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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치기라도 불매운동은 계속 돼야한다”

입력 2018.11.17 15:01

‘소비지와 함께’ 대표 박명희 교수가 11월 12일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소비지와 함께’ 대표 박명희 교수가 11월 12일 <주간경향>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 우철훈 선임기자

대기업 총수 혹은 재벌 3세처럼 힘있는 이들의 ‘갑질’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는 불꽃처럼 솟아 들불처럼 번진다. 악질 기업 하나쯤은 쉽게 무너뜨릴 기세다. 하지만 이제껏 분노가 기업을 삼킨 적은 없었다. 갑들은 잠시 휘청였다가 금세 제자리를 찾는다. 갑에게 본때를 보여주겠다며 시작한 불매운동은 짧은 시간이 지나 동력을 잃는다. 반복된 패턴을 통해 ‘학습’을 한 갑들은 이제 대중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은 불매운동을 한 번쯤 맞아야 하는 ‘예방주사’로 여긴다. 불매운동은 그저 바위에 계란치기일까

“흐지부지할 거면 아예 불매운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박명희 ‘소비자와함께’ 공동대표의 말이다. 불매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오히려 갑질 기업의 내성을 키워주는 부작용을 부른다는 얘기다. 박 대표는 현재 대한민국 불매운동의 현주소를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단계”라고 평가했다. 대학과 소비자단체에서 소비자운동을 연구한 박 대표는 제11대 한국소비자원 원장(2007년 9월~2009년 7월)을 역임하기도 했다.

-많은 불매운동이 소리소문 없이 사라진다.

“사실이다. 금세 흐지부지된다. 불매운동을 하려면 이 악물고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이제 기업들은 할인행사 같은 약간의 인센티브만 주면 대중들이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소비자가 스스로 행사해야 할 권리를 포기했기 때문이다. BMW 사태도 그렇다. 문제 있는 자동차로 판정을 받아 한편에서 불매운동을 진행했는데, 할인행사를 하니 오히려 구매고객이 늘었다. 소비자로서 지녀야 할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인식이 여전히 부족한 게 현실이다.”

-실패로 끝난 불매운동은 의미가 없다고 보나.

“모든 불매운동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갑질을 포함해서 허위·과장광고처럼 소비자가 묵과할 수 없는 모든 행위에 대해 해당 기업을 응징할 수 있는 운동이다. 실제 불매운동이 일어나서 기업 매출이 타격을 입고 소비자를 속이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겠다고 인식하게 만든다면 나름의 결실을 얻은 거다. 나아가서 다른 기업들에 반면교사가 돼줄 수도 있다. 다만 지금까지 한국에서 이뤄진 불매운동을 보면 소비자 스스로 윤리적인 기준을 세우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공공의 이익을 찾는 행동체계가 필요한데,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선 찾아보기 어렵다. 끈질긴 불매운동을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이유다.”

-불매운동이 지속력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나마 성공한 사례를 보면 실마리가 보인다. 먼저 옥시 케이스를 보자.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터졌을 때 소비자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인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피해자에 대한 측은지심,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심리가 번졌기 때문이다. 이런 부분이 대중들의 감성을 건드렸고 마음을 움직였다. 과거처럼 특정 소비자단체 몇몇이 조직적으로 끌고 가는 불매운동 패턴으로는 끝까지 가기 어렵다. 단체가 성명서 쓰고 기자회견 하면 당장은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결국 흐지부지된다. 단체는 불매운동의 기본 기획을 하고 SNS를 이용해 사안을 알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 대중들의 호응을 얻는 게 1순위다.”

-국내 불매운동을 걸음마 단계라고 평가했는데.

“불매운동을 포함해서 모든 소비자운동은 민주화운동과 발맞춰 가야 바람직하다. 하지만 우리 소비자운동은 그러질 못했다. 소비자의 권익과 관련한 이슈가 시작된 게 전두환 정권 때다. 민주화 대신 대중들에게 뭘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나온 게 소비자보호법이다. 전두환 정부에서 소비자단체를 인위적으로 만들고 정부 입맛에 맞는 소비자법을 만들었다. 그런 배경에서 시작해 30년 지나다보니 소비자운동은 독립성을 갖추지 못하고 기형적으로 성장했다. 소비자들이 주체적으로 조직을 만들고 커야 하는데, 정부가 필요한 때 도와달라고 하면 거기에 맞춰 움직이는 버릇이 들다보니 불매운동은커녕 국산품 애용운동이나 경제살리기 운동이 성행했다. 소비자운동이 시민의 입장에서 당당히 주권을 요구하고 불매운동을 통해 응징을 해서 시장의 파수꾼 역할을 해야 하는데, 시작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기껏해야 소비자 상담이나 하다보니 시민들이 도움을 줘야 하는 보호의 대상으로 굳어졌다.”

-갑질 이슈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어디에 있나.

“기업문화라는 것은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다. 총수나 CEO가 완전히 바뀌는 게 아니면 제자리로 돌아가기 쉽다. 구속 여부가 걸린 재판을 앞두고는 바뀌는 척할테지만 그때 보이는 모습은 다 거짓이라고 봐야 한다. 이들이 바뀌지 않는 건 우리에게 갑질을 막을 만한 강력한 법이 없기 때문이다. 불매운동과 별개로 갑질이 반복되지 않도록 할 만한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 법체계는 지나치게 기업 입장에 서 있다. 집단소송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면 전경련을 비롯한 재계에서 어떻게든 무마시킨다. 엄청난 로비를 하기 때문에 정치권에서도 제대로 된 법을 못 만든다. 현행 법체계에 소비자는 언제나 을이기 때문에 갑질 기업을 이길 수 없다. 이제껏 법도 갑에 붙었는데 그때마다 내세운 게 경제가 무너지면 안 된다였다. 불법이든 소비자의 인권이든 뭐든 경제논리에 다 막혔다. 내가 한국소비자원 원장으로 있을 때였는데, 어느 날 기업에서 찾아와 제품 관련해 문제를 제기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더라. 수출길 막힌다는 이유였다. 정부 기관에 찾아와 그렇게 부탁할 정도였는데 시민사회에는 어떻게 했겠나. 지금은 예전만큼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인권이나 소비자 주권보다 경제 얘기를 한다.”

-생각하는 소비자운동 방향이 있는지.

“이제는 투명한 사회가 안 될래야 안 될 수 없는 사회가 오고 있다. 과거에는 기업 비밀이라고 해서 어디에 숨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투명사회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있다. 공정사회·투명한 사회를 원하는 소비자들도 늘어날 것이다. 신뢰를 깨는 시장의 관행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은 누군가 해야 한다. 주도적으로 이슈를 이끄는 역할이 아니다. 갑질이든 불매운동이든 이슈가 사회에서 잊혀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대중과 연결해주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비윤리적 기업의 불매운동과 함께 윤리적 기업의 구매운동 같은 새로운 방향의 운동도 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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