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가 기업경영 위협한다?

박상영 기자

“가업승계세율 87%는 단순 합산에 불과...상속최고세율은 50%”

최근 5년간 실효세율은 14.2%...과세 대상도 피상속인 중 3%

상속자산 60%는 건물·토지...상속세율 낮추면 부의 세습 활발

“가업을 승계할 때 상속세 65%에 주식 양도세 22% 등 총 87%의 세금을 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분율이 낮아져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다”

강호갑 한국중견기업연합회 회장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 중식당에서 열린 중견련 10대 회장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언급한 내용이다. 기업인들이 높은 상속세 부담으로 가업 승계를 포기한다는 보도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많은 매체들이 강 회장의 발언을 인용해 보도했다. 상속세가 가업상속 등을 어렵게 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으니 세율 인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29일 경제개혁연대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반박했다. 경제개혁연대 ‘상속세와 관련한 오해’라는 자료를 통해 “상속세에 대한 사실을 왜곡해 가짜뉴스를 배포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개혁연대의 보고서를 문답 형식으로 정리했다.


-기업승계 세율이 87%이다? “87%라는 주장은 성립할 수 없다”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주식을 매각해 상속하는 경우 최대 87%의 세율이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87%’라는 숫자는 상속세 최고세율 50%에 상속증여세법상 최대주주 할증 평가규정에 따른 15%, 주식 양도소득세율 22%를 모두 합해 도출했다.

하지만 실제 세율은 이런 계산법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상증세법상 최대주주 할증 평가규정은 주식을 상속하거나 증여하는 경우에 적용하는 것이지, 매각하는 경우에 적용되지 않는다. 최대주주 할증은 주식을 상속하는 경우 최대주주 등이 보유한 주식 지분율과 기업의 규모에 따라 상속이나 증여를 받는 주식의 가액에 일정한 비율을 가중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창업주가 0원에 취득해 100억원까지 오른 주식을 매각해 상속한다고 가정해보자. 창업주는 우선 양도차익에 100억원 대한 세금 22억원을 납부한다. 세금 납부 후 78억원을 상속할 경우에는 상속세 50%인 39억원을 납부한다. 납부한 세금은 총 61억원이다. 결국 실효세율은 87%가 아니라 61%인 것이다.

중기연 관계자도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강 회장이 상속세 부담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상속세 최고세율(50%)과 최고세율에 부여되는 최대주주 할증평가(15%), 주식 양도세율(22%) 등을 모두 더해서 나온 수치인데 잘못된 계산법”이라며 “상속세 최고 세율이 87%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인정했다.

-최고 상속세율이 65%이다? “우리나라 최고 상속세율은 50%”

우리나라 최고 상속세율은 50%다. 그럼에도 상속세율을 65%라고 주장하는 것은 주식가치 평가에 관한 규정 때문이다. 상증세법에서는 최대주주에 대해서 일정한 할증평가 규정을 두고 있다. 상증세법에 따르면 최대주주에 대해서는 20%를 할증하고 최대주주 등이 의결권 있는 지분의 과반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30%를 할증한다.

만약 주식가치가 100억원인 경우, 최대주주가 아니고 다른 공제 등이 없다고 가정하면 45억4000만원의 상속세를 납부하게 된다. 그러나 지분의 과반을 보유하지 않은 최대주주인 경우에는 주식가치가 120억원으로 평가돼 상속세가 55억4000만원이 된다. 최대주주이며 과반수를 보유한 경우에는 주식가치가 130억원으로 평가돼 60억4000만원의 상속세를 납부한다. 할증되지 않은 주식가치 100억원을 기준으로 세율을 계산하면 45.4%, 55.4%, 60.4%가 되는 것이다.

