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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앤롤로 풀어낸 체코의 격변과 자유의 의미

  • 문학수 기자

연극 ‘록앤롤’

명동예술극장에서 오는 25일까지 공연하는 톰 스토파드의 <록앤롤>은 자유와 저항의 상징인 록음악을 통해 체코 민주화의 역사를 그려낸다. 사진은 연극의 마지막 장면. 국립극단 제공

명동예술극장에서 오는 25일까지 공연하는 톰 스토파드의 <록앤롤>은 자유와 저항의 상징인 록음악을 통해 체코 민주화의 역사를 그려낸다. 사진은 연극의 마지막 장면. 국립극단 제공

68혁명서 벨벳혁명까지 20여년
록음악에 겹쳐진 체코 역사적 사건 속
이념 논쟁과 참여·방관 갈등 등 담아

한국서는 초연…한걸음 더 대중극화
행간의 언어 충분히 구현 못한 건 ‘티’

연극은 영국의 케임브리지에서 시작한다. 1968년이다. 관객은 상상해야 한다. 이 연극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해 1968년을 떠올릴 필요가 있다. 서구에서는 68혁명의 열기가 한창 뜨겁다. 케임브리지대학의 정치철학 교수인 ‘막스’는 투철한 공산주의자다. 그의 딸 ‘에스메’는 이제 겨우 16세인데 히피 물이 잔뜩 들었다. 길고 아름다운 금발을 휘날리면서, 속이 훤히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입고 펄쩍펄쩍 뛰어다닌다. 아버지 막스가 힐난한다. “마리화나 좀 작작 피워라. 팝송 소리도 좀 줄이고.” 딸은 아버지에게 쏘아붙인다. “록앤롤을 팝송이라니!”

에스메가 사랑하는 록앤롤은 당시의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신앙이다. 그래서 관객은 첫 장면에 등장하는 ‘피리 부는 사나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에스메의 집 담벼락 위에서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렀던 그의 정체는 연극이 조금 진행된 뒤에 드러난다. 핑크 플로이드의 초창기 멤버였던 시드 배럿이다. 사이키델릭 록의 선구자였던 그는 케임브리지 태생이다. 소문난 ‘약쟁이’였고 자신이 주도했던 핑크 플로이드에서조차 하차해야 했던 인물이다. 요즘 말로 치자면 에스메는 그의 ‘광팬’이다. 아버지의 제자인 ‘얀’에게 “그는 판(Pan)이야! 나한테 노래를 불러줬어”라며 환호한다. 판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목신(牧神)이다.

얀은 스승인 막스에게 작별을 고하고 자신의 조국인 체코로 떠난다. 500대가 넘는 소련 탱크가 프라하에 진을 치고 있을 때다. 당시 체코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상징하는 록밴드 ‘플라스틱 피플 오브 더 유니버스’의 음악이 흘러나오면서 무대는 프라하로 이동한다. 작고 음침한 방이다. 그 폐쇄된 공간에서 얀이 심문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정치적 상황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심문이 끝나갈 무렵 조심스럽게 말한다. “죄송하지만 (압수해간) 제 레코드판은 언제 돌려받을 수 있나요?” 얀에게 ‘프라하의 봄’은 오지 않는다. 단지 록앤롤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길고 혹독한 겨울을 보낸다. 1989년의 ‘벨벳 혁명’까지, 자그마치 20년 넘는 세월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영국의 극작가 톰 스토파드. (C) Matt Humphrey

영국의 극작가 톰 스토파드. (C) Matt Humphrey

국립극단이 영국의 연극거장 톰 스토파드(81)의 <록앤롤>(번역 손원정)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렸다. 극중 인물 얀이 그렇듯이, 스토파드는 체코슬로바키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이다. 아마도 나치를 피해서 체코를 떠난 것으로 보이는데, 부모와 함께 싱가포르, 인도 등지에서 살다가 1946년 영국으로 이주했다. 기자 생활을 하다가 1964년 <로젠크렌츠와 길덴스텐은 죽었다>로 혜성처럼 등장했던 그는 지금까지도 영국의 ‘지적인 연극’을 대표하는 극작가다. 특히 초창기 작품들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하지만 1980년대로 들어서면서 ‘드라마로서의 연극’으로 좀 더 대중에게 다가선다. 그런 맥락에서, 2006년 런던 로열코트시어터에서 초연해 그의 후기작으로 기록될 <록앤롤>은 비교적 드라마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그렇더라도 여전히 스토파드의 연극은 만만치 않다. 일단 작품의 스케일이 막대하다. 자유주의 물결이 번져나가던 1968년에서부터 이른바 ‘벨벳 혁명’으로 불리는 체코 민주화 직후까지의 역사적 사건들을 훑어나가면서, 연극의 중심 코드라고 할 수 있는 ‘록앤롤’을 겹쳐놓고 있다. 그리스의 서정시인 사포(Sappho)가 등장하는가 하면, 공산주의와 자유주의 사이의 논쟁이 벌어지고, ‘프라하의 봄’을 바라보는 지식인들의 시각, 검열과 표현의 자유, 정치적 행동과 시니컬한 방관 사이의 갈등도 드러난다. 이런 까닭에 애초의 공연시간은 4시간이 훌쩍 넘는다. 한국에서 처음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연출가 김재엽은 3시간 조금 넘는 분량으로 압축했다.

한국에 초연된 <록앤롤>은 원작에 비해 한걸음 더 ‘대중극’의 전략을 택한 것처럼 보인다. 지적인 담론과 토론, 사상적 방황과 고민 등을 일정 부분 거둬내고 막스 가족의 이야기, 얀과 에스메의 사랑 등을 돋을새김했다. 어둡고 우울한 서사임에도 전체적 색조는 발랄하고 환하다. 게다가 때때로 극장을 휘몰아치는 록음악의 사운드는 관객의 몰입을 배가한다. 연극은 회전 구조의 무대를 활용, 케임브리지와 프라하를 순식간에 오가면서 빠르고 리드미컬하게 흘러간다. 3시간이 넘지만 지루함을 느낄 틈새는 거의 없다. 명동예술극장에서 이렇듯 출렁이는 에너지를 만나는 것은 참으로 오랜만이다. 하지만 인생 후반부에 이르러 자신의 뿌리를 응시하는 거장의 작품을 무대에 올리면서, 행간의 언어를 충분히 구현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강신일, 이종무, 장지아, 정새별, 이다혜, 김한, 양서빈, 정원조, 최지훈 강해진, 김세환 출연. 공연은 오는 25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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