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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혐 논란’ 래퍼 산이 신곡에 반박곡 낸 제리케이와 슬릭 “산이의 해명…1mm는 나아간 것”

입력 2018.11.20 20:58

수정 2018.11.20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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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산이의 신곡 ‘페미니스트’에 대한 디스곡을 발표한 래퍼 슬릭(왼쪽)과 제리케이가 20일 경향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들이 속한 힙합 레이블 데이즈얼라이브는 힙합씬에서 유일하게 소수자 의제를 다루고,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김영민 기자

래퍼 산이의 신곡 ‘페미니스트’에 대한 디스곡을 발표한 래퍼 슬릭(왼쪽)과 제리케이가 20일 경향신문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들이 속한 힙합 레이블 데이즈얼라이브는 힙합씬에서 유일하게 소수자 의제를 다루고,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김영민 기자

지난 16일 래퍼 산이가 신곡 ‘페미니스트(FEMINIST)’를 발표했다. 이 곡에서 산이는 본인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며 “그렇게 권리를 원하면 여자는 군대 왜 안 가냐, 데이트 할 땐 돈은 왜 내가 내, 지하철 주차장 자리 다 내줬는데” 등의 가사를 담았다. 곡이 불러온 파장은 산이가 상상한 이상이었다. 반응은 크게 두 가지였다. ‘속이 시원하다’ 등 지지와 ‘페미니즘을 비하했다’는 비판의 목소리였다. 비판의 목소리는 힙합계 내부에서도 터져나왔다. 같은날 힙합 레이블(소속사) 데이즈얼라이브의 래퍼 제리케이(본명 김진일·34)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디스’ 곡으로 ‘노 유 아 낫(NO YOU ARE NOT)’을 공개했고, 다음 날인 17일 밤 제리케이와 같은 레이블 소속인 래퍼 슬릭(본명 김령화·27)도 산이를 비판하는‘이퀄리스트(EQUALIST)’라는 곡을 내놨다. ‘디스’는 ‘디스리스펙트’의 줄임말로 노래를 통해 상대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힙합 문화를 뜻한다.

한창 논란이 뜨겁던 지난 17일 데이즈얼라이브 측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제리케이는 인터뷰 요청에 응하며 “이런 문제일수록 여성에게 더 많은 발언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 래퍼인 슬릭과 함께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산이의 소속사 브랜뉴뮤직에도 인터뷰 요청을 했다. 하지만 답을 받을 수 없었다. 그 사이 산이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페미니스트’는 여성을 혐오하는 곡이 아니며 곡의 화자가 본인이 아니라는 해명(19일 새벽)을 냈다.

■‘약자 혐오적 정서’ 한국 힙합계 반대하며 목소리 꾸준히 높여

20일 오후 서울 중구 경향신문 본사에서 제리케이와 슬릭을 만났다. 우선 ‘디스’ 곡을 내게 된 이유를 물었다. 제리케이는 “(산이의) 가사를 보고 뭐라도 한마디하고 싶어 곡을 썼다. 가만히 있으면 편한데, 그게 잘 안 됐다”고 했다. 슬릭도 비슷한 대답을 했다. 슬릭은 “산이에게 들려주는 곡이라기 보단 그의 곡으로 답답함을 느낀 사람들의 속을 시원하게 하고 싶었다. ‘나라도 말을 해야지’하는 생각이 컸다”고 했다. 그러면서 “디스 곡의 가사는 새로운 내용이 아니다. 여태까지 여성들이 주장하고 공유해 온 얘기를 랩으로 옮긴 것에 불과하다”고 덧붙였다.

지난 16일 오후 래퍼 제리케이가  힙합 레이블 ‘데이즈 얼라이브’ 공식 유튜브 계정에 ‘노 유 아 낫(NO YOU ARE NOT)’ 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공개했다. 유튜브 캡처

지난 16일 오후 래퍼 제리케이가 힙합 레이블 ‘데이즈 얼라이브’ 공식 유튜브 계정에 ‘노 유 아 낫(NO YOU ARE NOT)’ 이라는 제목의 노래를 공개했다. 유튜브 캡처

슬릭은 2016년 랩 영상 콘텐츠 <마이크 스웨거>에서 힙합계의 혐오 가사 문제를 지적해 이름을 알렸다. ‘여긴 아직도 기집애 같다는 말을 욕으로 한다면서/아직도 게이 같다는 말을 욕으로 한다면서… 그게 힙합이라고 하면 나는 오늘부터 힙합 관둠’이란 가사는 그가 ‘페미니스트’ 래퍼로 불린 계기가 됐다.

