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제징용 손배 사건
“배상 땐 국제법 문제 소지”
발언 들은 당시 주심 대법관
결과 뒤집을 논리 개발 지시
검, 핵심 혐의 추궁 전망
검찰은 사법농단 의혹의 정점인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사진)이 직접 재판에 개입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주력해왔다. 지난달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 관련 증거 확보에 더 속도를 냈다. 당시 법원이 두 전직 대법관에 대해서는 ‘범행 관여 정도와 공모 관계에 의문이 있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기 때문이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재판 개입에 적극적으로 관여한 정황을 다수 포착했다. 검찰 조사에서도 핵심 혐의로 추궁할 예정이다.
양 전 대법원장은 11일 전직 대법원장으로서는 처음으로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다.
검찰에 따르면 양승태 대법원은 2012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제 전범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취지로 판결을 해놓고, 이듬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고 청와대가 이 판결에 문제를 제기하자 스스로 판결을 뒤집으려 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이를 위해 단순히 지시와 보고만 한 것이 아니라 직접 재판 개입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최근 양 전 대법원장이 이 사건 주심을 맡았던 김용덕 전 대법관에게 “배상 판결이 확정되면 국제법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김 전 대법관도 검찰 조사에서 이러한 사실을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이라면 대법원장이 주심이 따로 있는 소부 사건에 개입한 것이다. 김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의 말을 듣고 일제 전범기업이 손해배상할 의무가 없다는 쪽으로 재판 결과를 바꿀 논리를 개발하라고 담당 재판연구관에게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양 전 대법원장은 재판 결과를 뒤집는 근거를 마련하려고 2015년 1월 대법관 회의를 주재했다. 이때 민사소송규칙에 ‘국가기관 등 참고인 의견서 제출’ 제도를 도입했다. 외교부에서 ‘재판 결과가 이대로 확정되면 일본과의 외교관계 악화가 우려된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낼 수 있도록 재판 당사자가 아닌 국가기관의 권한을 신설한 것이다. 민사소송법이 아닌 민사소송규칙에 참고인 의견서 제출 권한을 두는 건 법체계에 맞지 않는다는 법무부의 의견도 무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5~2016년 대법원장 집무실 등에서 일본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한상호 변호사와 최소한 세 차례 이상 만나기도 했다. 대법원장이 대법원에 계류된 재판의 한쪽 대리인과 만나 재판에 대해 논의했다면 재판 개입 논란을 피해가긴 어렵다. 검찰은 지난해 11월 김앤장 법률사무소 압수수색에서 양측이 어떻게 접촉했는지, 양 전 대법원장과 한 변호사가 만난 내용 등이 정리된 문건을 확보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공소장에 따르면 양 전 대법원장은 2016년 9월 자신의 방을 찾아온 임 전 차장에게 ‘대법원장 임기 내에 결론을 내리기는 쉽지 않겠지만 강제징용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대법관 전원이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결과를 뒤집는 방안을 모색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당시 전원합의체 회부 여부를 결정하는 전합 소위 위원장이었다.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재판을 뒤집으려는 계획은 그해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면서 성사되지 못했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취임한 후인 지난해 10~11월 일제 전범기업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원래 판결대로 확정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