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 줄었다고? 2030 혼인가구는 늘었다

김태훈 기자
서울 중구 제일병원 신생아실 / 우철훈 선임기자

서울 중구 제일병원 신생아실 / 우철훈 선임기자

서울 강북구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이모씨(58)의 매장은 지난 크리스마스에도 썰렁했다. “크리스마스가 대목이었던 건 한참 전이지. 학기 중에 준비물 사러 오는 애들도 줄어든 지가 오래됐는데….” 크리스마스 선물로 장난감을 사러 오는 발길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지만 대개 손주의 선물을 고르러 오는 나이 든 조부모 몇몇뿐이었다고 이씨는 말했다. 물건을 들여놔도 팔리지는 않고 포장의 빛만 바랜 채 먼지를 뒤집어쓰다 보니 새로 주문하는 일도 뜸해졌다. 아직까지는 인근 중학교 학생들이 사러 오는 문구 매출로 버티고 있지만 그마저도 학생 수가 점점 줄고 있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고민이다.

지난 2018년의 국내 합계출산율은 집계 이후 최초로 1.0명 아래로 떨어질 것이 거의 확실시됐다. 싱가포르나 마카오 등 도시국가에서 나온 기록을 제외하면 전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치다. 통계청의 ‘2018년 9월 인구동향’을 보면 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녀의 수인 합계출산율은 2018년 3분기 0.95명이었다. 전년 동기보다 0.1명 낮아진 수치다. 출생아 수 역시 집계 이래 가장 적은 8만4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9200명(10.3%) 줄었다. 이민 같은 유입인구 없이 현재의 인구를 그대로 유지하는 데는 합계출산율이 2.1명 수준이어야 하지만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이 줄어 인구는 물론 사회 전반에 활력이 줄어드는 저출산 현상은 2019년 한국 사회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다. 저출산과 쌍으로 얽히는 고령화 문제 때문에 산업과 소비부문 모두 새로운 활력을 찾기 어려운 점도 문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출산’이라는 결과의 주요 원인이 되는 청년세대의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 현상이 심각하다는 것을 방증하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층의 일자리와 주거 문제는 이들 세대를 넘어 전 세대에 걸쳐 삶의 질을 낮추는 부작용을 부른다.

저출산이 사회적 활력의 저하로 직결되는 상황에서 장기화되고 있는 이 난국을 돌파할 묘안은 없을까. 그런데 출산율 통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소 뜻밖의 현상이 발견된다. 20·30대 청년층 혼인가구에서만 놓고 보면 이미 출산율은 저점을 찍고 반등하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의 황서연 연구원이 최근 쓴 ‘2015년 청년 혼인가구 출산율은 1985년보다 높다’ 보고서를 보면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와 인구동향조사 통계를 분석한 결과 1985년 20·30대 혼인가구의 출산율은 12.95%인 데 비해 2015년 14.65%로 오히려 높아졌다. 2005년 9.93%로 저점을 찍은 이후로 청년층 혼인가구에서는 아이를 점차 더 낳기 시작하는 추세가 확인된 것이다.

가장 자녀를 많이 낳는 연령대인 20대와 30대에서 혼인가구의 한 해 출산율이 높아지고 있음에도 전체적인 합계출산율은 반대로 떨어지기만 하는 상반된 모습은 얼핏 봐선 이해하기 힘들다. 이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는 배경에는 ‘만혼’과 ‘비혼’이 자리잡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을 벗어나 법적 부부가 아닌 커플이 출산하는 경우가 적다 보니 결혼이 늦춰질수록 초산연령도 높아진다. 한국의 초산연령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14년 국제비교 자료 기준 31.0세로 회원국 중 가장 높다. 결혼하는 연령대가 점차 높아지면서 아이를 많이 낳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가구마다 자녀 수는 보통 1명, 많아야 2명을 넘지 않게 된다. 때문에 한 명의 여성이 일생 동안 낳는 자녀 수를 의미하는 합계출산율은 1.0명 이하로 떨어지지만, 반대로 일단 결혼만 하면 1명 정도는 낳기 때문에 해당 연도의 혼인가구 대비 출생 자녀 수로 계산한 출산율은 과거보다 높아지는 셈이다.

