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력 6개월의 ‘랩 초보’로 등판, 비약적 성장 끝에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승을 차지했다. 첫방송에서 “넌 힙합이 아니네”라며 또래들의 공격을 받더니 방송 8회차만에 전국 153만 고등학생 중 ‘힙합 최강자’로 거듭났다. 국내 랩 경연 프로그램 사상 최초의 여성 우승자이자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까지 따냈다. <슬램덩크>류의 ‘소년 만화’를 연상케하는 이 호쾌한 성장담의 주인공은 지난 12일 종영한 고등학생 랩 경연 프로그램 Mnet <고등래퍼3>의 우승자 이영지(17)다. ‘극남초’ 장르라 불리는 힙합계에서 미성년 여성으로서 ‘소년 만화’ 아닌 ‘소녀 만화’의 새 역사를 쓰고 있는 이영지를 만났다.
“최초 여성 우승자, 최연소 우승자라는 타이틀보다 ‘이영지’가 우승을 한 게 중요하죠.” 지난 19일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에서 만난 이영지는 특유의 활기와 자신감으로 가득차 있었다. 래퍼들이 보통 쓰는 ‘랩 네임’조차 없다. “딱히 내 이름을 대체할 게 없다”는 패기 넘치는 이유에서다. “넥타이 풀어헤쳐야, 학교를 자퇴해야 힙합이다”고 말하는 또래들에게 “어디서 배운 거야? 그런 힙합?”이라고 받아치며 첫방송에서부터 화제가 됐던 그답다. 힙합에 대한 통념을 깨는 신선한 발언이었다는 평에 대해 이영지는 “10대들이 생각하는 힙합이 ‘허세’쪽으로 기울어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뻔뻔스럽게 뽐내는 것도 힙합의 매력이 될 수 있으니 과하지만 않으면 괜찮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사실은 별 의도 없이, 친구들과 친해지려고 장난을 친 것뿐이라고 여유롭게 웃어넘겼다.
이영지는 ‘성공’을 누구보다 열망해왔다. 지난 13일 발매한 신곡 ‘레디’(Ready)의 “유명인사 되어 입신양명, 벌고 벌어 또 벌어 또 멀어질 거야. 더러운 가난과는”라는 가사처럼, 그의 랩에는 성공이 유독 자주 언급된다. “어려서부터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이 있었어요. 가정의 불화가 돈에서 비롯되거나, 빈곤 때문에 자신이 싫어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거든요. 그때 생각했죠. 돈 많이 벌어야지.(웃음)”
그가 꿈꾸는 성공은 대단한 부와 명예가 아니다. “나이들면서 성공의 기준은 계속 바뀌겠지만, 지금 제게 성공은 단순해요. ‘맛있는 것을 많이 먹는 삶.’ 미련하게 많이 먹는다는 게 아니라,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때 내 돈 주고 먹을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언제든 사줄 수 있는 정도의 부를 갖는 거예요.”
이영지와의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고등래퍼3> 우승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린다.
“일단 영광이다. 다 제 몫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기쁘고 감사하다. 처음엔 참여와 배움에만 의미를 뒀지만, 세미 파이널 라운드 때부터 도움 주신분들께 보답하기 위해 우승을 목표로 하게 됐다. 팀에 유일하게 남은 멤버인 민규 오빠(김민규)가 목 상태가 많이 안좋아 탈락을 짐작하고 있던 때였다. 그럼 혼자 남은 내가 지금까지 도와준 이들에게 보답할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가 우승밖에 없겠다고 생각했다.”
-우승 이후 주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
“가족들은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힙합을 취미로 하고 있을 때는 ‘해라, 하지 말아라’ 등 일절 언급이 없으셨는데, 막 시작한 일로 성과를 가져오니 저를 많이 믿게 된 것 같다. 학교에선 선후배들끼리 대부분 다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맨날 보던 애가 TV에 나오고 하니 다들 신기해하는 것 같다. 저는 그런 반응이 낯간지럽고. (웃음) 맨날 보던 애들이 와서 동생, 사촌 동생, 이모, 숙모 것까지 사인을 다 받아간다. 교무실도 한 번 가면 잡혀서 (사인) 30장은 하고 온다.”
