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투약·유통, 폭행 등 뚜렷한 범죄 사실 소명 못해
언론 보도 의식·수사 성과 부담감에 부실 수사 우려
경찰의 클럽 버닝썬 의혹 당사자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비율이 절반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이 의혹 당사자로 몰린 데다 언론 보도 등을 급하게 좇으면서 입증을 제대로 못해 다른 사건에 비해 기각 비율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경찰이 버닝썬 사태로 촉발된 여러 의혹을 수사하면서 폭행, 불법촬영, 경찰 유착, 마약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한 핵심 사건 관계자들은 모두 10명, 청구 영장은 모두 11건(신청 12건)이었다. 이 가운데 6건이 발부되고 5건이 기각됐다. 마약 투약·유통, 금품수수·폭행 관련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최근 구속영장이 기각된 건 지난 21일 풀려난 배모씨다. 배씨는 서울 강남의 한 유흥주점의 미성년자 출입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현직 경찰관 두 명에게 수백만원 상당 금품을 건넨 혐의를 받았다. 업소 측의 브로커인 그는 지난 18일 긴급체포됐다.
이문호 버닝썬 공동대표의 클럽 내 마약 투약·유통 의혹은 법원이 처음으로 기각한 사건이다. 지난달 19일 법원은 “현 단계에서 구속할 필요성과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 대표는 경찰의 보강수사와 구속영장 재신청 뒤인 19일 영장 발부로 구속됐다.
마약 투약·유통 혐의를 받은 중국인 MD(영업사원) ㄷ씨(일명 애나)에 대한 구속영장은 지난 19일 기각됐다. 법원은 “투약 혐의는 인정되나, 마약류 유통 혐의는 영장청구서 범죄사실에 포함되지 않고 소명도 부족하다”고 했다.
김상교씨(29)를 때린 혐의(상해)를 받은 장모 버닝썬 이사와 2년간 미제사건이었다가 지난달 입건된 클럽 아레나 폭행사건의 가해자 윤모씨의 구속영장도 지난달 21일 기각됐다. 법원은 장씨 영장은 “다툼의 여지가 있다”, 윤씨 영장은 “시간이 오래돼 착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기각했다.
버닝썬과 경찰의 유착 고리로 지목된 전직 경찰관 강모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한 차례 반려된 끝에 청구됐다. 애초 검찰은 ‘구속 필요성을 소명할 만큼 조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어 경찰의 신청을 반려했다. 경찰의 보강수사 후에야 검찰은 영장을 청구해 강씨를 구속했다.
경찰이 스스로 의혹 당사자로 몰린 상황에서 연일 쏟아지는 의혹을 급하게 좇아가면서 영장을 신청해 기각이 많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사 성과를 빨리 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부실한 영장 신청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의혹 연루자나 참고인에 대해 소환조사와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를 병행하고, 혐의 하나하나를 따져 범죄 사실을 소명해 영장을 신청해야 하는데, 의혹 단계에서 한두 개 불거진 혐의를 두고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일이 잦다는 말이다. 진술이나 정황증거에 의존한 측면도 있다.
수사 성패를 좌우할 가수 승리(29·본명 이승현)의 신병확보가 가능할지를 두고도 경찰 내부에서 비관적 전망이 나온다. 횡령 혐의와 성접대·성매매 의혹에 대해 정황증거는 다수 확보했지만, 뚜렷한 물증을 잡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다만 가수 정준영씨(29) 등의 불법촬영물 유포·촬영과 아레나 실소유주 강모씨 등의 탈세 사건에 대한 영장 발부는 많았다. ‘단톡방’과 당사자들의 인정, 거래 장부 등 구체적인 물증 덕에 입증이 상대적으로 수월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