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 그라피티’ 작가에 구속영장 신청했던 경찰, 10년 후 해외 유명 그라피티 작가 초청, 왜?

고희진 기자

“오늘 다양한 색깔로 작품을 완성했다. 이 색들 자체가 인권이라고 생각한다.” 노랑, 주황, 초록, 파랑. 색색의 물감으로 글자를 그려내던 존원(56·존 앤드류 페렐로)이 사람들 앞에서 작품을 설명했다. 길거리 아트의 상징이던 ‘그라피티’가 경찰서로 들어왔다. 10년 전 경찰은 한 그라피티 작가가 국가 공식 행사 포스터에 ‘쥐’를 그려 넣었다는 이유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10년 후 행사에서 경찰은 내내 “인권”을 강조했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이 28일 서울지방경찰청 1층 로비에 마련된 캔버스에 그라피티 작품을 완성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그래피티 아티스트 존원이 28일 서울지방경찰청 1층 로비에 마련된 캔버스에 그라피티 작품을 완성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서울지방경찰청은 28일 오후 세계적인 그라피티 예술가 존원을 초청해 ‘인권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핵심 가치로 삼아 새롭게 변화하는 경찰상’을 표현하는 그라피티 제작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경찰서 직원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공개됐다. 원경환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국민 인권을 침해하던 과거의 잘못된 관행을 지워버리고 시민을 사랑하고 인권을 최우선시하는 경찰이 되고자” 이 같은 행사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라피티는 벽이나 화면에 페인트 등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예술 작업이다. 존원은 주목 받는 현대 그라피티 예술가 중 한 명이다. 미국 할렘가에서 태어난 그는 도미니카공화국 이민자 출신으로 초등 정규 교육조차 받지 못했다. 10대 후반부터 뉴욕 등지에서 그라피티를 시작해 파리로 이주해 활동을 이어갔다. 그는 주로 자신의 이름을 벽에 새긴다. ‘존원’이라는 이름을 새기는 작업을 통해 이민자 출신, 소외된 계층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존원은 현대 미술에 기여한 공로로 2015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상했다. 프랑스 현대 미술관인 퐁피두에는 그가 작업한 작품이 유리벽에 남아있다. 파리에 기반을 두고 활동하며 롤스로이스, 라코스테, 에어프랑스, LG전자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다.

유명 미술가라지만, 경찰서 그래피티 행사는 다소 뜬금 없다는 시선도 있었다. 한국에선 2010년 ‘G20’ 행사 포스터에 ‘쥐’ 그림을 그려 넣은 그라피티 작가에게 경찰이 구속영장을 신청한 일도 있다. 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작가는 2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경찰의 수사가 무리했다는 비판의 여론이 높았다.

지금도 한국에서 허락받지 않은 그라피티는 불법이다. 해당 관공서에 신고하지 않으면 불법 낙서로 간주돼 재물손괴죄와 건조물침입죄 등으로 3년 이하 징역이나 7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2010년 ‘G20’ 행사 포스터에 ‘쥐’를 그려넣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박정수씨.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0년 ‘G20’ 행사 포스터에 ‘쥐’를 그려넣어 벌금형을 선고받았던 박정수씨. 경향신문 자료사진

경찰 내부에서는 ‘정권이 바뀌긴 바뀌었나 보다’라는 평이 나왔다. 원 청장이 행사 내내 “인권”을 강조했다. 그림이 완성된 후 원 청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시민의 인권을 더욱 존중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서울 경찰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존원은 프랑스 국회의사당 등 공공기관에서 작업한 적이 있으나 사법 기관에서 작업한 것은 한국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 이 자리는 경찰이 인권과 희망 사이에서 어떤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볼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한다”고 행사 참여의 소감을 밝혔다.

이번 행사는 서울지방경찰청이 존원에게 ‘인권 보호’ 등을 주제로 작품을 그려 달라고 먼저 연락해 열렸다. 경찰 관계자는 “장소와 의미가 중요하다. 지금도 길거리 그라피티는 불법이지만, 이번 행사는 캔버스에 작업했고, 뜻도 인권을 주제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 참여한 최단영양(17)은 “학교 동아리 친구들 8명과 함께 왔다”며 “경찰서에서 생각보다 다양한 행사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중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이번 행사를 위해 지난 25일 입국했다. 오는 30일 출국한다. 경찰은 존원의 작품을 경찰청 내에 전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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