슬릭은 스스로 “한국힙합에 속하지 않은 래퍼”라고 했다. 그는 “장르는 죄가 없다”면서도 “한국힙합과는 사별했다고 생각한다. 한국힙합의 주류 담론은 성공을 논하며 여성과 소수자를 비하한다. 그게 과시의 수단이 되고 성공의 증거처럼 여겨진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한국 힙합이 더 과격하거나 폭력적인 것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약자 혐오적 정서가 그 기반에 깔린 것은 우려할 지점이라 지적했다. 대중음악평론가 미묘는 “미국에선 힙합이 실제 게토 지역·거리에서 만들어졌다면, 한국힙합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게토로 삼고 있다는 게 중론”이라며 “많은 인터넷 커뮤니티들이 여성 혹은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깔고 있다. 한국힙합은 그 담론을 그대로 흡수한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치적 올바름·작품성 다르지만 생각해야 할 만한 것들은 해야”


슬릭과 제리케이. 경향신문 자료사진

슬릭과 제리케이. 경향신문 자료사진

데이즈얼라이브는 힙합씬에서 유일하게 소수자 의제를 다루고, 여성혐오에 반대하는 그룹으로 평가받는다. 이 때문에 ‘좌좀(좌파좀비)’, ‘메갈(리아) 집단’ 같은 원색적 비난도 따른다. 제리케이는 “정치적 올바름을 추구하는 것은 유교적 도덕관을 설파하는 소위 ‘꼰대’와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적 올바름의 덫에 빠져 작품성을 잃었다’고 말하는 건 21세기 선진국 반열에 오른 국가의 인권시민으로서 생각할 만한 것들을 ‘하기 싫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했다. 슬릭은 “소수자 혐오를 말하면 촌스럽다고 여기는 분위기는 잘못됐다”며 “힙합을 두고 솔직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장르라고들 한다. 하지만 이 솔직함이 문화시민으로서 가져야 할 가치조차 따르지 않는 걸 말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일부 래퍼들은 여성혐오적 가사에 대한 지적에 ‘검열’이라고 반발하며, 사회가 힙합에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주장한다. 제리케이는 “검열이라는 단어를 쉽게 쓰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그는 “혐오적 내용을 썼다고 잡혀가거나 가사를 삭제 당하는 것도 아니다. 요즘은 음원을 발매하지 않더라도 유튜브 같은 플랫폼을 이용하면 누구나 곡을 낼 수 있다. 래퍼에겐 오히려 음악을 통해 말할 자유는 커진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사에 대한) 비판을 받는 것은 검열이라기 보단, 오히려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제리케이와 슬릭을 향해 ‘기회주의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제리케이는 이에 대해 “이전부터 ‘페미니즘이란 잘못된 사상에 빠졌다’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우리가 논란에 편승했다면 지금까지 들어온 비난은 뭔가. 또 힙합을 좋아하는 대다수가 10~20대 남성이고, 이들이 주소비층이라는 점에서 ‘페미니즘을 돈벌이로 이용한다’는 지적은 맞지 않다”고 했다. 슬릭은 “페미니즘에 대해 랩을 하면 항상 랩 실력이나 포맷을 지적하며 본질에서 벗어난 비난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사의) 본질을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리케이의 곡 ‘노 유 아 낫’에는 자기 반성의 의미도 담겨있다. 제리케이는 6년 전 발표한 곡 ‘유 아 낫 레이디(YOU ARE NOT LADY)’에서 여성혐오적 가사를 써 비판을 받았다. 그는 “나는 과거에 이런 사람이었고, 이에 대해 반성한다. 또 앞으로 나은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과거의 곡을) 디스 곡에 차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내가 썼던 인권감수성이 부족한 곡들에 대한 비판은 계속 듣고, 수용하겠다”고 덧붙였다.

혐오와 힙합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일까. 또 분리될 여지는 있는 것일까. 슬릭은 “2016년엔 (혐오 문제를) 얘길하는 사람이 정말 나 혼자였다”며 “하지만 지금은 꼭 래퍼가 아니더라도 혐오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사람이 늘었다는 점에서 사회가 조금 변한 것 같다”고 했다. 제리케이는 “가야 할 길이 한참 남았지만, 반응은 있다”고 했다. 그는 “혐오적 표현에 대해 지적하는 목소리가 늘었고,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변화라고 생각한다. 특히 (산이가) 자신의 랩에 대해 해명을 했다는 자체가 1mm 정도는 나아갔다는 걸 보여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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