경제개혁연대는 주식 평가액이 달라진 것일 뿐, 세율이 올라간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이총희 경제개혁연대 회계사는 “만약 이것이 문제라고 한다면 일반적인 주식거래에서 경영권 프리미엄을 계산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현대그룹은 현대증권 주식을 KB증권에 매각할 때 현대상선과 총수일가 주식을 2만3182원에 매각했다. 그러나 KB증권이 인수 후 소액주주들에게 주식매수 청구권을 부여한 가격은 6737원에 불과했다.

서울 한진빌딩 입구. 연합뉴스

서울 한진빌딩 입구. 연합뉴스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외국에 비해 높다? “높지 않다”

국민소득 3만 달러이면서 인구가 5000만이 넘는 국가를 기준으로 보면,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상속세율이 높다. 일본은 상속세 최고세율이 55%로 한국(50%)보다 높다. 영국은 최고 상속세율이 40%지만 소득세 최고세율은 45%로 한국(42%)보다 높다. 미국의 경우 상속세율은 40%이며 소득세 최고세율은 주세를 포함할 경우 46.3%에 이른다.

다른 나라의 상속세제에 대한 비교는 대부분 명목세율의 단순 비교에 불과하다는 한계도 있다. 상속세의 실효세율은 상속재사에 대한 각종 공제, 과세 당국의 법 집행 의지. 편법 상속 만연 등과 같은 요인에 영향을 받지만 다른 나라와의 비교에서는 이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 상속세 최고세율은 50%에 달하지만 최근 5년간 실효세율은 평균 14.2%에 불과했다. 과세 대상자도 많지 않다. 2017년 기준, 상속세가 부과된 인원은 6986명이다. 이에 비해 과세 미달자는 22만2840명에 달한다. 총 피상속인의 3%만 상속세가 부과되는 것이다. 상속세에 광범위한 감면 혜택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지배권 상속을 손쉽게 하기 위해 상속세율을 낮춰야 한다? “지배권과 연관된 유가증권 상속 비율은 낮다”

최근 상속세와 관련된 논의 대부분이 기업의 지배권 상속에 집중됐지만 정작 상속재산 중 경영권에 영향을 미치는 유가증권 비중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통계연보를 보면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간 상속재산 중 유가증권 비중은 평균 12% 남짓에 불과했다. 이에 비해 토지(36.3%)와 건물(27.4%)의 비중은 60%가 넘는다. 지배권 상속을 손쉽게 만들어주기 위해 상속세율을 낮추면 자칫 다른 자산을 통한 부의 세습이 더욱 활발해져 계층 간 불평등 구조가 고착화 될 수 있다.

-상속세 부담으로 한진그룹 경영권이 위협 받나? “그렇지 않다”

조양호 회장의 퇴직금이 195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자녀 등이 상속세를 납부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 회장은 보통주 기준, 한진칼 주식 1055만주 가량을 보유하고 있다. 이 중 담보로 제공한 200만주를 제외한 주식을 상속할 경우 대략 1600억원의 상속세를 내야 한다. 이는 지난 17일 종가 기준으로 한진칼 주식 40%가량을 처분해야 마련할 수 있는 금액이다.

조 회장이 받을 퇴직금 등으로 자녀 등이 상속세의 상당부분을 납부할 수 있다. 사망 전 조 회장은 9개 회사의 임원을 겸직했다. 이 중 급여가 공개된 5개 상장회사에서 평균 20억원의 급여를 받았다. 나머지 비상장회사에서도 비슷한 급여를 받았다고 가정할 경우, 1950억원의 퇴직금이 발생한다. 여기에 50%의 상속세를 내더라도 약 1000억원이 자녀 등에게 넘어가고, 이것이 상속세 납부 재원이 된다는 것이다.

이 회계사는 “상속세 나머지 부분도 장기간에 걸쳐 나눠 납부할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배당을 늘리면 상속세를 낼 수 있다”며 “주식을 담보로 차입을 하는 등의 방법도 있어 상속세로 인해 지분을 처분해 기업 지배권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주장은 근거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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