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프랑스에서 일어난 시민혁명은 2세기에 걸쳐 동진해 2016년 한국에서 촛불혁명으로 꽃을 피웠다. 프랑스혁명은 봉건제를 무너뜨린 부르주아혁명이다. 1991년 소련연방의 몰락은 역으로 프롤레타리아혁명의 결정판이다. 이로써 동서냉전도 막을 내렸지만, 한반도는 여전히 겨울이다. 촛불혁명은 비폭력으로 시민혁명의 대미를 장식했다. 따라서 민초들이 일으켜 세운 문재인 정권의 역할은 이 냉전을 끝내는 것이다.
민초들의 오랜 원한 또한 촛불혁명으로 해원되었다. 1894년 봉건세력과 외세 철폐를 외치며 일어난 동학농민혁명은 처참하게 무너졌고, 일제강점기를 초래했다. 1960년 4·19혁명과 1980년 5·18민주화운동은 친일세력과 반공이데올로기를 등에 업은 군부에 의해 무너졌다. 마침내 촛불혁명이 민중의 희망을 구현했다. 촛불혁명은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동서의 세계사적 모순을 끝내고 한반도의 민중혁명을 완수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불가역적인 이 역사의 핵심 고리를 전복시키려는 세력이 있다. 지난주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저지른 5·18폄훼 사건이다. 1996~1997년 그때, 주범이 은폐되고 다만 군사반란의 수괴들인 그들이 재판과정에서 감형되어가는 것을 보며 역사가 퇴보하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그 뒤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이들이 구치소 문을 나오는 모습을 보고 역사는 반복될 것이라는 위험을 느꼈다. 5·18은 수구세력들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다. 박정희가 자신의 정권기반 구축을 위해 획책한 지역갈등을 재탕해 권좌를 탈환하겠다는 것이 목표다. 그것은 촛불혁명마저 전복시키겠다는 기획이다. 역사를 되돌리겠다는 ‘당랑거철’의 어리석음에 다름이 아니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한 줌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이 몰락의 과정에 접어든 위기의식을 이런 식으로 표출한다. 엘리아스 카네티가 <군중과 권력>에서 말하고 있듯이, 언제든 부서지기 쉬운 군중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더욱 많은 군중을 모아 자신들의 불안함을 잠재우고자 한다. 자유한국당은 이러한 군중심리, 엄밀히 말하자면 한반도의 평화무드로 인한 자신들의 기득권 붕괴에 초조함을 느끼는 일부 집단이 다시 결집하도록 신호를 보내는 중이다. 그것은 나의 청년 시절의 무지와도 통한다.
군에 입대한 해인 1985년, 나는 5·18은 여전히 북한군이 남한에 침투해서 벌인 일인 줄 알았다. 경상도 출신인 나는 그 지역의 인식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그 사건이 한국판 시민혁명이라는 점은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못했다. 언론은 진실을 배반했고, 지역갈등의 수혜자는 언제나 경상도였다. 눈치로 얻은, 전라도는 빨갱이들이 설치는 곳이며, 그곳은 북한에 가는 것만큼 위험하다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 실상의 일부를 알게 된 것은 1987년 민주화운동 이후, 국회의 5공청문회를 통해서였다. 그런데 나중에 궁금했던 것은 중·고등학교 시절, 어떤 선생님도 그 사실(史實)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들의 양심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촛불집회가 혁명이 되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실을 직시하는 양심의 회복을 위한 역사청산이 함께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권찬탈의 희생양인 5·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는 수구세력들이 지금처럼 머리를 들게 된다. 그들은 문틈의 겨울바람처럼 비집고 들어와 무명(無明)과 욕망의 연대를 통해 역사를 부정하고, 부정과 반칙으로 약자를 밟고 올라선 자들을 불러 모은다. 소급해서 보면, 이들의 뿌리는 일제에 앞장서서 부역한 세력들이다.
자신과 일족의 영달을 위해 민중을 고난에 빠뜨리고, 정의에 역행한 잘못에 대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회해야 마땅함에도, 그들은 먹고살기 바쁜 민중을 볼모로 그들만의 화려했던 왕국을 수복하기 위해 또 다른 음모를 꾸민다. 어떤 말이라도 내뱉는 것은 그들의 자유라고 치자. 그러나 명백한 진실을 훼손하고,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진리를 금과옥조로 삼는 종교인들과 교육자들은 이 불량한 정치인들에게 그 죄를 묻고, 경전과 교과서에 쓰인 참됨과 정의를 대중에게 단호하게 설파해야 한다. 바른 역사가 무너지면 종교든 교육이든 또다시 권력의 시녀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 당시 군인들에게 포위되기 직전, 시민군들이 “어린 너는 살아남아 이 역사의 진실을 반드시 세상에 전해달라”며, 자신을 전남도청 뒷문으로 빠져나가도록 했다는 한 시민의 증언에 눈물이 흐른다. 참혹한 역사의 뒤안길에서 살아남은 우리야말로 이 진실을 거짓의 어둠이 가리지 않도록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