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일 취업 준비생들이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문서 사진.
“내년 상반기 코레일 사무 안 뽑네요. 이건…”
지난 19일 공기업 취업 준비생들이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한 장의 문서 사진이 올라왔습니다. ‘2019년 상반기 신규채용 기본계획’이라는 제목으로 작성된 이 문서를 보면, 코레일(한국철도공사)의 상반기 채용 인원은 총 1000명으로 그중 사무영업 일반공채 채용 인원은 단 1명도 없었습니다.
이 게시물에는 “KTX 승무원 복직 문제로 TO가 증발했을 것”이라는 댓글이 달렸고, 이후 온라인 커뮤니티 중심으로 “KTX 해고 승무원들을 사무영업으로 특별채용한 결과 애꿎은 취준생들만 피를 보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습니다.
앞서 지난 7월 코레일과 철도노조는 2006년 정리해고된 뒤 근로자지위확인소송을 제기했던 KTX 승무원 180여명을 대상으로 ‘특별채용’ 방식의 복직을 실시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코레일은 지난달 33명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경력직 특별채용을 진행합니다. 해고 승무원들은 승무 업무를 하기를 희망했지만 우선은 사무영업(역무)직으로 신입직원과 같은 6급으로 일하는 데 합의했지요.
그런데 이러한 조치로 인해 2019년 상반기 사무영업 직군의 신규 채용 인원 자체가 없어진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인 것입니다.
논란은 KTX 승무원들의 복직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로 확대됐습니다. 지난 19일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KTX 승무원 복직에 대한 팩트’라면서 “KTX 승무원들은 원래 코레일 자회사 홍익회에서 채용한 것이고, 채용 당시 홍익회 대표가 1년 뒤 구두로 정규직 채용을 약속했을 뿐이다. 그런데 승무원들은 코레일 자회사가 아닌 본사 고용을 요구했고, 이 때문에 해고당했지만 이후 사법농단 의혹에 편승해 본사 정규직 특채로 경력 입사한 것”이라는 내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이에 누리꾼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취업하려는 취준생들만 바보 만든다” “코레일 저 직군에 기본 2만명이 지원하는데, 취준생들만 불쌍하다”면서 이 글에 동조 의견을 밝히고 있는데요. 취업준비생 대 KTX 해고 승무원, 이른바 ‘을 대 을’ 갈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갈등은 불필요한 소모전으로 보입니다. 해당 의혹과 문제제기를 확인한 결과, 대부분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 코레일 “상반기 사무영업 일반공채 채용 계획 있다. 알려진 내용은 헛소문”
![[팩트체크]“내년 초 코레일 사무영업 채용 없다”···KTX 해고자 때문에 취준생만 피 본다고?](https://img.khan.co.kr/news/2018/12/21/l_2018122001002460100191645.jpg)
일단 인터넷상에 유포된 코레일 상반기 신규채용 기본 계획은 사실과 다릅니다.
코레일 측은 알려진 채용 계획에 대해 ‘헛소문’이라고 일축했습니다. 20일 코레일 관계자는 경향신문에 “현재 퇴직자 규모를 산정해 상반기 공채 인원을 정하고 있는 중이며 늦어도 다음주 초에는 관련 보도자료가 배포될 예정”이라면서 “지금까지 사무영업 일반공채 채용을 하지 않은 적은 없었고, 이번에도 채용 계획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KTX 승무원들의 특별채용이 사무영업 일반공채 신규 채용 인원에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코레일 관계자는 “처음 특별채용을 합의할 때부터 KTX 승무원은 별도 정원으로 뽑기로 했다”면서 “특별채용을 내년까지 몇 차례에 걸쳐 나눠 진행한 것은, 신입 채용 인원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한 조율 방안이었다”고 말합니다.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의 주장도 이와 같습니다. 김 지부장은 “애초에 승무원들의 채용이 내년 하반기까지 미뤄질 수도 있는 안에 합의한 것은, 기존의 신규 채용 인원과 별개로 복직이 이뤄져야 한다는 데 동의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김승하 지부장 “교육한 사람, 업무를 함께한 사람, 지시·감독·징계한 사람 모두 철도청 소속”

