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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잠들 수 있겠어” 만세 부른 할망·하르방

제주4·3 수형 피해자 ‘재심 판결’에 “마지막 소원 이뤘다” 감격

사법부, 당시 군사재판 불법 첫 인정…“억울한 옥살이 소송할 것”

17일 제주지방법원 재판부가 4·3 생존 수형인들이 청구한 군사재판 재심 선고공판에서 사실상 무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자 피해자들이 법원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17일 제주지방법원 재판부가 4·3 생존 수형인들이 청구한 군사재판 재심 선고공판에서 사실상 무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자 피해자들이 법원 앞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제주4·3 생존 수형인 한신화 할머니(97)는 1948년 겨울 군경이 마을을 모조리 불태운 탓에 네 살 아들을 업고 산에서 생활하다 붙잡혔다. 손가락이 다 꺾이는 모진 고문 끝에 그해 12월 이유도 모른 채 군사재판을 받고 전주형무소로 옮겨졌다. 형무소에 도착해서야 징역 1년형인 것을 알았고, 아들은 고아원으로 보내졌으나 죽었다.

한 할머니는 17일 재심 판결이 난 후 “오늘부터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며 “고맙다”고 말했다. 오계춘 할머니(94)도 “죄를 벗었구나. 눈물만 난다”며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이들은 공동발표문을 통해 “영문도 모른 채 수감돼 온갖 고초를 겪고 살아 돌아온 후에도 범죄자라는 낙인을 안고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며 “마지막 소원은 죽기 전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85~99세 고령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이날 수많은 언론사 카메라 앞에서 ‘진실’ 꽃말을 가진 나리꽃을 가슴에 달았다. 70년간 아로새겨졌던 ‘수형인’ 낙인 대신이다. 또 ‘우리는 이제 죄 없는 사람이다. 4·3 역사 정의 실현 만세’가 적힌 현수막도 이들의 마음을 대신했다.

제주에서는 4·3사건이 진행 중이던 1948년 12월과 1949년 7월 민간인을 대상으로 군사재판이 이뤄졌다. 군경토벌대의 강력한 진압을 피해 산속을 헤매고 다니던 일반 주민이 대부분이었다. 당시 수형인 명부를 보면 2530명이 내란죄 등으로 유죄 선고를 받았다. 이들은 전국 각지 형무소에 분산 수감됐다가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불순분자로 처리돼 상당수 총살됐다. 일부는 옥사하고 행방불명되는 등 대다수의 생사를 알 수 없다.

이번에 재심 청구를 한 18명은 2530명 중 몇 안 되는 생존자다. 이들은 시민단체인 제주4·3도민연대와 함께 4년 전인 2015년부터 당시 군사재판이 위법한 절차에 의해 진행됐고 불법구금과 고문 등이 자행돼 무죄라는 취지의 재심을 준비했다. 2017년 4월 제주지법에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9월 재심 개시 결정이 났다.

정부가 발간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역시 군법회의는 적법절차를 거치지 않은 재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재판은 정부의 보고서 이외에도 사법부가 당시 군사재판이 불법이었음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양동윤 제주4·3도민연대 대표는 “왜곡된 4·3 역사가 바로잡힌 날이자 정의가 실현된 날”이라며 “국가 공권력에 의해 저질러진 범죄행위를 법의 이름으로 심판한 것이다. 억울한 옥살이에 대한 배·보상 소송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는 4·3 불법 군사재판에 의해 희생된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국회는 4·3특별법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주4·3 7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도 자료를 통해 “4·3 당시 군법회의의 불법성을 입증하는 역사적 판결”이라며 “4·3 당시 군사재판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이를 바로잡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4·3특별법 개정안 통과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제주4·3은 1947년 3·1절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1954년 한라산 통행금지령이 해제될 때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최대 3만여명의 주민이 희생된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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