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영장심사 5시간 ‘가장 길었던 하루’
“양승태 구속하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영장실질심사가 열린 23일 서울지방법원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23일 오전 10시25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도착했다. ‘헌정사상 최초로 구속된 사법부 수장’이 될지 판가름나는 날이었다. 영장심사가 열리는 서관 현관에 들어가던 양 전 대법원장에게 취재진이 “전직 대법원장 최초로 구속영장심사를 받는데 심경이 어떠냐”고 물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몇 초간 멈춰섰지만 답변은 하지 않았다. 길을 가로막고 마이크를 내밀던 기자의 손을 살짝 밀치기도 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그렇게 전날 설치된 포토라인을 지나쳤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11일 피의자로 조사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에 나왔을 때도 포토라인을 무시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법관 사찰 및 재판 개입 관련 문건을 작성하라고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등을 받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서관 321호 법정에서 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영장심사에서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구속 필요성을 두고 공방을 벌였다. 신봉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등 검찰 측은 “ ‘국민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는 헌법가치를 침해한 중대 사건”이라며 구속이 필요하다고 했다. 검찰은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뒤 인사 보복을 한 혐의를 받는 안태근 전 검사장이 이날 오후 1심 선고 공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선고돼 법정 구속된 점을 언급하며 “법관 수십명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실행한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가 안 전 검사장보다 훨씬 많아 구속이 불가피하다”고 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에서는 최정숙·김병성 변호사가 변론에 나서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구체적으로 적어놔 검찰이 핵심증거로 여기는 이규진 부장판사의 업무수첩에 대해서는 조작 가능성을 제기했다. 심리는 점심 식사를 위한 휴정시간 30분을 포함해 오후 4시까지 진행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영장심사를 마친 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이동해 영장심사 결과를 기다렸다.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에서 나갈 때도 굳게 입을 다물었다.
두 번째 구속영장이 청구된 박병대 전 대법관(62)의 영장심사도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렸다. 허경호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심리를 맡았다. 오후 5시20분까지 진행된 영장심사를 마친 박 전 대법관도 서울구치소로 향했다.
이날 서울중앙지법 앞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 여부를 두고 진보·보수단체의 맞불집회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는 “반헌법적 범죄를 저지른 양승태를 구속해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것이 사법부 신뢰 회복의 첫걸음이고 새로운 도약의 시작”이라고 밝혔다. 기타 생산업체 콜텍 해고노동자들은 양 전 대법원장에게 유죄를 선고하는 판결문을 읽은 뒤 양 전 대법원장의 가면을 쓴 남성을 철창에 가두는 행사를 벌였다.
같은 시각 보수단체인 자유연대, 자유대한호국단 등은 건너편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영장실질심사를 규탄하는 집회·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사법부는 좌파정권의 눈치를 그만 보고 법치주의에 입각해 공정하게 재판하라”고 했다.
진보단체와 보수단체는 법원삼거리에서 서로 30m 정도 떨어져 맞불집회를 벌였다. 경찰은 법원 인근에 9개 중대 500여명의 경력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