KTX 해고 승무원들을 코레일이 특별채용한다는 노사 합의가 체결된 다음날인 지난 7월22일,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39)이 서울 문래동의 한 카페 앞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하며 12년 동안의 싸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지부장은 “우리가 싸우는 게 옳다고 생각했기에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 김창길 기자
“KTX 승무원들은 코레일 자회사 정규직 채용을 약속받은 것뿐이며 사법농단 의혹에 편승해 코레일 정규직 특채로 입사했다”는 의혹은 어떨까요?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KTX 승무원들이 2004년 입사 당시 코레일의 전신 철도청의 자회사 홍익회 소속이었던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홍익회 정규직 채용을 약속받은 것은 아닙니다. KTX 승무원들은 입사부터 교육, 업무에서 이미 철도청 소속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에 철도청 정규직이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2004년 철도청은 ‘지상의 스튜어디스’를 뽑는다고 홍보하며 KTX 승무원 공개채용을 진행했고, 채용 면접과 입사 교육 모두 철도청에서 이뤄졌습니다. 비슷한 시기 대한항공·아시아나 등 대형 항공사 공개채용도 실시됐지만, 수많은 승무원 지망생들이 민간기업인 항공사 대신 KTX 승무원을 선택했습니다. ‘사기업 직원보다는 철도청 소속 공무원이 낫겠다’는 마음에서였죠.
그런데 철도청은 홍익회 소속으로 입사한 승무원들에게 ‘지금은 공무원 채용 인원이 없다’면서 2005년 철도청이 공기업인 코레일로 바뀌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계약기간 2년이 끝난 뒤, 코레일의 입장은 바뀌었습니다. 코레일은 승무원들에게 ‘또다른 자회사 KTX관광레저로 소속을 옮기면 나중에 자회사 정규직으로 바꿔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KTX 승무원들 실제 업무는 자회사가 아닌 철도청에 소속돼 있었습니다. 홍익회는 거의 서류로만 존재하는 ‘중간 착취 회사’에 불과했죠. 김 지부장은 “우리를 교육한 사람, 업무를 함께한 사람, 지시·감독은 물론 징계한 사람도 모두 철도청 소속이었다”고 말합니다. 객실에서 승무원과 한 팀을 이루어 승객 안전과 서비스를 책임지던 열차팀장도 철도청 소속이었습니다. 열차팀장과 승무원은 열차를 탑승하기 전 점검회의를 열고, 객실에서 상황이 발생하면 함께 대응했었지만 소속이 달랐습니다.

복직교섭을 촉구하는 KTX 해고승무원들과 종교인들 지난해 9월 21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를 출발해 서울역을 향해 오체투지 행진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결국 자회사로의 이적을 거부해 해고된 승무원들은 2008년 10월1일 코레일을 상대로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냈습니다. 1심과 2심 법원은 승무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코레일을 승무원들의 실질적 사용자로 인정하고 해고를 무효로 본 것입니다. 승무원들이 자회사가 아닌 코레일 소속 직원이나 다름 없었다는 판결입니다. 그러나 2015년 대법원이 정반대의 결론을 내면서 이들의 복직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1심 판결 이후 회사에서 받은 밀린 월급 수천만원도 토해내야 했습니다. 충격을 받은 한 승무원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대법원 판결 앞에서도 싸움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3년 간의 긴 싸움 동안 단식, 삭발, 고공농성 등 가능한 모든 투쟁 방법이 동원됐습니다. 그럼에도 복직의 꿈은 참 요원해보였죠. 그러다 지난 5월 이들의 해고를 정당화한 대법원 판결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의 ‘재판거래’ 결과라는 정황이 드러난 것입니다. 그렇게 지난 7월, 13년의 투쟁 끝에 드디어 KTX 승무원을 코레일 정규직으로 특별 채용하는 복직안이 합의됐습니다.