-국내 혼성 랩 경연 프로그램에서 최초의 여성 우승자,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타이틀에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그것보단 ‘제’가 우승을 한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등래퍼3> 첫방송에서 “넥타이 풀어 헤쳐야 힙합이다, 학교를 자퇴해야 힙합이다”라는 또래들의 말을 듣고 “어디서 배운거야? 그런 힙합?” 받아치는 장면이 화제가 많이 됐다. 알고 있었나?
“알고 있었다. 굉장히 화제가 됐더라. 왜 그렇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웃음) 고등학교 1, 2학년 때 한창 친구들끼리 우스갯소리 많이 하잖나. 그래서 나도 그냥 친구들과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티키타카’ 장난을 친 건데 재밌게 방송에 나간 것 같다.”
-10대 친구들이 힙합에 대해 가진 통념을 깨주는 신선함이 있었던 것 같다.
“일반적으로 10대들이 생각하는 힙합이 조금 ‘허세’ 쪽으로 기울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뻔뻔스럽게 뽐내려는 게 또 힙합의 장점이나 매력이 될 수 있으니까 과하지만 않다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랩을 언제,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시작을 했다’라는 경계가 애매한데, 작사를 해서 작업물을 만든 것을 기준으로 한다면 작년 9월부터 시작했다. 그전에 비와이같은 국내 래퍼들의 곡을 노래방에서 따라부른 것까지 합치면 한 1년 정도 됐다. 그런데 그건 경력으로 칠 수 없기 때문에…(웃음)”
-랩을 진로로 정한 계기가 있나? 원래 ‘개그우먼’ 되라는 권유 많이 받았다면서.
“전에는 랩을 진로로 깊게 생각해본 건 아니고 그냥 재밌어서 했다. 오히려 <고등래퍼3>이 진로를 확실히 굳혀준 계기가 됐다. 원래는 MC나 예능인을 하고 싶었다. 중학교 때 전교 학생회장을 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이끌면서 소통하는 것에 희열과 재미를 느꼈다. 다만 어릴 때부터 유튜브를 통해 외국 힙합이나 팝 음악을 많이 들었다. 기억나는 게 초등학교 3학년 때 저스틴 비버의 ‘베이비(Baby)’를 유튜브로 듣고 따라 부르려고 가사를 영어 발음 그대로 블로그에 적었다. 그러다가 자연스레 국내 힙합을 듣고 따라 불렀는데 친구들이 ‘잘한다’고 하더라. 그 때부터 ‘내 걸 써볼까’ 생각이 들어 랩을 시작했다”
-래퍼들이 보통 쓰는 ‘랩 네임’이 아직 없다.
“저는 이영지. 앞으로도 그대로 이름을 쓸 것 같다. 뭐 딱히 제 이름말고는 대체할 게 없다고 생각 한다.”
-경력 6개월의 ‘랩 초보’인데 첫방송에 나온 학년별 사이퍼에서 1등 했다. 두 번째 방송 팀 대표 선발전 무대에선 래퍼 더콰이엇에게 ‘흙 속의 진주’라는 칭찬을 받았다. 기분 어땠나?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칭찬 받으면 재밌잖아. 더 많이 듣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정말 잘하는구나’ 이렇게 생각하진 않았다.”
-래퍼 행주는 방송에서 “이영지는 경연 내내 단 한 번도 실수를 한 적이 없다”고 했고, 프로듀서 코드쿤스트는 파이널 공연을 준비하며 “영지와 함께 열흘 밤을 샜다”고도 했다. 경연 내내 노력과 성실의 아이콘이었는데.
“밤을 많이 새긴 했는데, 연달아 열흘을 샌 건 아니다. 하지만 정말 열심히 했다. 매 라운드마다 ‘피해만 끼치지 말자’, ‘좋은 비트, 좋은 멘토링에 누가 되지 말자’ 이런 생각만 계속 했기 때문이다. 팀원들과 같이하는 무대도 있으니, 실수하지 말자는 생각이 먼저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 위기가 없어보였는데?
