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선물위원회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감리에 대한 결론을 내렸지만 법적다툼과 한국거래소의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등 후속 절차들이 많이 남아있어 사태가 완전히 끝났다고 표현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의 주요 쟁점을 시험문제처럼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게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어떤 존재인가?” ① 종속기업 ② 관계기업
아주 간단해 보인다. 두 개 중에 하나를 고르면 된다. 그런데 이 문제의 정답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답을 맞히려면 삼성바이오에피스의 주주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 바이오젠과의 주주 간 약정사항을 심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 그리고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관련 회계기준서를 보며 합리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 금융감독원과 금융위원회는 이 정답을 찾느라 약 1년7개월의 시간을 썼다. 오랫동안 증거를 수집해서 회계기준에 따라 처리되었는지 검토를 거쳤고, 회계 전문가들이 모여 수차례 회의를 했다.
여기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다. 과연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회사와 회계감사를 하는 회계법인도 정부기관처럼 많은 시간을 투입하고 각계 전문가들이 오랫동안 검토했을까? 15년 넘게 회계감사를 해온 필자 경험상 현실적으로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한다.
정해진 일정 안에 빨리 결산을 해서 실적 발표를 해야 하는 회사나 한정된 시간과 인력을 투입해야 하는 회계법인 모두 하나의 이슈에 대해 정부기관처럼 움직이지는 못한다. 3월 말까지 사업보고서를 발행하고 회계감사를 완결해야 하는 회사와 회계법인은 늘 시간에 쫓긴다.
회사는 거래나 사건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후 경제 실질에 따라 재무제표를 적절히 작성해야 하고 회계법인의 감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회사나 회계법인 모두 충분한 시간과 전문인력이 필요한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있는 대기업일수록 실적 발표를 빨리한다. 일정을 맞추기 위해 결산기에는 매일 밤을 지새운다.
회계직종은 대표적인 3D업종으로 잘 알려져 있다. 회계법인도 마찬가지다. 외부감사를 받는 기업들의 90% 이상이 12월 결산기에 몰려 있기 때문에 감사업무를 마무리해야 하는 3월까지는 밤샘근무가 불가피하다. 육체적으로도 힘이 들지만 복잡한 이슈를 짧은 기간 동안 파악하고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니 스트레스는 극에 달한다. 회사나 회계법인 모두 분식회계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기도 어렵다. 결국 연말결산 시즌이 끝나면 많은 회계사들이 회계법인을 줄퇴사한다. 회계법인에 회계사가 부족한 게 아니라 척박한 환경이 그들을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의 결산일도 분산돼야 하고 빨리 실적을 발표하려는 관행도 없애야 한다. 재무제표는 속도도 중요하지만 정확성을 더 우선순위로 둬야 한다. 복잡한 기업환경에서 신속·정확을 모두 달성하는 게 쉽지 않다. 회사는 분식회계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기업가치 극대화를 위해 회계팀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미국처럼 충분한 시간 동안 회계감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감사보수도 현실화되어야 한다. 정부는 감사인의 지위와 독립성을 더욱 강화해 자본주의 파수꾼 역할을 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대기업의 분식회계가 주는 고통과 사회적 파장을 우리는 계속 목도해왔다. 언제까지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당하기만 할 것인가? 강도 높은 회계개혁만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