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을 나서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사법농단 사건의 총책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71)에 대한 영장심사가 23일 5시간여 만에 종료됐다.
이날 오전 10시30분부터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서관 321호 법정에서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영장심사에서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구속 필요성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심리는 점심식사를 위한 휴정시간 30분을 포함해 오후 4시쯤까지 진행됐다.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검찰 측은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가치를 침해한 중대사건”이라며 구속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과 마찬가지로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를 받는 안태근 전 검사장(53)이 이날 오후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돼 법정 구속된 점을 강조하며 “법관 수십명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안 전 검사장보다 훨씬 많아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안 전 검사장은 2010년 한 장례식장에서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서 검사에게 인사 보복을 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를 만나 강제징용 소송에 대해 직접 논의했고, 인사 불이익을 줄 판사 이름 옆에 ‘V’ 표시를 한 사실 등을 들어 양 전 대법원장이 단순히 위법행위를 보고받는 수준을 넘어 사법농단 사건을 총지휘한 것으로 본다. 검찰은 실무책임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이 구속됐고, 객관적인 물증이 있는데도 혐의를 부인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점도 양 전 대법원장 구속이 필요한 요소로 판단한다.
최정숙·김병성 변호사 등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영장심사에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구체적으로 적어놔 검찰이 핵심증거로 내세운 이규진 부장판사의 업무수첩에 대해서는 조작 가능성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장판사가 양 전 대법원장을 뜻하는 ‘大’를 사법농단 사건이 불거진 뒤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수첩에 적어넣었을 수 있다는 취지다. 구체적 혐의별로 실무진에서 한 일이라 자세히 알지 못하며, 구체적인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일부 직권남용 혐의는 죄가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검찰 소환조사에 성실히 협조했고, 전직 사법부 수장으로 도주 우려가 없다는 점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영장심사를 마친 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이날 밤늦게나 이튿날 새벽 나올 것으로 보이는 영장심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에 들어갈 때와 마찬가지로 법원을 나와서도 기자들의 질문에 굳게 입을 다물었다.
같은 시각 같은 법원 319호 법정에서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시작된 박병대 전 대법관(62)에 대한 영장심사는 오후 5시20분쯤까지 7시간가량 진행됐다. 박 전 대법관도 영장심사를 마친 뒤 서울구치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