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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피와 도끼와 죽음의 수사학

  • 이대근 논설주간

민주주의 위기라는 유령이 세계를 떠돌고 있다. 많은 민주주의 국가들이 권위주의로 회귀하거나 극우 포퓰리즘에 휘둘리거나 관용과 절제의 민주적 규범을 잃은 채 전쟁정치에 휩싸여 있다. 민주주의 모델이었던 미국과 영국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런 흐름과 달리 촛불집회를 통해 민주주의의 활력을 과시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는 죽어가는 게 아니라, 살아나고 있었다.

[이대근 칼럼]피와 도끼와 죽음의 수사학

그래서 사람들은 묻는다. 왜 국회는 격투기장으로 변하고, 거리는 성난 사람들로 넘치는가? 우리는 왜 여전히 과거와 싸우는가? 더 나은 삶은 왜 우리 곁에 없는가?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한 찰리 채플린의 말처럼 한국 민주주의 승리 역시 일면적 현상일까?

민주주의라면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관해 일정한 합의를 이루고 여야, 진보·보수 모두 그 토대에 서 있다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여야가 대립해도 사회를 지탱하는 기둥의 뿌리를 뽑는 일은 없으리라는 최소한의 기대가 유지되어야 한다. 이견과 갈등은 화해 불가능한 차이가 아닌, 타협할 수 있는 문제라는 생각을 공유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 지지가 높고 한국당 지지가 낮을 때 문재인 정부는 (야당이 아닌) ‘국민과 함께하는 국정’을 했고, 개혁성과가 없었다. 문재인 정부 지지가 낮아지고 한국당 지지가 높아질 때는,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대결이 보여준 것처럼 양쪽이 대충돌을 했다. 힘의 균형이 얼추 맞춰지면 협력적 경쟁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여야는 맨몸으로 부딪치는 쪽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민주정치의 한 축인 한국당은 민주주의 한계선에 다가갔다. 외부의 적과 싸우며 내부 단합을 이루어냈고, 그 때문에 지지율이 더 오르자 자신감에 충만해 있다. 전례 없는 존재감도 드러내고 있다.

아마 집권당을 대신할 수 있다는 꿈까지 꿀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실망하는 이들이 많아지면 한국당이 대안으로 떠올라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가 설계한 방식이다. 하지만 한국당은 촛불·탄핵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모독을 사소한 실수로 간주하고, 평화를 조롱한다. 패스트트랙 충돌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치개혁이든 검찰개혁이든 개혁에는 관심도 없다.

당 활동은 이념 공세에 집중되고 있다. 요즘 한국당은 좌파, 독재정권, 김정은 빠지면 말을 못한다. 독재타도, 헌법수호같이 그들 사이에서나 통용될 방언(方言)으로 세상을 묘사한다. 황교안 당대표는 정치를, 죽지 않으려면 죽여야 하는 선악 대결장으로 바꾸고 있다. 그는 연일 “피를 토한다” “피 흘리겠다” “도끼날을 피 흘리며 삼켜 버리겠다” “죽지 않겠다” “죽기를 각오하겠다”며 한국 정치를 피로 물들이고 있다.

비수보다 더 날카로운 말들이 상대에게 깊은 상처를 주고 보수층 사이에서 상대를 부정하도록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성공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건 민주주의 규범과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황교안이 한국 정치를 무대로 피 칠갑의 공포영화를 찍는 동안 정치혐오증도 고개를 들고 있다. 민주주의를 서서히 죽이는 일이다.

이렇게 지도부, 당 활동, 지지자 구성 세 요소의 어느 구석을 살펴봐도 한국당은 극우 포퓰리스트 당에 가깝다. 한국당을 위해서는 불행이고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다행인 것은 그 한국당이 딜레마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친박 청산하면 내분으로 당이 와해되고, 청산을 포기하면 확장성을 잃는다. 결국 한국당은 확장성을 희생하고 내부 결속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미래를 불확실성 속에 가두었다. 최근 지지율 상승이 친박 청산 포기를 정당화해준다고 믿겠지만, 한국당이 자기 한계에 갇혀 있는 한 당 지지율 30%대의 굴레를 벗어나기는 어렵다.

한국당은 그만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정히 성찰해야 한다. 아직까지는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이 한국당의 퇴행을 눈감아줄 정도에 이르지는 않았다. 지지율 상승이 부추기는 무모한 행동을 계속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위험에 빠질 수 있다. 흩어진 촛불은 다시 모일 수 있다.

한국당이 지지율 상승을 믿고 탄핵 이전으로 회귀하는 경향을 보이자 특별히 그럴 요인이 없는데 최근 문 대통령 국정 지지가 다소 높아졌다. 선을 넘나드는 한국당에 자극받은 시민들이 결집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한국당 해산 청원은 180만명을 돌파했다. 한국당, 다시 심판대에 설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한국 민주주의를 멀리서만 바라보며 희극일 거라고 안심할 수 없게 됐다. 민주주의 위기의 씨앗이 자라는지 가까이서도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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