“매 라운드가 위기였고 힘들었다. 멘토님께 늘 들었던 말이 ‘항상 새롭다, 나날이 늘어간다’였다. 그건 내가 집에서 계속 전전긍긍하며, 열심히 했기 때문이다. 밤을 새면서 눈이 감기는 걸 열심히 떠가면서 했기에, 그렇게 힘들게 했기에 멋진 결과들이 나왔다. 그냥 마음 놓고 편하게 할 수도 있는 건데, 저는 한 순간도 마음을 편하게 먹은 적이 없다.”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하며 밤을 지새웠나?
“숙제 같은 경우에는 시간을 정해놓고 할 수 있는 분량이 있는데, 랩은 만족스러운 성과가 나올 때까지 계속 하는 것이다. 계속 계속 계속. 가사도 쓰고 어감도 다듬고. 멘토님도 저한테 맞는 비트를 주기 위해 계속 편곡, 편곡, 편곡하시고.”
-멘토들의 영향을 받아 나날이 성장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래퍼 더콰이엇과 프로듀서 코드쿤스트는 어떤 멘토였나?
“너무 아버지, 어머니 같은… 부모님 같은 분들. 제가 원하는 것을 그리고 펼칠 수 있게끔 천천히 기다려주시고, 살펴주셨다. 도움을 요청드리면 최선을 다해 도와주셨다. ‘쉬엄쉬엄해~’ ‘너무 조급해하지마, 잘 할거야’ 이런 말씀들이 기억에 남는다. 휘황찬란하고 거창한 말들이 아니라, 이런 말들이 도움이 됐다.”
-가사를 쓸 때 어디서 보통 영감을 얻는지?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비트를 틀어놓고 생각을 한다. 아니면 그때 그때 떠올랐던 것들을 적어놓는다. 주제는 딱히 무겁게 잡을 필요도 없고 그냥 평소에 느꼈던 감정들 중에서 자유롭게 정한다. 어려운 게 아니다.”
-가사에 가족들에 대한 내용이 많다. ‘나를 표현하는 랩’에선 아빠에게 성공할 테니 돌아와달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지난 13일에 낸 음원 ‘레디(Ready)’에선 ‘엄마, 할머니를 위해 성공하겠다’ ‘더러운 가난과 멀어질 거야’라는 내용이 눈에 밟히더라. 어떤 성장기를 보냈나?
“전말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기억을 할 수 있을 때부터 아버지가 곁에 안계셨다. 가사에도 자세히 모른다는 식으로 썼다. (아버지에게) 왜 떠났느냐 의문을 품고 적은 가사다. 엄마, 할머니 품에서 자랐지만 그렇게까지 부족하게 산 것은 아니었다. 그냥 중산층이 아닌 정도였다. 다만 스타킹 한 장 살 때도 1000원, 2000원을 고민하며 진열대 앞에 서있어야 하는 그 때로 돌아가기 싫은 마음을 눌러 적은 것뿐이다. 잠잘 곳 입을 옷 걱정없이 건강하게 잘 살았다. (웃음)”
-가사에 ‘성공’이라는 단어가 유독 많이 나온다. 이영지가 열망하는 ‘성공’은 어떤 것인가?
“제가 열망하는 성공은 부와 명예 이렇게 큼직한 것보다는 ‘맛있는 걸 많이 먹는 삶’이다. 미련하게 많이 먹는다는 게 아니라, 맛있는 걸 먹고 싶을 때 내 돈 주고 먹을 수 있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언제든 사줄 수 있는 정도의 부를 가진 삶. 단순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제겐 의미가 크다. 앞으로 나이가 들면서 가치관에 따라 성공의 기준은 계속 바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당장은 맛있는 것을 많이 먹고 사줄 수 있는 돈을 갖는 것이 성공이다.”
-이렇게 성공을 열망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
“어려서부터 풍족하고 여유로운 삶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가정의 불화가 돈에서 비롯되거나, 빈곤 때문에 자신이 싫어질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생각했다. 돈 많이 벌어야지.(웃음)”
-닮고 싶은 롤모델이나 영향을 받은 래퍼는 누가 있을까?
