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성범죄, 누가 얼마나…아무도 모른다

심윤지 기자

국과수 서울지역 감정 건수 최근 4년 새 2배…전국 통계 없어

약물·피해 유형 분석 7년 전 머물고, 경찰은 별도 집계 안 해

수면유도제 ‘졸피뎀’ 최다…최근 4년 ‘물뽕’ 15건, 압수품 검출

약물 성범죄, 누가 얼마나…아무도 모른다

피해를 봐 신고했지만 피해 사실을 증명하기 어렵다. 가해자를 찾기도 힘들다. ‘버닝썬’ 사건으로 불거진 약물 성범죄가 그렇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2015년 약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은 약물 성범죄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이 논문은 2006~2012년 국과수 본원에 약물 감정을 의뢰한 성범죄 사건 555건을 분석했다.

논문을 보면 약물 성범죄 피해를 의심해 국과수에 감정을 의뢰했지만 실제로 약물 양성 반응이 나온 경우는 26%에 그쳤다. 피해자 대부분이 의식이 없거나 수면 상태에서 범죄 대상이 됐다. 신고와 시료 채취도 지연되면서 약물을 검출할 가능성이 낮아진다. 약물이 검출되더라도 가해자를 특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72%에 달한다. 이 역시 피해자가 범행 전 의식을 잃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최근 4년간 국과수 본원과 서울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 의뢰된 사건 중 ‘성범죄 약물’로 알려진 중추신경억제제 GHB(일명 물뽕)가 검출된 건수는 총 15건이었지만, 모두 피해자의 소변이나 혈액이 아닌 압수품에서 검출됐다.

성범죄에 약물이 사용됐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자료는 많다. 4일 국과수에 따르면, 국과수 서울연구소에 의뢰된 성범죄 관련 약물 감정 건수는 2015년 462건에서 2016년 630건, 2017년 800건, 지난해 861건으로 최근 4년 새 2배가량 늘었다. 2006년 28건에 비교하면 12년간 30배 이상 증가했다. 이 통계는 최근 클럽 버닝썬 사건 이후 약물 성범죄가 사회문제로 떠오르자 국과수가 별도로 조사한 것이다.

다른 지역의 약물 성범죄 실태는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경향신문이 국과수에 전국에서 발생한 약물 성범죄 감정 의뢰 건수를 문의한 결과 “정기적인 약물 성범죄 집계·분석 작업은 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2015년 국과수가 발표한 논문도 2013년 국과수 본원이 서울에서 원주로 이전하기 전 통계를 분석한 것으로, 서울과 경인 지역 일부만 분석 대상이다.

경찰도 국과수에 약물 감정을 의뢰한 성범죄 사건을 별도 집계하지 않는다. 현재로선 전국의 약물 관련 성범죄가 몇 건인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셈이다. 다만 2015년 논문을 통해 약물 성범죄 실태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는 있다. 피해자는 1명의 성전환자를 포함해 모두 여성이었다. 평균 나이는 25세로, 20대가 전체 의뢰 건수의 48%, 10대 이하 미성년자가 23%를 차지했다. 가장 나이가 많은 피해자는 74세, 가장 어린 피해자는 4세였다.

성범죄 사건에 가장 많이 사용된 약물은 수면유도제 졸피뎀이었다. 양성 반응이 나온 145건 중 졸피뎀 범죄가 31건(21%)을 차지했다. 약물 성범죄가 가장 많이 일어난 곳은 술집이나 노래방 등 유흥업소와 모텔 등 숙박시설(57%)이었다.

약물 성범죄 관련 통계가 부족한 이유는 경찰이 ‘약물 성범죄’를 별도의 범죄 유형으로 다루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현재는 약물 사용이 의심되는 성범죄에 대해 피해자 동의를 받아 국과수에 약물 감정을 맡긴다. 피해자의 생체 시료에서 약물이 발견됐을 경우 가해자는 항거 불능 상태에서의 성폭력 혐의(준강간)가 아닌 강간치상 혐의로 처벌받는다. 피해자 신체가 아닌 피의자 압수품에서 약물이 발견되면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가 추가된다.

경찰청 마약수사계 관계자는 “약물 이용 성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은 없다”면서도 “마약류 범죄의 형량이 세기 때문에 일반 성범죄에 비해 약물 성범죄에 대한 처벌이 세지 않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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