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장이 지난달 미국 뉴욕 맨해튼 협회장실에서 진행된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대북정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뉴욕 | 김경학 기자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대북 제재로 비핵화가 달성되진 않을 거다. 유일한 방법은 ‘외교적 관여(engagement)’뿐이다.”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CFR) 회장(68)은 오는 19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리는 ‘2019 경향포럼’ 기조연설에 앞서 미국에서 경향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이처럼 강조했다. 대표적 싱크탱크인 미국외교협회의 하스 회장은 단기간에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법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때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스승’으로 불리기로 했던 하스 회장은 “트럼프의 외교정책에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더 많다”면서도 “북·미 정상회담이 (전쟁 같은 상황이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에 외교적 차원을 증가시키는 면에서는 좋다”고 긍정 평가했다.
하스 회장은 “시간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는 명백히 대안이 못 된다”며 “북한에 경제지원을 대가로 핵, 미사일 능력을 줄이도록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지난달 9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센트럴파크 앞 미국외교협회에서 하스 회장과 가진 일문일답.
- 올해 ‘경향포럼’은 향후 ‘한반도 2.0’이란 이름으로 새 시대를 준비하려고 한다.
“우선 ‘한반도 2.0’이 무슨 의미인지 정의를 해야 한다. 누구에게는 통일, 다른 누구에게는 공식적인 평화협정을 동반한 한반도 평화, 혹은 발전된 경제 상황 등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현실은 아직도 ‘한반도 1.0’이다. 지금 위치에서 상당히 더 나은 위치로 가려면 유일한 방법은 미국의 외교적 관여이다. 다만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Devil is in details)’는 말이 있다.”
“단기간 북한 비핵화 등
트럼프의 대북외교 정책
동의하지 않는 부분 많아
-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언한 걸로 안다.
“트럼프와는 최근 1년간 대화를 나눈 적이 없다. 나는 그의 외교정책에 대해 많은 중요한 부분에서 동의하지 않는다. 지금도 난 트럼프 정부의 고위 당국자들과는 계속 만난다. 동의하지 않는 부분이 동의하는 부분보다는 많다. 트럼프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에 외교적 차원의 중요성을 증가시키는 면에서는 동의한다. 그러나 짧은 기간에 북한 비핵화가 현실적이라고 초점을 맞추는 것이나 한·미 군사훈련을 연기한 결정 등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전부 아니면 전무(all or nothing)’라는 식으로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는 현실적이라 보나.
“나는 북한이 모든 핵을 포기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모든 탄도미사일을 포기할 거라고도 믿지 않는다. 우리가 100퍼센트 확신할 정도로 북한 스스로 공개할 거라고 믿지 않는다.”
- 대북 제재 얼마나 실효성 있나.
“북한에 대한 제재로 비핵화가 달성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너무 의욕에 넘치는 일이다. 제재가 비핵화를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는 있다. 다만 제재가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게끔 설득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알기엔 중국, 러시아가 대북 제재를 어느 수준에서는 어긴 것으로 안다. 그들은 북한의 불안정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를 평가하면.
“전략적 인내가 뜻하는 바는, 시간이 문제를 해결할 것이고 우리한테 유리하게 상황이 발전할 것이란 점인데 그건 명백히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북한 정권이 무너지기보다 더 강해질 것이다. 전략적 인내보다는 ‘전략적 긴박성(urgency)’이 더 필요하다.”
북한에 경제 지원 대가로
핵·미사일 억제 압박해야
- 북한이 이제 경제에 매진한다고 한다. 핵과 경제발전을 동시에 할 수 있을까.
“북한은 당연히 그러고 싶을 거라 본다. 그들이 선택을 하게끔 하는 게 우리의 목표가 돼야 할 것이다. 핵무기가 크게 줄어든다면 기본적으로 경제적 도움이 뒤따를 것이다.”
- 일각에서 한·미 공조 균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반면 북한은 한국이 미국 편을 든다고 하는데.
“당연히 북한은 미국과 남한 사이가 벌어지길 바라고 있다. 우리(한·미)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 서로를 놀라게 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북한은 서울과 워싱턴 두 곳과 모두 거래해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 서울과 워싱턴의 우선순위가 같지는 않을 수도 있을 테니, 양국 정부가 솔직하고 밀접하게 상의해야 한다.”
- 앞으로 북·미 수교가 정상화되면 주한미군은 어떻게 될까.
“가설적으로 핵, 미사일 대화에 진전이 있더라도 미군의 합리적인 한반도 주둔을 변화시킬 이유가 없다. 북한의 핵 프로그램 이전에도 미군은 주둔해 있었고 주한미군의 존재는 핵에 대한 것이 아니라 다른 위협에 따른 것이다. 지금 북·미 협상에 주한미군의 존재가 언급돼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 북 비핵화가 된 뒤에도 그런가.
“그렇다. 만일 북한이 남한이나 다른 누구에게도 어떠한 군사적 위협을 주지 않는다면 그때는 주한미군 주둔 문제에 대해 기꺼이 대화하겠다. 그런 때가 오더라도 미군이 지역의 다른 문제를 다루는 걸 상상해볼 수 있다.”
‘전부 아니면 전무’ 전략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
- 동북아에서 안보, 경제문제를 다룰 다자간 협력체제가 필요할까.
“그것이 꼭 필요한지는 모르겠으나, 세부적인 내용에 따라 바람직할 수는 있으리라 본다. 현재는 동북아에 그런 안보 구조가 갖춰져 있지는 않아 보인다. 지금은 북한 핵 위협에 집중해야 한다. 다만 이런 지역의 구조를 논의하는 데 나는 열려 있다.”
- 미래에 비핵화한 한반도가 ‘비동맹 중립국’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비핵화 같은)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 게 우선이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가까운 미래의 목표는 분단은 되어 있지만 정상화된 한반도다. 통일을 이야기하기엔 아직 시기적으로 이르다. 지금은 오히려 혼란을 준다.”
리처드 하스는 누구
미국의 대외정책에 관한 대표적 싱크탱크인 미 외교협회(CFR)를 2003년부터 16년 동안 이끌어 온 인물이다. 외교협회는 ‘포린 어페어즈’라는 영향력 있는 잡지를 발행하는 곳이기도 하다. 조지 H W 부시 행정부 시절 백악관 특보와 국가안보회의(NSC) 중동 및 남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콜린 파월 국무장관 밑에서 정책기획실장을 지낸 외교관 출신이다.
하스 회장은 2017년 저서 <혼돈의 세계>를 통해 그동안 국제질서를 규정해 온 규칙과 정책, 제도와 관행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며 새로운 ‘세계질서 2.0’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향포럼’이 남북한과 동북아에 요구되는 새로운 규칙이라는 뜻에서 ‘한반도 2.0’이라고 명명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그는 “미국은 역사상 어떤 국가보다도 강력하지만 다른 나라의 협력 없이는 어떤 국제적 임무도 사실상 성공시킬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하스 회장은 북핵 해결을 위해 중국의 역할을 강조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도 다른 전통적 미국 공화당 인사들의 한반도, 동북아 문제에 접근하는 인식의 틀을 이번 포럼을 통해 하스에게 직접 들을 수 있다. 주요 저서로는 <대외정책은 국내에서 시작한다> <미국 외교정책의 대반격>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