“롤모델은 아직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지금 생겼다고 하면 멘토였던 래퍼 더콰이엇이다. 그릇이 되게 크신 분이다. 후배들을 정말 잘 챙기시고, 누가 깎아내리려고 하거나 흠을 잡으려고 해도 흠이 잡히지 않는 분이다. 그분처럼 모든 것을 여유롭게 품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구체적으로 무엇을 품고 싶은 것인가?
“저를 향해 쏟아지는 비판적인 시선들까지도 포용할 수 있는, 안 좋은 이야기들도 저 스스로의 긍정으로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새 인기를 실감하나? <고등래퍼3>을 보면 ‘이영지’를 연호하는 팬들이 정말 많더라. 인기 요인이 뭐라고 생각하시는지?
“진짜 모르겠다. 보통 밖에 잘 안 나가고, 집에 누워서 ‘먹방’ 보거나 해서 인기를 잘 몰랐는데 무대를 하러 갔더니 다들 너무 좋아하셔서 놀랐다. 그런데 최근 인스타그램에서 라이브 방송을 켰는데 갑자기 접속자 2800명이 한꺼번에 들어오더라. 이럴 땐 (인기를) 실감하긴 한다.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관심 많이 가져주시는 건 좋게 생각한다.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지면서 악성 댓글도 많이 달릴 것 같다.
“힘들다. 감당이 안되는 댓글도 많은데, 더 큰 사람이 되려는 디딤돌로 생각하려고 한다. 음…. (이 말은) 너무 관용적인 것 같다. 걔네가 못된 거다. (웃음)”
-최종 우승곡 ‘고 하이’(Go High)에서 피쳐링을 맡은 창모, 우원재의 목소리만 남긴 채 그의 목소리를 삭제한 음원이 유튜브 등에서 유통되기도 했다. 당시 인스타그램에 “너무 한다”고 답답한 심정을 적었다.
“삭제 버전 음원을 만드는 건 개인의 취향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당시 제 심적 상태가 그렇게 받아들이지를 못했다. 도를 넘어선 인신 공격, 이유 없는 비난 등 여러 말도 안되는 악성 댓글들을 보면서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던 때라 ‘나를 비꼬려고 만든 건가?’ 이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오로지 피쳐링 때문에 우승했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이후 음원을 게시한 분과 사과를 주고 받았다. 앞으로는 그렇게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남초’ 힙합계에서 여성으로서 일군 성취는 비슷한 환경에 처한 여성들, 특히 또래 여성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많은 여성들의 ‘희망’ ‘롤 모델’이 되고 있는데, 알고 있나?
“몰랐다. 어떤 분들이든 저를 보고 희망을 가져주시면 감사하다.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더 많은 분들이 저로 인해 희망을 가질 수 있게끔 더 열심히 노력을 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릇이 넓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고등래퍼 전과 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저는 아무것도 안달라졌다. 그냥 좀 맛있는거 많이 먹는 것(웃음), 좀 예민해졌다는 것. 그 외엔 딱히 없는 것 같다.”
-우승 장학금으로 1000만원을 받았다, 어디에 쓸 예정인가?
“좋은 장비를 살 것이다. 또 친구들에게 맛있는 것을 많이 사주고 있다.”
-이영지가 생각하는 ‘힙합’은 무엇인가?
“표현의 자유를 존중할 수 있는 문화인 것 같다. 멋있는 문화, 앞으로도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게 될 것이라 장담할 수 있는 문화.”
-앞으로 구체적인 계획은 어떻게 되나?
“<고등래퍼3> 출연자들과 함께하는 ‘어나더레벨’ 전국투어 콘서트 등이 예정돼 있다. 다른 래퍼들과 작업도 많이 하고, 싱글이든 앨범이든 좋은 곡 만들려고 노력할 것이다.”
-끝으로 팬들에게 한마디
“정말 너무 감사하다, 저를 많이 응원해주신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많이는 아니지만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던 것 같아서 너무 행복하다. 제가 돈 더 많이 벌어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원해주시는 분들 너무 감사하고, 다들 돈 많이 버시고 맛있는 것 많이 드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