문제는 늦게라도 결혼해 아이를 낳는 만혼화 외에 아예 결혼마저도 양극화되어 결혼을 포기해 버리는 비혼 현상 때문에 더욱 심각해진다. 청년층 혼인가구 내 출산율이 반등했던 2005~2015년에 이들 연령대의 비혼율은 52.6%에서 63.4%로 높아졌다. 비혼 비율의 증가 자체는 결혼과 가족에 대한 가치관이나 문화의 변화로 자발적인 선택이 늘어난 점이 일부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황 연구원은 이에 대해 “그럴 경우 청년 혼인가구의 출산율이 상승하고 있는 점을 설명하기 어렵다”며 “청년들이 출산·육아를 감당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야 혼인하는 경향으로 변화했기 때문에 ‘출산·육아를 선택하는 혼인가구’와 ‘출산·육아를 선택하지 못하는 비혼 청년’으로 급속도로 분화되고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분석했다.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택 같은 청년층의 물질적 조건의 유무가 결혼을 하느냐 못하느냐를 가르는 양극화를 불렀다는 것이다.

아르바이트생, 공무원 시험 준비생 등이 주거, 결혼 등을 포기하는 현상을 나타낸 일러스트 / 김상민

아르바이트생, 공무원 시험 준비생 등이 주거, 결혼 등을 포기하는 현상을 나타낸 일러스트 / 김상민

결국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늘어 사회의 활력 증대로 이어지게 하려면 결혼을 ‘못해서’ 포기하는 청년층의 삶의 질을 우선 개선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2005년 불어닥친 ‘저출산 쇼크’ 이후 2006년부터 정권이 세 번 바뀌는 동안 124조원이 넘는 복지·육아 지원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절반의 성공에 그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단 결혼한 청년층 가구에서는 자녀 출산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정책이 작동했지만 반대로 자녀 수를 늘리거나 아예 결혼을 원해도 하지 못한 청년들에게도 지원이 돌아가게 하는 데에는 실패한 것이다.

정부도 저출산 정책의 기본적 패러다임에 변화를 시도하고는 있다. 출산율을 올리기에 급급하며 혼인가구 위주로 지원을 늘리는 대신 비혼 청년세대를 비롯한 모든 세대의 삶의 질을 함께 높이는 것이 사회적 활력을 증강시키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2018년 12월 발표한 ‘저출산·고령사회 정책 로드맵’도 저출산·고령사회 관련 국민 인식조사 결과 기존의 출산율 목표 달성에 치중하는 ‘출산장려’ 정책에서 국민의 ‘삶의 질 제고’ 정책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하는 데 응답자의 93.0%가 찬성의 뜻을 밝힌 점에 주목했다. 응답자들이 가장 우선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일·생활 균형’(23.9%)과 ‘주거여건 개선’(20.1%), ‘사회적 돌봄체계 확립’(14.9%) 등을 꼽은 점을 볼 때 국민들의 인식도 우선 전반적인 삶의 질을 향상하면 출산율 저하 문제는 결과적으로 해소될 것이라는 쪽으로 바뀐 셈이다.

한편 같은 조사에서 ‘결혼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59.0%)은 ‘동의한다’는 응답(41.0%)보다 훨씬 더 많았지만, ‘부모가 되는 것은 인생에서 가치 있는 일이다’라는 질문에는 ‘동의한다’는 답이 76.6%로 더 압도적이었다. 때문에 결혼은 하지 않더라도 자녀를 낳아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경향을 반영해 법적인 결혼 없이도 자유롭게 출산이 가능한 문화적인 풍토가 자리잡게 만들면 장기적으로 저출산에 대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와 스웨덴 등 만혼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반대로 출산율은 회복되고 있는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시행해오고 있는 대표적인 정책이 동거 커플을 위한 육아지원체계 마련이다. 차우규 교원대 교수(한국인구교육학회 회장)는 “프랑스 같은 나라에선 미혼모나 한부모 가정, 입양가정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인정하고 모든 지원을 평등하게 하는 출산장려정책을 시행해 출산율이 급상승했다”며 “저출산을 이유로 여성에게 결혼을 서두르라는 사회적 압력을 가하지 않고,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 출산과 결혼을 선택하도록 해야 근본적인 인식이 바뀔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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