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찢긴’ 무궁화 동산 국방부가 서울 용산의 명맥을 잇겠다며 자발적으로 복원·보전해 오던 ‘무궁화 동산’에 테니스장 건설 공사를 시작하면서 갖가지 논란을 빚고 있다. 사진은 국방부 영내는 물론 용산 미군기지에서 가장 높은 지대이자 흔히 ‘용머리’로 불리는 무궁화 동산을 절개한 후 쌓아 놓은 토사 모습이다. 아래 사진은 국방부가 ‘무궁화 동산’에 조성해 놓은 돌탑.
국방부가 직원들의 체육활동 활성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지난달 20일 시작한 영내 테니스장 건설 공사로 시끄럽다. 22일 국방부와 서울 용산구에 따르면 국방부가 예산 8억1000만원을 투입해 시작했던 테니스장, 족구장, 라커룸 조성 공사가 용산구청 명령으로 8일째 중단된 상태다.
15년 전 국방부가 복원해 만든 무궁화 동산…
이곳 다시 파헤쳐 테니스장·족구장 조성 추진
국방부가 오는 6월17일 완공을 목표로 테니스장 건설을 진행 중인 곳은 2004년 국방부가 용산의 명맥을 잇겠다며 자발적으로 복원했던 야산이다. 그러던 땅을 15년이 지나자 국방부는 절개했다. 이곳은 국방부와 용산 미군기지 등을 포함한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지대로 ‘무궁화 동산’으로 불린다. 국민 세금으로 국방부에 테니스장, 족구장을 무리하게 짓는 것은 국민감정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자연환경 파괴’ 논란
국방부 테니스장 예정 부지인 무궁화 동산 일대는 신청사와 구청사 사이에 위치한 잔류 부지 1만2000여평 내에 있다. 국방부에 오래 근무한 직원들에게 ‘용머리’라고도 불리는 곳이다. 용산 터 가운데 유일하게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경내 부지로, 국방부에서 가장 높은 지대다. 용산 미군기지를 포함해서도 가장 고도가 높은 지역이다. 이곳을 기준으로 이태원의 시작점과 맞닿아 있는 녹사평 쪽이 ‘용의 꼬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라고 알려져 있다.
용머리는 그동안 수차례 개발 논리에 밀려 사라질 뻔했다가 살아남기까지 과정이 수월치 않았다. 과거에도 국방부는 영내 부지 활용을 위해 용머리 일대 개발을 시도했다. 그러나 ‘용산’의 상징인 이곳을 함부로 허물어서는 안된다는 향토사학자들의 의견을 존중해 현재의 모습으로 남은 것이라 전해진다.
국방부는 1993년 이곳에 있던 무기고를 철수시키고 보전해 왔다. 이후 블록 건물 등 인공 건조물이 생기면서 곳곳이 심하게 훼손되고 정상과 기슭 등에 소나무와 잡목 등 약 300그루가 어지럽게 자생해 황량한 모습으로 변했다.
국방부는 2004년 신청사 건립을 계기로 이곳을 다시 정비하고 대한민국 상징이 무궁화꽃임을 감안해 무궁화나무로 조림한 무궁화 동산을 조성했다. 당시 국방부는 신청사 주차장 공사 현장에서 나오는 15t 트럭 1460대 분량의 흙으로 복토작업을 해 무궁화 동산을 더 높이는 방안을 한때 검토하기도 했다. 현재 정상에는 돌탑이 조성돼 있다.
국방부는 테니스장을 만들겠다며 중장비를 동원해 무궁화 동산 꼭대기 일부만 남기고, ‘ㄴ자’로 이미 절개해 놓은 상태다.
용산은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일본 관동군이 군사기지를 건설하면서 훼손되기 시작했다. 이후 대규모 택지와 상가건물들이 들어서면서 국방부 경내의 1만2000평을 제외하고는 용맥이 끊겼다고 풍수전문가들은 지적해 왔다.
국방부는 용머리에 대해서도 “용산 지명과 관련된 사료들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용산의 용머리는 국방부가 있는 삼각지 일대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15년 전 용머리를 보전한다면서 무궁화 동산을 조성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입장을 내놓은 것이다.
국방부의 테니스장 공사 구역은 ‘용머리냐, 아니냐’ 논란이 아니더라도 멀쩡한 녹지를 훼손하는 것이어서 용산구청의 녹지축 구상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성장현 용산구청장은 주한미군 부지를 생태공원(용산공원)으로 조성해 남산~용산공원~한강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을 만들겠다고 공언해 왔다. 녹지구역을 파괴하고 테니스장 등을 건설하려는 국방부 구상은 도시공원을 보호하면서 시내 곳곳에 나무를 심어 미세먼지를 잡고 도심 열섬현상을 막겠다는 서울시 정책에도 역행하는 조치라는 지적이 나온다.
