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피사유서에 “스스로 회피하라”…법조계 “재판 지연 목적” 비판
‘사법농단’ 핵심 인물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60·사진)이 재판부를 바꿔달라며 법원에 낸 기피사유서에서 “윤종섭 재판장이 강형주 전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주재한 모임에 참석해 사법농단 관련자들을 엄단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썼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임 전 차장은 지난 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36부(재판장 윤종섭 부장판사)에 제출한 기피사유서에서 “재판장 윤종섭이 향후 유죄의 예단을 종국적으로 관철하려 하지 말고 스스로 회피를 한다면 피고인과 변호인이 기피신청을 유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며 이같이 기재했다.
임 전 차장은 윤 재판장이 스스로 이 재판을 맡지 않겠다고 선언하라고 했다.
임 전 차장은 언론사 기자로부터 제보를 받았다면서도 언제, 어떤 과정에서 윤 재판장이 그러한 말을 했는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것(엄단 발언)이 과연 근거 없는 헛소문에 불과한지도 의문”이라고 적었다. ‘윤 재판장이 자신에 대한 유죄 심증을 사적 모임에서 드러냈다’는 ‘소문’을 기피 사유로 내세운 점을 인정한 것이다. 강 전 법원장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시절 임 전 차장의 전임 법원행정처 차장으로 일하며 사법농단에 직접 연루된 인물이다. 임 전 차장 주장대로라면 윤 재판장이 사법농단 연루자 앞에서 엄단 발언을 한 셈이 된다.
임 전 차장은 106쪽 분량의 기피사유서를 냈다. 상당수가 본인의 유불리에 따른 재판부 공격이다. 재판부가 추가 구속영장 발부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아 부당하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영장을 발부하며 증거 인멸 염려가 있다는 점을 고지했고, 그밖의 사정에 대한 고지는 의무사항이 아니다. 법관 출신인 임 전 차장이 형사소송법이나 일반 재판 관행에도 어긋나는 기피사유를 제시한 점을 두고 법조계에선 재판 지연 목적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검찰 관계자는 “임 전 차장의 기피신청이 받아들여지면, 재판부가 유죄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는 판단이 드는 피고인들은 다 기피신청을 해서 재판을 지연시킬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했다. 형사소송법은 소송 지연을 목적으로 하는 기피신청은 기각하라고 규정한다.