관련기사:“옳다고 생각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 해고된 KTX 승무원 노조 김승하 지부장이 말하는 ‘12년의 싸움’
■KTX 승무원들이 진짜 원하는 건 “다시 열차로 돌아가는 것”

지난 9일 오전 강원 강릉시 운산동의 강릉선 KTX 열차 사고 현장에서 코레일 관계자들이 기중기를 이용해 선로에 누운 객차를 옮기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지난 11월 코레일 사무영업직으로 특별채용된 33명의 KTX 승무원들은 현재 역무직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애초 이들은 해고 전에 맡았던 KTX 승무 업무로 돌아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코레일은 KTX 승무업무를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에 위탁하고 있어 이는 불가능했죠. 지난 7월 코레일은 “지금 자회사가 수행하는 KTX 승무업무를 앞으로 직접 수행하게 된다면 이번에 채용한 이들을 승무원으로 전환 배치하겠다”고 밝히고, 승무원들을 우선 사무영업(역무) 6급으로 채용하는 데 철도노조와 합의합니다. 승무원들이 사무영업직을 택한 이유는, 이 직군이 역무직과 승무직으로 구성돼 있어 이후 승무 업무 복귀가 원활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그렇게나 승무 업무를 다시 하고 싶다면,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로 복직하면 되지 않나?’ 그러나 KTX 승무원들은 자회사가 아닌 코레일 소속의 승무원이 되길 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승객의 안전을 책임지기 위해서는 승무원의 직접고용이 반드시 선행돼야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 자회사 소속의 KTX 승무원들은 안전 업무를 담당하지 않습니다. KTX 열차에는 보통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 1명과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승무원 2명이 타는데, 이 중 열차팀장만 안전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본사와 자회사 직원의 업무가 겹치면 위장도급이 명백해지기에 2006년 코레일이 억지로 업무 규정을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현재 열차팀장은 안전, 승무원은 고객서비스만 담당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억지 규정은 크고 작은 KTX 안전 사고에서 승객을 위험에 몰아넣는 ‘빈틈’이 되고 있습니다. 지난달 20일 충북 오송역에서 단전사고가 발생한 KTX에 탑승했던 승무원은 “안전 업무에서 제외된 업종이라서 안전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경향신문과 인터뷰한 승무원은 “안전 부분은 모두 (코레일 소속인) 열차팀장 권한으로, 행동 하나하나도 지시를 받는다”며 “평상시 안전교육을 받지 못하니 비상상황에는 승무원들이 더 당황하게 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관련기사:[단독]오송역 사고 KTX, 안전교육 받은 승무원 없었다···“비상사다리 설치 교육 뿐”
지난 8일 강릉선 KTX 탈선 사고에서도 승무원들이 높은 구두를 신고 치마를 입은 불편한 복장에서도 힘껏 승객들의 탈출을 도왔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다행히 이날 KTX 승무원은 침착하게 승객을 대피시키고 안전한 곳으로 안내했지만, 이 승무원 역시 제대로 된 안전 교육을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문제가 계속 반복되고 있지만, 여전히 코레일은 KTX 승무원들을 직접고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난 9월 코레일 철도노사전문가협의회(노사전협의회) 전문가들이 코레일관광개발 소속 승무원 553명에 대해 “관련 법 및 규정 제·개정 등을 통해 (코레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을 권고한다”고 결정했음에도 말입니다. 당시 철도노조는 지난 6월 노사 양측이 서명한 노사합의서에 따라 자회사 위탁 업무의 직접고용 여부는 전문가 조정안을 따르기로 했기 때문에, 이 조정안이 노사전협의회의 공식 결정이나 다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코레일은 묵묵무답입니다. 20일 코레일 관계자는 “철도안전법 등 관련 법 개정이 이뤄진 후 따르는 것이 공기업의 룰”이라며 승무원의 직접고용이 미뤄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KTX승무원
2006년 2월 마지막으로 기차를 탔던 이들은 다시 승무원으로 기차에 오를 수 있을까요? 아마 코레일이 KTX 승무원의 직접고용을 결정하는 그날이 오면, 가능하겠지요.
김승하 지부장은 지난 7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대로 교육받고 기차에 한번 타보고 싶어요. 기차에 취객도 많고 흉기로 옆 승객을 협박하는 것 같은 사건도 가끔 있거든요. 경호원 수준으로 철저한 안전교육과 훈련을 받고 다시 승무원으로 일하고 싶어요.” 그들은 취준생의 일자리를 빼앗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객실의 안전을 책임지는 KTX 승무원’으로 다시 살고 싶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