■ ‘의문투성이’ 결정 과정
라커룸 등 시설물 설치는 용산구청 허가 받지 않아…
현재 구청 명령으로 공사 중단된 상태
국방부는 용산구청의 인가가 나지 않았는데도 6월17일 완공을 목표로 지난달 20일 테니스장 건설 공사를 시작했다. 그러나 관할 용산구청의 허가가 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시작해 지난 15일 공사중지명령을 받았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자치단체장 승인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사를 벌이는 행위는 불법이다. 예비역 장성 ㄱ씨는 “야전부대 같으면 지휘관까지 책임질 부분이 있으면 책임져야 하는 사안”이라며 “군 최상급 부서에서 저러면서 그 많은 예하부대를 뭐라 하며 통제할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국방부는 “국방부 내 체육시설 조성은 국방·군사시설 시행에 관한 법률로 지방자치단체 허가 없이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건축물인 라커시설만 용산구청 인가 사항인데 아직 라커시설 공사는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테니스장 기반 공사만 먼저 했기 때문에 위법 사항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신규 테니스장 옆에 풋살장도 함께 설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국방부는 테니스장 증설은 다른 체육시설들 조성 비용까지 포함해 기획재정부와 국회 승인을 받아 청사종합발전계획에 반영해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테니스장만 따로 조성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당초 국방부는 수송대대(과거 육군회관) 건물을 리모델링해 종합스포츠시설을 조성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테니스 애호가’ 장관 취임 후 ‘일사천리’ 진행…
물음표 많은데 구체적인 결정 과정 ‘함구’
그러던 것이 ‘테니스 애호가’인 정경두 국방장관이 지난해 9월21일 취임한 뒤 3개월도 채 안된 12월10일 테니스장 설계공고를 결정하고, 같은 달 17일 이를 공고했다. 이후 지난 2월25일 테니스장 건설 입찰공고를 냈고, 지난달 20일 계약 체결과 동시에 공사가 일사천리로 시작됐다.
국방부는 “2016년부터 테니스 동호회가 지속적으로 테니스장 증설을 요청했다”며 “일부 고위급을 위해 테니스장을 짓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방부는 어떤 구체적인 절차를 거쳐 테니스장 건설이 결정됐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함구하고 있다. 행정적으로 누가 기안을 했고, 누가 최종 결정을 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합참 간부 ㄴ씨는 “아무리 국방부가 군사시설이라고 하지만 서울 도심 한복판에 국민 세금으로 굳이 야산까지 절개해가면서 테니스장 건설을 강행해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며 “국방부에서 가까운 효창운동장 부근이나 한강공원에도 테니스 코트는 많다”고 말했다.
테니스장 예산 편성도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테니스장, 족구장 설계비는 2018년 국방부의 ‘기타 일반지원시설’ 집행 잔액 가운데 2000만원으로 충당했다. 당시 ‘장병 편의시설 개선비’나 ‘행정·복지시설 개선비’ 예산은 모두 집행된 상태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계획 없이 갑작스럽게 추진됐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 건설비는 올해 ‘기타 일반지원시설비’ 7억9000만원으로 집행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보면 테니스장, 족구장은 ‘장병 편의시설 개선비’나 ‘복지시설 개선비’ 항목으로 충당해야 할 부분이다. 국방부가 ‘기타 일반지원시설’ 항목으로 설계비와 공사비를 책정한 것은 국방예산의 편법 집행이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 국방부 고위 간부 ㄷ씨는 “지난해에 테니스장 조성을 위한 설계비를 배정한 것은 예산 집행률을 높이기 위한 조치였다”고 밝혔다. 그러나 전체 건설비 8억1000만원 가운데 설계 비용으로 2000만원만을 집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불용예산을 줄이기 위해서였다는 해명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투입비 8억1000만원…
이 돈이면 6200명에 최신 전투장비·연병장 10곳에 새 잔디 지원 가능
게다가 8억1000만원은 야전부대 연병장이 3000여평 규모라면 10여곳에 잔디를 입힐 수 있는 돈이다. 그러면 병사들이 잔돌이 깔린 연병장에서 축구를 하다 다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공병 장교 ㄹ씨는 평당 2만~3만원이면 잔디로 교체가 가능하다고 했다.
‘8억1000만원’은 또 육군이 미래 병사를 키운다는 워리어플랫폼 시범사업을 할 수 있는 액수다. 병사 6200여명에게 워리어플랫폼 재킷을 보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육군 간부 ㅁ씨는 “예산 부족으로 워리어플랫폼 재킷을 시범 보급도 하지 못하고 있다”며 “8억1000만원이면 3개 여단 병력을 상대로 시범사업을 할 수 있는 액수”라고 말했다. 워리어플랫폼은 장병의 신체와 미래기술을 결합해 전투원 개개인의 생존성 및 전투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개념의 최첨단 개인전투체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