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박근혜 정부 시절 재판거래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의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이 있는 23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는 구속 여부를 두고 진보·보수단체의 찬반 맞불집회가 열렸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서울중앙지법 321호 법정에서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의 심리로 영장실질심를 받았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오전 9시30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촉구했다. 법원노조는 “반헌법적 범죄를 저지른 양승태를 구속해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사법부 신뢰회복의 첫걸음이고 새로운 도약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16~22일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여 법원 직원 3253명과 시민 1만12명의 서명을 법원에 제출했다.
조석제 전공노 법원본부장은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이기주의에 빠져 영장을 기각한다면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스스로 차버리는 것”이라며 “구속을 통해 국민을 위한 법원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기타 생산업체 콜텍 해고노동자들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판결문을 읽은 뒤 양 전 대법원장의 가면을 쓴 남성을 철창에 가두는 행사를 벌였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인 2012년 2월 대법원은 콜텍의 정리해고가 부당해고였다는 고법 판결을 뒤집고 파기환송했다. 이 판결은 지난해 5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특별조사단’의 사법거래 재판 목록에 포함되는 등 재판거래 의혹을 받았다. 이날 민주노총도 ‘구속영장 발부’라고 적힌 대형 인쇄물을 들고 구속을 촉구했다.
같은 시간 보수단체인 자유연대, 자유대한호국단, 턴라이트 등은 건너편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규탄하고 수사를 반대하는 집회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사법부는 좌파 정권의 눈치 그만 보고 법치주의에 입각해 공정하게 재판하라”고 밝혔다. 이들은 ‘문재인 퇴진하라’, ‘윤석열 사퇴하라’ 등의 손팻말을 들고 애국가를 불렀다.
이희범 자유연대 대표는 “양 전 대법원장이 사법부 수장으로서 유능하지 않았다고 해도 구속은 사법부를 행정부 아래로 두려는 유린행위”라며 “사법부가 붕괴되고 있는 오늘은 사법부 수치의 날”이라고 말했다.
진보단체와 보수단체는 법원삼거리에서 서로 30m 정도 떨어져 맞불집회를 벌였지만 물리적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각 집회의 참가 인원은 수십 명이었지만 경찰은 법원 인근에 9개 중대 500여명의 경력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
이날 오후 2시에는 ‘사법농단 대응 피해자단체 연대모임’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농단은 양 전 대법원장의 조직적인 지시·감독으로 이뤄진 범죄행위”라며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하지 않는다면 국민의 분노는 사법부를 해체하고 법관 전원을 탄핵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박정희 독재정권 시절 민청학련 사건 등 긴급조치 위반으로 처벌받은 피해자, 1978년 동일방직 노조 탄압 사건 관계자, 1982년 원풍모방 노조 파괴 사건 피해자다.
앞서 지난 18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한동훈 3차장검사)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직권남용 등 40여개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2011년 9월 취임해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법원 내홍이 계속되던 2017년 9월 임기를 마쳤다. 그는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를 통해 재판에 개입하고 특정 법관 인사에 불이익을 주는 등 사법농단에 개입 및 지시한 혐의를 받는다. 사법부의 최고 수장이었던 전직 대법원장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고 구속영장까지 청구된 것은 사법부 71년 역사상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