심이다. 이번 판결에서는 조희대 대법관 등 4명이 반대의견에서 “우리나라의 안보현실은 급박하다”면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는 매년 600명 안팎으로 전체 군인 수(약 60만명)와 비교해보면 극소수다. 국방부는 상비병력을 감축하겠다는 입장이고 매년 사회복무요원·산업기능요원·전문연구요원·공중보건의 등 입영하지 않는 보충역이 8만3000명에 이른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지속적으로 처벌해왔지만 거부자 수가 줄지 않는 추이를 볼 때 무작정 수감을 시키는 것보다 대체복무를 마련해 대안을 주는 게 국방력에 더 도움이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조 대법관 등 4명의 반대의견은 국가안보 태세를 굳건히 갖춰야 된다고는 했지만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상비병력에서 뺐을 때 국방력에 어떤 상실이 있는지는 입증하지 않았다.

이동원 대법관의 별개의견도 주목을 받는다. 이 대법관은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의 수, 그들에 대한 병력자원으로의 현실적 활용 가능성, 정보전·과학전의 양상을 띠는 현대전의 특성 등을 이유로 양심적 병역거부를 허용해야 한다는 다수의견에 동의했다. 다만 이 대법관은 “국가안전보장에 지장이 생기게 된다면 다시 그들을 현역병입영대상자 등으로 하는 병역처분을 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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